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사라진 사전
나는 사실 포기가 쉬운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조금만 어긋나면 ‘아, 아닌가 보다’ 하고 발을 뺐다. 애초에 잘못 들어선 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뒤돌아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문을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 단순한 행위가 점점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마다 가슴 어딘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게 패배 같아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떠나는 나를 보며 도망치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내 사전에는 도대체 어떤 단어들이 적혀 있었던 걸까.
사전이라는 건 단순히 뜻을 정리해 둔 책이 아니다. 살아오며 선택하고 버티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 모든 장면이 단어로 압축된, 나만의 세계 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지도 속에 나는 너무 오랫동안 ‘포기’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며 살았다. 말로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피해 다니는 데 능숙했던 것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 예상과 다르면 포기, 미묘하게 기운이 어긋나도 포기. 그 단어는 내 사전 속에서 너무나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카드였고, 그래서 내 삶은 종종 허전한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변했다. 이유를 정확히 짚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반복되는 포기 끝에서 마침내 알게 된 감정 때문일 것이다. 포기는 ‘끝’이 아니라 ‘지워짐’이라는 걸. 포기하는 순간 나는 단어 하나를 없애버리는 듯했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아프게 남았다. 그래서 나는 내 사전에서 가장 먼저 지운 단어가 바로 포기였다. 대신 ‘일보 후퇴’를 적어 넣었다. 후퇴는 포기와 다르다. 포기는 문을 닫는 것이고, 후퇴는 문 바깥으로 잠시 걸어 나와 숨을 고르는 것이다. 뒤돌아선 것이 아니라, 다시 들어가기 위해 거리를 두는 일이다.
실제로 일보 후퇴는 내 삶에서 자주 날 구해주었다. 너무 벅찼던 순간들, 마음이 크게 흔들리던 날들, 이미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던 어떤 흙탕물 속에서조차, 나는 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기술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만둘 용기도 필요하다.” 맞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가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처럼 듣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용기였다. 일보 후퇴하는 용기. 반 박자 쉬어가는 용기. 방향이 맞는지 관찰하는 용기. 포기가 아닌 후퇴라는 언어를 선택하는 용기.
이 변화를 설명하려면 오래 전의 나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나는 늘 서두르는 사람이었다. 결과가 느리면 불안했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초조했다. 그래서 포기는 빠른 선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너무 쉽게 상처도 남긴다는 걸.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뒤돌아선 순간들, 조금만 기다렸다면 달라졌을 선택들, 오래 걸렸을 뿐 사실 나와 맞았던 길들. 그 모든 ‘아깝다’라는 감정이 어느 날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노력의 부족보다 기다림의 부족에 더 취약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사전을 완전히 새로 쓰기 시작했다. 먼저 ‘포기’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재정비’를 넣었다. ‘체념’을 지우고 ‘전환’을 넣었다. ‘그만’을 지우고 ‘다시’를 넣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일보 후퇴’를 큰 글씨로 새겼다. 그 단어를 적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것이며, 실패가 아니라 조정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큰 숨을 주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든 잠시 멈춰야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멈춤이 포기가 되지 않도록 방향을 바꿔주는 단어. 그게 바로 일보 후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단어가 내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예전의 나는 스스로에게 매정했다. “안 되면 포기해.” “어차피 안 되는 걸 뭘.” 이런 말을 나는 나에게만큼은 잔인하게 내뱉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쉬어가자.” “지금 판단하지 말고 내일 다시 보자.”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엔 될 수 있어.” 이 다정한 문장들은 나를 포옹하는 새로운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언어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사전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나는 요즘 이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산다.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나는 실망이 생기면 관계를 끊는 쪽을 택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관계에서도 포기 대신 일보 후퇴를 쓰기 시작했다. 잠시 거리를 두고, 감정의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신기하게도 그 짧은 후퇴는 나와 상대 모두를 살렸다. 포기할 줄 알았던 관계들이 다시 살아났고, 가벼운 말다툼으로 끝날 일들이 깊은 이해로 이어졌다. 인연은 포기보다 일보 후퇴를 더 필요로 하는 법이었다.
삶의 많은 순간에서 나는 이제 묻는다. “여기서 필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포기라는 단어는 여전히 내 손에 자연스럽게 잡히지 않는다. 대신 ‘전환’, ‘선회’, ‘다시’, ‘유연함’, ‘머무름’, 그리고 ‘일보 후퇴’ 같은 단어들이 손에 먼저 쥐어진다. 이 단어들은 나를 단단하게도 만들고, 부드럽게도 만든다.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요구와 상처를 온몸으로 받지 않도록 적절히 물러나 숨 쉴 여백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포기하던 사람이 더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누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버티는 쪽을 선택해?” 그 질문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버틴 게 아니라 잠깐 물러났던 거야.” 포기했다면 나는 이미 그 길을 떠났겠지만, 후퇴했기에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포기는 끝에 닿는 일이지만, 후퇴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사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포기 없이도 살 수 있는 방식들로 채워진 나만의 책. 그리고 그 책을 하루하루 업데이트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이제 나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안다. 포기가 쉬운 사람이었던 나는 이제 포기가 더 어렵다. 포기하는 대신 잠시 물러나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다시 방향을 본다. 그 과정이 나를 지키고, 나를 살리고, 나를 앞으로 밀어준다. 내 사전 속 단어들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사전을 펼친다. 새로운 단어를 적어 넣을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그 어디에도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는 것.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일보 후퇴. 다시 걷기 위해 필요한, 가장 다정한 한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