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을 삼키는 연습
알약 하나 삼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사람이 또 있을까. 물 한 모금과 하얀 알약 하나, 그것뿐인데 매번 전쟁 같았다. 작고 반듯한 그 한 알이 목구멍 앞에서 멈춰버리곤 했다. 물을 머금고 고개를 젖히면 혀끝에서 미끄러지다, 결국 숨이 막혀 컥컥거리며 뱉어내곤 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그깟 약 하나도 못 삼켜?” 하지만 내겐 그 작은 알이 세상에서 제일 큰 산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내 몸이 거부하는 것 같았다. ‘먹기 싫다, 아직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지키는 듯했다.
어릴 적의 병원은 냄새부터 무거웠다. 희미한 소독약 향과 차가운 금속 트레이, 그 위에 놓인 하얀 알약들. 약봉투엔 늘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식후 30분.’ 그 말이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가지 않았다. 봉투를 꼭 쥐면 비닐이 바스락거렸고, 그 속에서 약 냄새가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 냄새는 쓴맛보다 먼저 코끝을 찔렀다. 나는 그 냄새 속에서 병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의 냄새였다.
그 시절의 나는 아픈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약을 먹는 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 같았다. ‘조금만 자면 괜찮아질 거야’, ‘물을 많이 마시면 나을 거야’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실은 두려웠다. 약을 먹는다는 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으니까. 그건 단순히 삼키는 게 아니라 인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감기에도, 위염에도, 열에도 약은 빠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예전보다 훨씬 잘 삼키게 되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젖힐 때면 한 손으로 뒷목을 살짝 받쳐야 삼킬 수 있다. 그건 오래된 습관이자, 몸이 기억한 두려움의 그림자다. 약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어린 시절의 내가 잠시 되살아난다. 숨을 멈춘 채 조심스럽게 삼키며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괜찮아, 이번엔 잘 내려갈 거야.’
약이란 건 결국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믿음이 없으면 그건 그저 작은 돌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믿음이 더해지면 그것은 나를 살리는 구원이 된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믿음을 삼킨다. ‘이 약이면 나아질 거야’,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거야.’ 약이 몸을 고치기보다 마음을 다독이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약을 삼키지 못하던 그때의 나는 단지 목이 좁았던 게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었던 건 아닐까. 세상은 늘 나에게 견디라 했고, 나는 그 말에 너무 익숙했다. 도움을 받는다는 게 약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살아가는 일이다. 인간은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회복하는 존재니까.
지금도 약을 삼킬 때면 엄마의 손길이 떠오른다. 작은 손바닥 위에 반으로 쪼갠 알약 한 조각. “괜찮아, 물 한 모금 더 마셔.” 엄마의 목소리는 약보다 더 큰 위로였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약이 쓴 이유는, 그 쓴맛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나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혼자서 약을 삼킨다. 컵에 물을 따르고, 약을 손바닥 위에 올려둔다. 투명한 물 위로 햇빛이 스며들면, 그 작은 하얀 알이 반짝인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어쩐지 위로를 느낀다. 이 한 알이 내 몸을 살릴 거라는, 오늘을 견디게 할 거라는 믿음.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절실한 희망인지 깨닫는다.
약은 단순히 의약품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이 약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손길이 약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 잠 못 이루는 밤에 들려오는 음악 한 곡, 길가의 작은 꽃 한 송이. 그런 것들이 마음의 통증을 덜어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약으로 하루를 버틴다. 어떤 이는 알약으로, 어떤 이는 온기로, 또 어떤 이는 추억으로.
약은 우리를 완전히 낫게 하진 못한다. 하지만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스스로를 일으킬 힘이 생길 때까지, 조금 덜 아프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약을 억지로 삼키지 않는다. 마치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처럼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오늘은 이 한 알로 충분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약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것이 몸의 통증이든, 마음의 상처든, 우리는 언젠가 무언가를 삼키며 하루를 버틴다. 약은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버티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나는 이젠 쓴맛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쓴맛을 견디는 연습이 결국 삶을 버티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약을 삼키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작은 쓴맛이 내 안에서 천천히 녹아들어 오늘의 나를 지탱해 준다는 것을. 삶이란 결국 이런 반복 아닐까. 쓴맛을 삼키고, 단맛을 기다리는 일.
오늘도 나는 물 한 컵을 따라, 손바닥 위의 약을 바라본다.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 그 반짝임 속에서 다짐한다. “괜찮아, 조금만 더.”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젖혀, 한 손으로 뒷목을 받치며 약을 삼킨다. 그 자세는 여전히 어릴 적의 나와 닮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다정함으로 삼킨다. 그 작은 알이 내 안에서 빛으로 변해 흩어진다. 쓴맛이 단맛으로 스며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안다. 오늘을 버티게 하는 건 약이 아니라, 그 약을 삼키는 나 자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