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냄새 속에서 남아 있는 것들
사람은 떠났지만, 냄새는 남아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처음 그 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숨을 들이켜는 순간 알았다. 두 분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그 냄새만큼은 여전히 “우린 여기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진짜 이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두 분이 살아 계실 때 집은 늘 작은 소리들로 가득했다. 새벽이면 들리던 할머니의 기침, 늦은 밤 화장실 다녀오시던 할아버지의 슬리퍼 소리, 장롱 문을 여는 사각거림, 볕 들어오는 창가에서 할머니가 빨랫감을 개던 손의 부드러운 바스락임. 그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사라지자 집은 너무 넓고, 너무 조용했다. 조용함은 때때로 평온함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를 잃고 난 뒤의 조용함은 공허함이었다. 복도에서조차 발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유독 하나, 그 방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공기가 비지 않았다.
문을 열면 오래된 나무장의 냄새, 햇빛 잘 드는 날마다 방 안에 퍼지던 따뜻한 비누 향, 할아버지가 쓰던 로션 냄새가 얇게 겹겹이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사라졌어야 할 것 같은 그 향이, 오히려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냄새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데, 어쩌면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오래 머물렀다 사라지는 과정이, 더 아프다.
처음에는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문틀을 잡고 잠시 멈춰 서다 결국 다시 돌던 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단순히 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정말로 두 분이 이곳에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지 않으면, 냄새가 더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며칠이고, 몇 주이고 방 문을 꼭 닫아두었다. 냄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그 마지막 흔적을 지키기 위해.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은 결국 마주해야 할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날도 나는 그저 물을 뜨러 가는 길이었는데, 발걸음이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문손잡이에 손이 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을 켜니 방 안에 오래 고여 있던 어둠이 천천히 밀려났다. 벽지는 해가 닿지 않은 탓인지 조금 누레졌고, 장롱 위엔 먼지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공기 속에서… 나는 할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너무 익숙해서, 그래서 더 낯선 냄새.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 할머니의 간장국수도 잃어버렸다.
그 맛은 이제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
할머니의 간장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음식이었다. 국수, 간장, 참기름, 약간의 설탕.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할머니의 평생이 들어 있었다. 손목을 꺾어 물기를 터는 소리, 찬물에 헹군 국수를 한 번 더 털어내던 동작, “조금 더 먹어라” 하며 그릇을 내밀던 할머니의 눈빛. 나는 그 어떤 맛도 다시는 똑같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밥 위에 손으로 찢어 올려주던 김치—
그 역시 이제는 먹을 수 없다.
칼로 썰어선 절대 나올 수 없는 결, 손끝에서 눌렸다가 찢어지는 그 감각까지 나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김치 한 조각에도 삶의 연륜과 손끝의 애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나는 왜 그때 더 많이 받아먹어두지 않았을까. 왜 더 많이 배워두지 않았을까. 김치를 찢는 그 손의 모습을 왜 오래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이제야 밀려온다.
그 방에 앉아 있으면, 냄새가 기억을 불러왔다.
기억은 파도처럼 조용히 밀려오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을 세게 치고 지나갔다.
할머니가 이불을 털던 소리,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따뜻한 겨울 햇살 아래 작은 난로를 켜놓고 함께 TV를 보던 저녁.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모든 순간이, 그 냄새와 함께 살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냄새도 데려간다.
계절이 한 번 지나가고, 두 번 지나갈 때쯤 방 안의 공기를 맡으면, 예전처럼 가슴을 찌르는 향은 점점 옅어졌다. 창문을 열 때마다 낯선 바람이 방 안을 더 깊이 채웠고, 두 분의 체온이 남아 있던 자리는 서서히 다른 공기로 대체되었다. 처음엔 그 변화가 너무 서글펐다. 냄새가 사라지는 건, 두 분이 진짜로 이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문을 닫아두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어느 날, 아주 조용한 아침에 나는 알게 되었다.
냄새는 사라져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할머니의 간장국수 냄새는 이제 방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설렁탕집 앞을 지나치다 훅 풍기는 간장향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시장에서 김치를 고르다 갑자기 손끝이 멈추는 순간이 있고, 할머니가 쓰던 비누 향이 스친 듯 떠오르는 날도 있다. 냄새는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방은 이제 비어 있다.
더 이상 두 분의 냄새도, 체온도, 목소리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 빈 방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마치 아주 옅은 향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건 실제 냄새가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나는 그 방에 들어가도 울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 어딘가에서 두 분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라진 냄새는 공기에서만 사라졌을 뿐,
내 삶 구석구석에 다른 형태로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나는 그 방보다 더 선명한 곳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냄새는 사라졌지만 사랑은 남는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공간은 그 사람을 기억하고,
남겨진 우리는 그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간다.
사라지는 것이 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은 형태를 바꿔 계속 살아남는다.
나는 오늘도 그 방 앞을 지날 때마다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사라진 냄새 속에서도, 나는 두 분의 손길과 목소리와 웃음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