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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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et for the End of Time
살다 보면 말을 아끼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좋다는 말은 쉽게 나오는데, 싫다는 말은 목구멍에서 걸린 채 끝내 내려가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누가 나에게 “이건 어떤데?”라고 물어오면 웃으며 “괜찮아”라고 답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데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조용한 평화를 얻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조금씩 잃고 있었다. 침묵은 다정하지 않았고, 양보는 온전히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먼저 놓아버리는 습관이었을 뿐이다.
싫다는 한마디가 세상과의 관계를 뒤흔들까 봐 도망치듯 삼킨 적이 많았다.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내 일정, 내 감정, 내 여유는 접어둔 채 “응, 해줄게”라고 답했다. 거절은 무례라 믿었고, 내 마음은 늘 뒤로 밀렸다. 어느 날은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늘 이렇게까지 참아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그때 깨달았다. 소신 없는 사람은 착한 게 아니라, 조금씩 자신을 지워가는 사람이라는 걸. 나를 가장 쉽게 잃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침묵이라는 걸.
소신은 거창한 철학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순간, 제일 사소한 선택에서 싹이 튼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도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습관, 지치는데도 이만큼 했으니 더 해보라는 타인의 말에 끌려다니는 일, 하고 싶지 않은데 ‘예의’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웃어주던 순간들. 이 작고 흔한 장면들 속에서 나는 수없이 나를 잃었다. 그래서 어느 날 다짐했다. 내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살겠다고. 그것이 바로 소신이라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자. 기쁜 건 기쁘다고 말하자. 그리고 싫은 건, 싫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막힌다. 나도 그랬다. 싫다는 말이 상대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거절은 마음을 쪼개는 일처럼 아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싫다 말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상대와 나 사이를 서서히 망가뜨린다는 걸. 옅은 고마움 위에 쌓인 피로는 결국 관계를 무너뜨린다. 진짜 예의는, 솔직한 말과 명확한 경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소신이 내 생각만 옳다 믿으며 남을 몰아붙이는 고집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소신은 벽이 아니라 창이다. 내 마음을 지키되, 남의 바람도 들일 수 있는 여지. 따뜻한 공기는 들이고, 차가운 바람은 막아내는 창문처럼, 소신은 내 삶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틀이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느껴도 타인의 세계를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 말할 권리가 있다면 듣는 책임도 있어야 한다. 소신은 나를 지키는 힘이지, 남을 다루는 힘이 아니니까.
사람들은 종종 “소신 있게 살아”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소신은 말보다 어렵다. 싫다 말하면 관계가 멀어질까 두렵고,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될까 걱정된다. ‘나만 이기적인 건 아닐까’ 자책도 따라온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답은 단순하다.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나를 지켜주겠는가.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예의 속에 나 자신이 빠져 있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라 자기 방치다. 나는 더 이상 침묵으로 나를 모서리까지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
소신을 가진다는 건 단단한 갑옷을 휘감는 게 아니라,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누군가 내 선택을 이해하지 않아도, 그 선택이 분명한 이유를 가진 기둥처럼 서 있으면 된다. 때로는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불빛, 그게 소신이다. 세상에 휘둘려도 다시 제자리로 기울어 오는 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만 결국 마지막 결론은 내 쪽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무게감.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 관계가 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나 혼자 무너진다. 상처를 피하려고 침묵했지만, 결국 상처는 나에게 먼저 왔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보기로 했다.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해방감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서운해할까 걱정되었지만, 그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안도했다. 내가 나에게 솔직해졌다는 그 사실 하나가, 오랜만에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같았다.
소신은 결국 나를 위한 말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위해 들고 있는 작은 깃발이다. 바람 부는 날에도 꺾이지 않고 펄럭이며 “나는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깃발. 남의 시선을 따라 허둥대지 않고, 내 감정의 방향에 귀 기울이는 태도. 누가 뭐라 해도 내 자리에서 내게 필요한 선택을 하는 힘.
나는 이제 알겠다. 소신 없던 시절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타인의 바람에 흔들리느라 내 걸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짐한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명확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남의 삶에 침범하지 않고, 내 삶을 과하게 내세우지 않는 균형을 지키겠다고. 필요할 때는 거절하고, 말해야 할 때는 말하며, 그 말이 누군가를 꺾지 않게 조심하겠다고.
끝내, 소신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나는 내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남의 생각을 존중하듯, 내 마음도 존중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나를 잃지 않을 때, 비로소 남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말하며.
타인의 경계를 넘지 않고, 내 마음을 넘기지도 않으며.
이 작은 태도가 결국 나를 지켜낼 것이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내 삶의 중심을 흔드는 바람 앞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백지가 아니다.
내 무늬가 천천히 새겨지는 중이고, 그 무늬를 지켜내는 힘이 바로—
소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