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증명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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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 – “Je te veux pour tout le temps que le silence respire.”
스스로를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늘 어깨를 움츠렸다. 남들은 미리 외워온 문장이라도 꺼내놓듯 자연스레 자신의 직업과 성과, 소속을 말하는데, 나는 입술 끝이 굳어버렸다. 내게는 명함도 없었고, 내세울 만한 화려한 경력도 없었다. 어떤 모임이든 ‘자기소개’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슴속에 잔잔하던 물결이 순식간에 거칠게 요동쳤다. 말할 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시선이 고정된 채로 머뭇거리는 내 모습은 언제나 작아 보였다. 누군가는 직함 하나로 단단한 울타리를 세우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리 뒤져봐도 쥐어줄 만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늘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나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은 오래된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사람들은 종종 ‘너를 소개해봐’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단 몇 마디로 매일의 고민과 지난 상처, 버텨낸 계절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나를 이루는 것들은 종이에 적히지 않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소개라는 짧은 무대 위에 서는 순간, 나는 기계처럼 간단한 정보들만 나열했다. 생년월일, 사는 지역, 취미 몇 가지. 하지만 그런 말들은 마치 테두리만 있고 속이 텅 빈 종이 인형 같았다. 누가 봐도 금세 구겨질 것만 같은 존재감. 그 얄팍함이 나 자신에게조차 실망을 일으켰다. 진짜 나를 보여준 적은 없는데, 벌써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도 속으로는 ‘이 말이 진짜 나일까?’라고 되묻곤 했다.
어느 날 그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무심히 말했다.
“그래서, 너는 뭐 하는 사람이야?”
순간 머릿속이 텅 비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내가 하는 일은 이름표도 없고 직함도 없다. 설명하려면 너무 길고, 짧게 말하면 너무 빈약하다. 입은 열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고, 그 침묵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구나. 누군가에게 보여줄 증거를 찾느라, 정작 내 안의 것들은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구나.
살아오며 쌓아온 작은 성취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그것들은 종류가 다르다는 이유로 늘 뒷전이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하게 빛나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야말로 나를 만든 것들이었다. 고요한 밤에 혼자 흘린 눈물, 누구도 모르는 자리에서 끝까지 해냈던 일들, 도망치고 싶다가도 다시 돌아와 마무리했었던 선택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소개하라는 단 한 줄의 질문 앞에서는 너무 쉽게 밀려나곤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증명’이라는 말을 두려워했다. 증명은 늘 누군가의 판단 아래 놓여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옳다 하면 옳은 것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무너지는 것. 그런 불안정한 기울기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외부의 기준을 들이밀었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실패한 사람처럼 느꼈다. 명함 한 장, 직장 이름, 숫자로 환산되는 이력들. 그런 것들이 없으면 삶의 서류가 미비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마음속 깊에서는 알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증명은 누군가에게 내 삶을 확인받는 절차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스스로 인정하는 속삭임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랫동안 남들에게 보여줄 답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간단히 요약할 문장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꾸 작아졌다. 직업이 나의 가치 전체가 되어버리는 세상에선 이름 뒤에 붙는 설명이 없으면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위축됐고, 누군가에게 눈에 띄는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나를 옭아맸다.
하지만 어느 날, 아주 단순한 순간이 나를 흔들었다. 소개할 말이 없어 주저했던 내가 조심스레 내 이야기를 털어놓자, 듣던 사람이 따뜻하게 말해줬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살아오면서 계속 해온 것들이 있는데.”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고 믿었다. 부족하니까 채워 넣어야 하고, 설명이 없으니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늘 살아 있고, 존재했고, 버텨왔다. 그 자체가 이미 또렷한 증명이었다.
그다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소개를 요구받을 때면 예전처럼 숨부터 들이켜지는 건 여전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저는… 살아오면서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조각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하나하나 붙잡고 살았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느낀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조용한 하루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나의 밤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누가 보지 않아도 버틴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세상은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무엇을 했고, 어떤 성과가 있고,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언어가 없어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누군가를 따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내 안에 수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다. 숨이 차서 멈춰 섰던 날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던 날도, 혼자서 끝까지 버틴 날도. 그런 순간들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직함보다 더 진짜였고, 숫자보다 더 오래 남는 흔적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증명은 번쩍거리는 무언가를 들이밀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나를 안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느끼던 순간들조차 사실은 내가 살아 있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증명은 거창함 대신, 사소한 숨결 속에 숨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를 일으켰던 힘, 마음이 무너져도 다시 한 걸음 내디뎠던 용기, 실패해도 돌아오던 의지. 모든 것이 증명이다.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 존재를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조용히 나를 살아낼 것이다. 언젠가 누가 묻더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아낸 사람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증명은 결국 이렇게 속삭인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진실한 안부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안부를 들을 준비가 된 순간, 비로소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