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머문 자리
새벽의 빛이 번지기 전, 루네는 한 통의 편지를 붙잡고 있었다.
주소는 지워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달빛 잉크가 번져버린 봉투엔 희미한 온기가 남아 있었고, 손끝에 닿는 그 온도는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따뜻했다.
포노가 그녀의 무릎에 앞발을 올리며 말했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안 남았네.”
“그래. 그런데 이상하지? 글씨는 사라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어.”
루네는 봉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 안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벅찼다.
> “끝이란 단어 안에는, ‘다시’라는 말이 숨어 있더라.”
그녀는 낮게 웃었다.
“포노, 이 편지는 아마 어떤 사랑의 끝에서 온 걸 거야.”
“끝이라도, 그 마음이 아직 여기 있잖아.”
포노의 말에 루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어쩌면 끝이라는 건, 마음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일지도 몰라.”
창문 밖으로 새벽바람이 들어왔다.
커튼이 흔들리고, 달빛이 방 안을 스쳤다.
그녀는 손끝으로 봉투의 남은 잉크 자국을 더듬었다.
>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 다만, 다른 형태로 계속 이야기할 뿐이야.”
포노가 물었다.
“그럼 이제 이 편지는 어디로 가는 거야?”
“받는 사람은 정해졌어.”
그녀는 달빛 잉크로 천천히 한 줄을 썼다.
> “받는 사람: 마음이 아직 머무는 곳.”
포노의 금빛 눈이 반짝였다.
“이번엔 주소 대신 마음이네.”
“응. 어쩌면 모든 편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니까.”
그녀는 봉투를 병 속 별사탕 위에 올려놓았다.
찰랑—, 유리벽 너머로 빛이 부딪히며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별사탕 하나가 터지며 은은한 파동이 퍼졌다.
루네는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하늘의 별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마치 편지의 행방을 안내하는 지도 같았다.
“포노, 저 별은 어딜 향하는 걸까?”
“아마도… 아직 닿지 못한 마음 쪽으로.”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래. 잃은 게 아니라, 아직 닿지 않은 거였어.”
> “우리가 쓰는 편지는 결국, 아직 닫히지 않은 문장이야.”
포노가 조용히 말했다.
“루네, 넌 정말 편지 같은 사람이야.”
“편지?”
“누군가의 하루에 잠시 도착했다가, 결국 마음속으로 사라지는 사람.”
루네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 웃음이 달빛처럼 번졌다.
별사탕 병이 흔들리며 미세한 빛을 내뿜었다.
그녀는 병을 들어 창가에 두었다.
> “사람들은 잊는 법보다, 남겨두는 법을 먼저 배운다.”
포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루네, 봐. 별이 떨어지고 있어.”
그 별은 은하의 끝에서 서서히 흘러내려, 우체국 지붕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루네는 그 빛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달빛이 머문 자리엔, 늘 마음이 피어나네.”
그녀는 펜을 들었다.
> “오늘의 편지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머물러 있어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달빛이 종이 위를 감쌌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덧붙였다.
>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을 남겨두고 있나요?
그리고 그 마음은, 언젠가 누구에게 닿게 될까요?”
별사탕 우체국의 종이 천천히 울렸다.
그 소리는 새벽의 마지막 별을 깨우듯, 다정하고 잔잔하게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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