문턱

경계에 남은 온기

by Helia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내게 늘 말했다. “문지방을 밟지 마라.” 이유를 물으면 그저 웃으며 덧붙이셨다. “그건 예의가 아니란다.” 짧고 단단한 그 한마디는 유난히 묘한 힘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문지방이 왜 그렇게 특별한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문턱은 단순한 나무판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을 나누는 숨결 같은 곳이었다. 들어감과 나감, 머무름과 떠남, 익숙함과 낯섦을 가르는 경계. 그 얇은 선 하나에 삶의 리듬이 깃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신발을 벗을 때마다 문턱을 손끝으로 한 번 쓸어내리셨다. 먼지가 묻어 있으면 묵묵히 닦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섰다. “문지방이 깨끗해야 복이 들어오지.” 그 말이 어릴 땐 미신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안다. 할아버지에게 문턱은 단지 나무가 아니었다. 그건 집의 숨길이었고, 복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이었다. 손끝으로 문턱을 닦는 일은 청소가 아니라 하루의 무게를 털어내는 일종의 기도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랐고, 지금도 이사할 때면 가장 먼저 문턱을 닦는다. 새집의 첫 숨을 열어주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턱은 우리 인생의 지도 곳곳에 숨어 있다. 첫 등교날, 학교 정문 앞에 서서 울음을 삼키던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문턱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회사의 출입문, 병실의 유리문, 공항의 게이트 앞이 새로운 문턱이 되었다. 넘어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늘 섞여 있었다. 문턱 앞에서 멈춘다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성찰이다. 그 짧은 망설임 속에서 사람은 자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문턱의 높이를 새롭게 느끼는 일이다. 젊을 땐 세상의 문턱이 높아 보였고, 나이 들수록 마음속 문턱이 더 두꺼워졌다.

나는 한때 사랑의 문턱 앞에서도 오래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발끝이 닿는 그 경계를 넘지 못했다. 카페 유리문 너머,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따뜻한 커피 향만 남겨두었다. 그날 알았다. 사랑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아무리 간절해도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밟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걸. 그 문턱은 내게 배움이었고, 그 후로 나는 누군가의 마음 앞에 설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른다.

할아버지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문턱처럼 여겼다. 손님이 오면 직접 문 앞에 나와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떠나면 그 자리를 다시 쓸었다. “사람이 드나든 자리는 따뜻해야 해.” 그 말엔 세월의 예의가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손끝에서 배웠다. 관계에도 문턱이 있다는 걸. 넘어서야 가까워질 때도 있지만, 멈춰야 따뜻함이 남을 때도 있다는 걸. 그래서 ‘문지방을 밟지 마라’는 말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다정한 훈계였다.

요즘 아이들은 문지방을 모른다. 대부분의 집에는 현관 턱조차 없다. 대신 네 자리 비밀번호가 세상과 나를 가른다. 문턱은 사라졌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높다. 클릭 한 번으로 차단할 수 있는 세상에서 진짜 경계는 더 단단해졌다. ‘읽음’ 표시가 켜져도 대답이 오지 않는 그 침묵의 거리, 그것 또한 현대의 문턱이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세상의 문턱은 여전히 우리를 시험한다.

문턱을 넘는 일은 용기보다 예의를 요한다. 급히 뛰어넘으면 걸려 넘어지고, 천천히 디디면 부드럽게 건널 수 있다. 인생의 모든 문턱이 그렇다. 때로는 발끝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넘는다. 돌아보면 나는 수없이 많은 문턱을 지나왔다. 어린 날의 교문, 첫 직장의 유리문, 병원 복도의 하얀 문, 그리고 이별의 문. 그 모든 문턱 위에서 나는 잠시 멈췄고, 그 멈춤이 내 인생을 단단하게 다졌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그의 방 문턱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문을 열면 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방 안에는 그가 타던 전동 휠체어와 지팡이, 그리고 반쯤 남은 담배 한 갑이 고스란히 있었다. 그 작은 물건들이 방 안의 공기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평생 닦아온 건 나무가 아니라 ‘이별의 경계’였음을. 문턱을 닦는 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복이 드나들길 바라는 기도였음을. 그날 이후 나는 문턱을 볼 때마다 그 손끝의 온기를 떠올린다.

세상살이는 끊임없이 문턱을 오가는 일이다. 들어가는 일보다 나오는 일이 더 어렵다. 마음을 닫는 건 쉬워도, 다시 여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문턱은 언제나 기다린다. 밟지 말라 하던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돌아오길, 다시 웃으며 들어서길. 그래서 문턱은 문보다 오래 남는다. 문은 닫히지만 문턱은 남아 있다. 그것이 사람의 자취이자 세월의 흔적이다.

문턱은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모든 발자국을 기억한다. 들어오는 발, 나가는 발, 머뭇거리는 발. 그 모두를 묵묵히 받아내며 스스로 닳아간다. 나는 그 겸손이 좋다. 높지 않아서, 늘 바닥에 붙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지나침 없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의 삶도 그랬다. 낮고, 조용하고, 그러나 따뜻했다. 문턱 같은 사람. 그는 언제나 나를 맞아주고, 보내주었다.

오늘도 집에 들어서기 전, 나는 문턱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하루의 피로와 생각이 그 경계에 걸려 잠시 멈춘다. 문턱을 넘는 순간, 바깥의 소음이 잦아들고 집의 공기가 내 어깨를 감싼다.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문턱을 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의식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예배라는 걸.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사람이 된다.

문턱을 밟지 말라던 말은 이제 나의 마음속 규칙이 되었다. 그것은 낡은 금기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오래된 다정함이다. 문턱은 오늘도 낮은 곳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머물 땐 머물고, 떠날 땐 떠나라. 그러나 경계를 잊지는 말아라.” 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긴다. 문턱은 여전히 내 삶의 스승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문턱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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