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익명이라는 이름의 칼날

by Helia

익명은 편하다. 이름을 감추면 책임도 사라지고,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마음은 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얼굴 없는 말들이 날아다니는 세상에서, 말은 돌보다 단단하고 화살보다 빠르다. 누군가는 웃으며 던졌겠지만, 그 돌에 맞은 이는 하루를 통째로 무너뜨린다.

익명은 언제부터 이렇게 차가워졌을까.
누군가의 글 한 줄, 사진 한 장이 순식간에 표적이 된다. 익명의 손가락들은 제각기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돌을 던진다. “나는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얼굴이 없다는 건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 되고, 이름이 없다는 건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되어버렸다.

나도 그런 익명의 뒤에 숨었던 적이 있다.
새벽 두 시, 불 꺼진 방 안. 손끝만 밝은 휴대폰 화면 위에서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댓글을 달았다.
“이건 너무 오글거려요.”
그 짧은 한 줄을 남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폰을 덮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문장이 타인의 마음에 닿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혹시 그가 하루 종일 내 댓글을 떠올리진 않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왜 잊었을까. 익명은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편리한 대신 무감각해지는 마법.

익명의 세계는 너무 쉽다. 클릭 몇 번으로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고, 삭제 한 번으로 흔적을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삭제’가 없다. 화면에서는 사라져도, 가슴에는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던진다. 너무 가볍게 쓴다. 그리고 너무 빨리 잊는다.

어쩌면 익명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거울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가리고 나면, 우리는 진짜 얼굴로 돌아간다. 가식 없이 말하고, 숨기지 않고 감정을 쏟는다. 하지만 그 ‘진짜 얼굴’이 언제나 아름답진 않다. 때로는 분노, 질투, 무시 같은 가장 어두운 감정들이 먼저 올라온다. 익명은 그런 마음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무섭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니까.

얼굴이 없는 세상에서는, 사람을 잊기 쉽다.
댓글 속 닉네임은 숫자와 아이디일 뿐, 그 뒤에 있는 사람의 표정은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잔인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잊는 순간, 언어는 짐승의 발톱이 된다.
나는 요즘,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을 직접 눈을 마주치고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아니요’라면, 쓰지 않는다. 말의 온도를 지키는 건 쉽지 않지만, 그게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익명은 때로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가족 사이에서, 친구들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나, 사실 너무 외로워요.”
“이 정도로 힘든 내가 이상한 걸까요.”
이런 고백들은 익명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익명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숨 쉴 수 있는 통로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익명은 결국 그걸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무늬를 가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두렵다.
익명의 힘은 너무 커서, 진심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악의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익명은 선과 악, 위로와 폭력의 경계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이름이 사라지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도덕도 희미해진다.
그래서 익명은 늘 ‘시험대’ 같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들켜버리는 자리.

예전엔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진 않을까. 그 조심스러움이 인간의 품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빠르다. 생각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건데 왜 화내?’라는 말이 익명의 문장들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이 때로는 잔혹함이 된다.

나는 익명 댓글을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이해.
왜냐면, 나도 그렇게 상처를 줬고, 받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은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누군가를 향한 외침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들리지 않는 절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름 없는 외침 속에서 서로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오래전 내가 썼던 댓글을 우연히 다시 보았다.
“이건 너무 과한 감정이네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그때 그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던진 한 줄의 말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익명은 나를 잊게 만들지만, 기억은 나를 놓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숨을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는 도망칠 수 있어도, 양심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날 수 없으니까.

요즘은 글을 쓸 때마다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하려 한다.
이 문장을 읽는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을지.
익명이라도, 말에는 여전히 온도가 있고, 문장에는 책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내 글이 위로가 되길 바라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 한다.

익명은 단지 이름을 가리는 게 아니다.
그건 마음의 얼굴을 가리는 일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감정도 무뎌진다. 그래서 익명의 세계는 늘 안개 같다.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고, 멀어지면 허공처럼 흩어진다.
그 안갯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고, 욕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은 없다.
이름을 숨긴 말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또 누군가는 무너진다.

익명은 결국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거울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감추고 싶은 얼굴이 비친다.
선한 얼굴일 수도, 상처 난 얼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익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쥔 사람의 마음이다.

익명의 칼날을 쥔 손이 따뜻하길 바란다.
그 손이 상처를 내지 않고, 위로를 쓸 수 있길 바란다.
누군가를 향해 던진 문장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익명 뒤에서도 인간의 마음이 살아 있기를, 부끄러움이 남아 있기를.

익명 뒤에서도 사람일 수 있을까.
아마 그건, 이름보다 양심을 믿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익명이라도, 나는 어떤 말을 남길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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