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물리지 않는 마음
마음이 다급하면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현관문을 여는 열쇠도 헛돌기만 할 뿐,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숨이 차오른다.
단순한 문 하나 앞인데도, 세상이 나를 막고 있는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꼭 오래된 시계처럼 삐걱대며 멈칫거린다.
태엽은 감겼는데, 방향이 맞지 않아 계속 덜컥거린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다.
열쇠는 돌리고 있는데 문은 열리지 않는,
뭔가 하긴 하는데 도무지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들.
남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만큼 앞서가 있는데,
나는 혼자서 맞지 않는 나사처럼, 헛도는 열쇠처럼 제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힘을 줘도, 방향을 바꿔도, 맞물리지 않는다.
그렇게 헛돌다 고꾸라진 나를 보고 있자니,
스스로 봐도 참 처량하다.
버스 정류장 앞, 사람들은 다들 뭔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인다.
눈빛엔 목적이 있고, 발걸음엔 확신이 있다.
그 틈에서 나만 혼자 흐릿하게 서 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출발도 도착도 없이.
그저 시간만 돌고, 마음만 헛돌 뿐이다.
머리로는 안다.
“괜찮다, 늦어도 된다, 천천히 가도 된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만큼 앞서간 사람들을 보면
나만 멈춘 것 같아 숨이 막힌다.
그래서 더 세게, 더 빠르게 돌려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빗나간다.
열쇠는 미끄러지고, 손끝엔 흰 자국만 남는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하루가 되감기듯 돌아왔다.
실수했던 말, 놓친 기회, 보내지 못한 문자,
그 모든 조각들이 마음속에서 헛돌았다.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돌았다.
밤은 깊어가는데,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헛돌고, 또 헛돌았다.
나는 늘 바빴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믿었다.
달려야만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나는 멈추는 법을 잊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돌고 도는 동안
나는 ‘왜’라는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창밖의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세상의 윤곽이 흐려지는 그 순간,
내 마음의 경계도 함께 풀려나갔다.
나는 너무 오래 선명하려 했다.
모든 걸 명확히 하려 애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나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길 위의 소리를 들었다.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까지.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멈춘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헛도는 건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재정렬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살다 보면 누구나 엇나간다.
마음이 급하면 손이 어긋나고,
생각이 앞서면 몸이 따라오질 않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탓하지만,
사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기계 안에서
모든 나사가 완벽히 맞을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 헛도는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는 일이다.
잠시 미끄러져도, 결국 다시 맞물릴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을 때, 삶은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완벽히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다시 헛돌고, 때로는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헛도는 시간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그건 내가 내 중심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아침마다 문을 열 때면,
예전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열쇠가 한 번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
심호흡을 하고, 손끝의 떨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문은 스르르 열린다.
억지로 힘을 줄 때는 닫혀 있던 문이,
이제는 나의 속도에 맞춰 열려준다.
삶도 그렇다.
세게 돌릴수록 어긋나고,
조급할수록 미끄러진다.
하지만 한 박자 늦추면,
생각보다 쉽게 맞물린다.
그게 인생의 리듬이자, 나만의 속도다.
나는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누가 앞서 가든, 누가 멀리 가든,
그건 그들의 속도일 뿐이다.
내가 나의 속도로 걷고 있을 때,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인생의 문은 힘으로 여는 게 아니다.
마음이 맞물릴 때, 세상은 스스로 열린다.
그때 들려오는 ‘딸깍’ 하는 소리.
그건 단지 문의 소리가 아니라,
헛돌던 나의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 소리다.
오늘도 나는 문을 연다.
어제보다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열쇠는 여전히 작고 손끝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헛돌던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 모든 어긋남과 빗나감이
결국 나를 이 자리로 맞물리게 한 것이다.
문이 열린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안다.
이제 더 이상 헛돌지 않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