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

소식의 순서

by Helia

나쁜 소식은 언제나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온다. 문밖에 인기척도 없이 서 있다가, 손잡이를 잡는 순간 스며들어 방 안의 공기를 바꿔버린다. 삶이란 게 때로 잔인할 만큼 조용해서, 나쁜 소식은 그렇게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로 좋은 소식은 밝지만 잠깐이다. 마치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흘러나가 버리는 햇살 한 조각 같다.

나쁜 소식이 있다면 좋은 소식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 둘을 어떤 순서로 받아들일지다. 좋은 소식을 먼저 듣는다고 해서 나쁜 소식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는 것도 아니고, 나쁜 소식을 먼저 들었다고 해서 좋은 소식의 기쁨이 온전히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단순히 ‘먼저·나중’의 문제로 움직이진 않는다. 결국 그날의 마음이 어떤 날씨였느냐에 따라, 같은 소식도 전혀 다른 색으로 다가온다.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다. 평소보다 길게 울리던 전화 진동, 어둑한 방 안에서 반짝이던 낯선 번호. 받기 전부터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좋은 소식은 대체로 밝은 호흡을 타고 오지만, 나쁜 소식은 침묵을 먼저 데리고 온다. “혹시 지금 괜찮으세요?”라는 첫 문장만 들어도 이미 절반은 짐작하게 된다.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나쁜 예감을 더 빨리 감지한다. 어쩌면 마음이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지키려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날 들었던 말은 짧고, 건조하고, 너무도 명확했다. 몇 초 전까지 흐르던 공기가 갑자기 굳어버리는 듯했고, 방 안의 온도는 뚝 떨어졌다. 몸의 중심이 아래로 꺼지는 느낌과 함께, 무엇보다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나쁜 소식은 늘 몸으로 먼저 도착하고, 머리는 한참 뒤늦게 상황을 따라 이해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떤 걸 먼저 듣고 싶어?”
하지만 정작 삶은 묻지 않는다.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냥 삶이 정한 순서대로 들려준다. 어떤 날은 좋은 소식이 먼저 와도 뒤이어 도착한 나쁜 소식이 모든 걸 뒤엎어버리고, 또 어떤 날은 나쁜 소식이 먼저 와도 예상치 못한 따뜻한 말 하나가 그 어두움을 밀어내기도 한다. 결국 소식의 순서를 결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삶이다.

좋은 소식은 언제나 따뜻하다. 하지만 그 온기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기쁨은 손가락 사이로 쉽게 빠져나가고, 여운도 짧다. 반면 나쁜 소식은 오래 남는다. 마음의 깊은 곳까지 내려앉아 천천히 움직이며 잔상을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한다. 나쁜 소식이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소식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에 더 민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좋은 소식을 듣고도 불안해진다.
‘이 기쁨 뒤에 무슨 일이 따라오면 어쩌지?’
행복을 앞에 두고도 그림자를 먼저 떠올리는 인간의 마음. 단단하면서도 취약한, 그래서 더 인간적인 마음.

당신도 떠오르지 않는가.
어떤 소식을 듣기 전 가라앉았던 목소리,
받자마자 흔들리던 손끝,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 알 수 없던 순간들.
지금 떠오르는 ‘그 소식’ 하나가 있지 않은가.

나쁜 소식 앞에서 사람은 모두 비슷해진다. 고개를 떨구는 속도만 다를 뿐, 심장이 하는 반응은 같다. 어떤 날은 울음이 먼저 차오르고, 어떤 날은 멍해져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슬픔은 꼭 눈물로만 오는 게 아니다. 가슴이 텅 비는 순간에도, 숨이 갑자기 막히는 순간에도 슬픔은 조용히 자리 잡는다.

좋은 소식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도착한다.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사람도 있고, 그저 조용히 마음속에서 빛을 하나 켜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기쁨이어도 담기는 그릇이 다르다.

어떤 날은 아무 소식도 없기를 바라기도 한다. 침묵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불안이 숨어 있다. 소식이 없으면 우리는 상상으로 빈틈을 채우고, 상상은 늘 어둠 쪽으로 굴러간다. 아무 말도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그림자만 더 길어진다.

그래서 소식의 순서보다 중요한 건, 그 소식을 듣는 나의 상태다. 마음의 체력이 남아 있는 날에는 나쁜 소식도 이겨낼 수 있지만, 이미 지친 날에는 좋은 소식조차 흔들림 없이 받아들일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결국 소식의 무게는 내 마음이 결정한다.

살면서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좋은 소식은 나를 위로하고, 나쁜 소식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어느 쪽도 헛되이 지나가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소식을 들은 뒤 내가 어떻게 버티고 다시 걸어 나갔느냐였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나쁜 소식을 듣던 날, 비 내리던 거리에서 한참을 서 있던 순간.
코끝에 떨어지던 빗방울 하나가 유난히 차갑던 순간.
가방 속 알림음조차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게 들리던 순간.
그날의 공기와 빛, 그리고 멍해진 감정.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으로 여전히 선명하다.
사람은 아픈 장면을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또 다른 장면도 있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같은 날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좋은 소식이 그날의 어둠을 조금 밀어내던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무너진 마음을 잠깐 붙잡아주던 순간.
빛은 그렇게 조용히 마음에 스며든다.

이 두 장면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왔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삶은 결국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지나가게 한다는 걸.
소식이 나를 흔들어도,
다시 일어서는 속도는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오늘도 누군가는 기쁜 소식을 듣고,
누군가는 견디기 어려운 소식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한 가지다.

빛이 먼저 오든, 그림자가 먼저 오든, 결국 걸어가는 건 나다.
소식은 나를 흔들 뿐, 나를 결정짓지 못한다.
흔들림 속에서 다시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살아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식을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린다.
그 소식이 내 삶을 무너뜨릴지 모르지만,
동시에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소식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될 날이 오길 바란다.
그 이야기가 또 다른 ‘좋은 소식’이 되어
미래의 나에게 건네질 수 있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