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순간, 진짜 빌런이 된다.
추천 클래식
Prometheus: The Poem of Fire, Symphonic Poem for Piano, Choir, and Orchestra, Op. 60”
(by Alexander Scriabin)
빌런은 원래 나쁜 사람으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진짜 빌런은, 욕을 먹을 걸 진작 알고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책임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래도 멈추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은 최소한 자기 선택의 무게를 이해한다. 나는 그런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스스로 한 선택의 대가가 눈앞에 다가오자 돌연 몸을 웅크리고, 심신 미약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며 도망치는 사람들이다. 그 비겁함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진짜 악’이다.
살다 보면 그런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유난히 많다. 내가 예전에 알던 사람 하나가 그랬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며 여기저기 상처를 남기고 다녔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나는 솔직했을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솔직함을 빌미로 무책임을 덮는 장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그가 저지른 일들이 터져 나왔을 때 그는 어떻게 했느냐고? 아주 익숙하게도, 그가 선택한 건 사과도 해명도 아닌 ‘잠수’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모두 끊고,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처럼 포장한 메시지만 남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가장 먼저 벽을 세우고 뒷걸음질 친 사람은 바로 본인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숨는 순간, 그는 진짜 빌런이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빌런을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누구나 충동적이고, 때론 이기적이다. 욕망에 흔들리고, 선택을 그르칠 때도 있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다. 그 실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그게 그 사람을 결정한다. 자신의 행동을 바라볼 용기가 있는 사람, 욕을 먹더라도 남아서 자신의 책임을 끝까지 짊어지려는 사람은 빌런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 나쁜 짓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쁜 선택의 뒷감당을 회피하는 태도가 문제다. 책임을 짊어질 용기가 없다면, 시작도 말았어야 했다.
책임은 언제나 무겁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는 신뢰는 다시 쌓는 데 아주 오래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망친다. 누구도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도망치는 순간, 그 무게는 오롯이 ‘비겁함’이라는 이름으로 흉측하게 남는다. 심신 미약을 핑계 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 때가 있다. 멘털이 무너지는 날도 있고, 감정이 마비되는 순간도 있다.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진짜 아픔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려는 서툰 계산’이 된다. 그 계산은 언제나 티가 나기 마련이다.
살면서 나는 책임을 지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을 수없이 봤다. 그 차이는 아주 단순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늘 말이 많았다. “내가 이런 의도였던 건 아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이런 말들로 자신을 감싸고돌며, 미숙함을 변명으로 바꾸려 했다. 반면 남아서 책임을 감당한 사람들은 의외로 말이 적었다. 그냥 고개 숙이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스스로의 무게를 받아들였다. 그 무게를 감당해 내는 사람은 절대 빌런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생각한다. 어쩌면 빌런이란 단어는 우리가 누군가의 선택 뒤에서 만들어낸 ‘굴절된 이미지’ 일지도 모른다고. 실제로는 자기 이야기의 중심에서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인데, 타인의 시선은 그 사람을 악당으로 몰아간다. 그렇다면 누가 빌런이고 누가 영웅인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세상은 언제나 누군가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비난의 대상이 바뀌는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 안에서 단 하나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빌런을 다르게 본다. 욕을 먹을 걸 알고 시작했어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끝까지 책임지며 서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빌런이 아니다. 진짜 빌런은, 자신이 만든 혼란 속에서 제일 먼저 도망치는 사람이다. 눈앞에 남겨진 피해는 그대로인데, 그 무게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채 사라지는 사람. 심신 미약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의도를 흐리고, 상황을 미화하고, 자신만의 서사 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람. 그 장면이야말로 나를 가장 화나게 하고, 가장 실망하게 한다.
책임지는 사람과 책임을 피하는 사람의 차이는 너무도 선명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진심은 늦더라도 닿고, 비겁함은 더 늦을수록 추해진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감당한 만큼 성장하고, 감당하지 않은 만큼 무너진다. 그러니 욕을 먹을 걸 알고 시작했다면, 숨지 말아야 한다.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선택의 끝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선택으로 살아가고,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빌런으로 불리더라도 책임지는 사람은 언젠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책임을 회피한 사람은 자신이 만든 그림자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 그림자는 변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다. 진짜 빌런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다. 잘못에서 도망친 사람이다. 책임을 피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해치고도 모른 척 고개 돌린 사람이다.
욕을 먹을 걸 알고 시작했다면, 끝까지 남아라. 책임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증명하는 것이다.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결코 빌런이 아니다. 진짜 빌런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무게에서 도망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묻는다.
도망친 사람과 책임진 사람 중, 누구를 더 두려워해야 할까?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