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속 묻는 이유
산다는 건 뭘까. 이 질문은 늘 마음 한쪽에서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필수과목 같다. 한 번도 정답을 맞힌 적이 없는데도, 매일같이 삶이라는 시험지 위에 문제처럼 적혀 있다. 왜 우리는 사는 걸까. 무엇이 우리를 이 길로 불러내고, 또다시 내일의 문을 열게 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답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듯하면 흐려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주 되묻는다. 산다는 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은 어떤 날에는 깊은 수렁처럼 보이고, 어떤 날에는 고요한 연못처럼 잔잔하게 비친다. 삶은 그렇게 매일 표정을 바꾼다. 환한 날에는 환한 얼굴로, 버거운 날에는 버거운 그림자로, 아무렇지 않은 날에는 아무렇지 않은 공기처럼 스며든다. 우리는 그 표정에 맞춰 걸음을 바꾼다. 활기가 넘칠 때에는 가볍게 걷고, 마음이 눅눅한 날에는 천천히 질질 끌듯 걷는다. 그렇게 발끝으로, 손끝으로, 표정으로 삶을 살아낸다.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산다는 건 거대한 의미를 찾기 위한 모험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이유 하나를 붙잡고 버티는 일에 더 가깝다고. 지친 하루가 끝나도 알람을 맞추는 이유,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도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그면 잠깐이나마 풀리는 이유, 아주 사소한 문장 하나가 마음 깊은 곳에 닿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이유. 거창하지 않아도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세우고, 그 하루가 쌓여 생이 된다. 삶은 결국 미세한 온기들로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는 산다는 게 뚜렷한 목적지로 달려가는 일이라고 믿었다. 모든 길에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인생의 길은 미리 그려진 지도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발자국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모양이라는 것을. 사막 위의 발자국은 금세 바람에 사라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가 걸었다는 증거가 된다. 중요한 건 길의 정확함이 아니라, 내가 그 길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는 일은 정확함보다 흐름에 더 가깝다. 물이 낮은 곳을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우리는 마음이 닿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때로는 물살처럼 거세게 움직이고, 때로는 잔물결처럼 고요하게 흐른다. 물길이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모래를 만나면 스며들고, 절벽을 만나면 부서지듯 우리 또한 끊임없이 부딪히고, 돌아가고, 다시 흘러간다. 그 여정 모두가 삶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때로 새벽 공기처럼 차갑고 무겁다. 이유 없이 가슴이 허전해지는 날, 침대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날, 하루의 무게가 너무 두껍게 느껴져 도저히 걸음을 떼기 어려운 순간들. 그럴 때 나는 내 안에서 작고 흔들리는 존재 하나를 발견한다. 바람 앞에서 위태롭게 떨리는 촛불처럼 흔들리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꺼지지 않는 불씨. 세상은 종종 거센 바람을 보내오지만, 촛불은 몸을 낮추며 버틴다. 다시 몸을 일으켜 불꽃을 살린다. 그 작은 의지가,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삶을 또 이어간다.
산다는 건 아마 그 불씨를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희미해졌던 마음이라도 다시 감싸고, 미약한 온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애쓰는 일. 넘어지면서도 다시 손을 짚고 일어서며, 망가진 마음을 어루만지며, 오늘도 살아보겠다고 마음먹는 일.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일으켜 세우고, 또 다음 날을 맞이한다.
나는 종종 내 마음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눈을 감아야만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흔들리는 파문, 말하지 못한 상처, 아무 말 없이 이어가고 있는 버팀,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의 숨결. 이런 소리들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산다는 건 바로 이 미세한 마음의 속삭임을 잃지 않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큰 소리로 방향을 요구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해서 잠깐만 방심해도 묻힌다. 그러나 이 목소리를 잃어버리면 나는 길을 잃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유 명확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단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이유가 없어도 숨이 이어지고,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다. 따뜻한 차 한 잔에도 위로를 느낄 때가 있고, 스치는 바람의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가 된다.
산다는 건 무거운 의미 속에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조용한 하루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 같다. 버스 창문에 맺힌 김이 사라지는 순간, 길 위에 떨어진 낙엽의 바스러지는 소리, 아무 말 없이 건네는 인사에 담긴 온기, 손끝에 느껴지는 따뜻한 컵의 감촉. 이 모든 것들이 하루를 붙잡고, 그 하루가 이어져 인생이 된다.
그러나 삶은 때때로 잔인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나야 하는 것들이 있고, 끝내 붙잡지 못한 마음들이 있고, 충분히 애썼음에도 부서져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살아야 하지?” 그러나 묻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조금씩 움직인다. 질문은 상처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회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질문을 잃지 않는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고, 아직 살아 있다는 건 다시 걸을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금 알겠다. 산다는 건 정답을 구하는 시험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질문이 사라지면 삶도 멈춘다. 하지만 질문을 품고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질문 자체가 우리를 붙잡는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묻는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이제는 정답을 몰라도 괜찮다.
이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내가,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니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하루를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살아내고 있다.
정답이 없어도 괜찮다.
오늘도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