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것들

by Helia

사람을 만나는 일은 원래 바람처럼 가벼워야 한다. 스치듯 웃고, 스치듯 스며들고, 스치듯 마음이 움직이면 되는 일. 그런데 요즘은 그 바람 위에 저울을 얹어 무게를 재려 든다. 마치 가벼운 꽃잎에 무게추를 매달아 놓고선, 왜 날지 못하느냐고 채근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 좋아지는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딱히 이유가 없어도 끌릴 때가 있다. 설명이 안 돼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는 찰나에, 우리는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직업, 연봉, 조건, 미래, 취향, 안정성, 가능성. 하나하나 저울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본 뒤에야, “음… 괜찮을지도?”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면 가끔 웃음이 나온다.
“저울이야? 사람 마음을 왜 숫자처럼 재고 있어?”

정말 좋아지면 그냥 만나면 된다.
아니면 제때 멈추면 된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그토록 어렵게 설계도처럼 분석할까.

사람의 마음은 원래 계산한 만큼 멀어진다.
저울은 공평해 보이지만 실은 의심의 장치다.
애초에 ‘재보겠다’는 마음부터가 이미 반쯤 물러난 태도다.

나는 그런 저울질을 볼 때마다, 오래전 시장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손때 묻은 나무 저울이 천천히 기울어지고, 상인의 주름진 손이 무게추를 얹고 내리던 장면. 그 저울은 물건을 고르기 위한 것이었지, 사람을 가늠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저울을 마음속 깊은 서랍에 넣어두고도, 어느새 습관처럼 꺼내 쓴다.

“이 사람은 내 기준에 맞을까?”
“내가 짊어질 게 많지는 않을까?”
“혹시 나만 손해 보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길어지는 사이, 마음의 온도는 식기 시작한다.
뜨거웠던 감정의 수증기가 저울표면처럼 차갑게 변한다.
그리고 결국 결론은 늘 비슷하다.
“조금 더 생각해 볼게.”
“확신이 안 들어.”
“이 사람으로 괜찮은 걸까.”

기억해야 한다.
확신은 시간을 줘야 생기는 거지, 저울 위 무게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관계는 원래 시작보다 유지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시작조차 해보지 않고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건, 어쩌면 가장 큰 손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진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 살고,
너무 많은 기준을 손에 쥐고 있으니까,
정작 마음이 할 일을 머리가 대신하려 든다.

머리가 개입하면 사랑은 늦는다.
머리가 앞서면 마음은 지친다.
그리고 결국, 저울 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날씨와 비슷하다.
갑자기 맑아질 때도 있고, 불시에 비가 내릴 때도 있다.
계산이 아니라 변화로 오는 감정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을 보기 전에 수치부터 측정한다.
구름의 양, 기압, 바람의 속도.
그리고 나서야 “아, 비가 오려나?” 하고 말한다.

사랑도 그렇게 기상청 예보처럼 분석된다.
그러니 도대체 설렘이 어디에 남겠는가.

좋아하면 그냥 사귀면 되지 않나.
싫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고.
그 단순한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도리어 뒷걸음질 친다.
설렘이라는 이름의 불꽃을 켜놓고,
머리로는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 하고 물을 붓는다.

웃긴 건, 그렇게 계산한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상처받을 사람은 상처받고,
붙잡을 사람은 붙잡히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저울질한다고 달라지는 건 오직 하나,
지나칠 수 있었던 좋은 사람을 스스로 놓치는 일뿐이다.

나는 종종 이런 장면을 상상한다.
마음속 저울을 내려놓는 순간,
사람의 표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워질까.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고,
눈 마주치면 웃음이 새고,
그 사람 목소리를 들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시간 쪼개서라도 보러 가는 그 단순함.

그 단순함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붙잡는다.
왜냐면 사랑은 원래 이유보다 감정으로 시작되거든.
조건보다 온도로 자라고,
계산보다 용기로 유지된다.

사랑은 저울에 올리는 순간 무게를 잃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게가 아니라 결로 만나는 존재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저울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마음은 재는 게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이다.

혹시 지금도 마음속에서 무게추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 부분은 좀 부족한데…”
“그래도 장점이 있으니…”

그 고민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이미 멀어지고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랑이 저울질 단계에서 끝난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가능성만 남긴 채.

좋으면 사귀고, 아니면 말고.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할수록,
사람은 사람을 잃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따지느라
정작 중요한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온기를 가까이서 느껴보지도 못하고,
함께 걸었을 때의 리듬이 맞는지 보기도 전에,
미리 겁부터 먹고 스스로 도망친다.

연애는 원래 위험한 일이다.
상처받을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저울을 내려놓는다는 건,
상처받을 가능성과 행복해질 가능성을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그게 어른의 사랑이다.
그리고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울로 잰 사랑은 금방 금이 가고,
직감으로 시작한 사랑은 오래 남는다.

좋으면 사귀고, 아니면 말고.
언제나 그 단순함이 우리를 구한다.

그리고 그 단순함을 지키는 사람만이
진짜로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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