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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발자국이 쓰는 봄

by Helia

두꺼비의 발자국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뒤로, 젖은 바람과 함께 봄이 따라왔다. 처음 걷는 세상은 낯설지만, 그 발자국 위로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날 것이다.

아기 두꺼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겨울을 버티던 밤들이 아직 등껍질 안쪽에 남아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발끝엔 이미 다른 계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물속에서 떨며 지나온 시간들은 그의 몸을 작게 만들었지만 마음만큼은 단단히 여물어 있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흙 위에는 작은 문장이 새겨졌다. 마치 세상이 그의 첫 문장을 읽어주듯, 바람은 그 흔적 위를 살며시 지나갔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숲 속의 그림자는 때때로 발을 붙잡았다. 나무 사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울음과, 발밑에서 스치는 미세한 움직임이 작은 심장을 덜컥하게 했다. 그 공포는 겨울에 익혀둔 침묵보다 훨씬 생생했다.

“괜찮아.”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두꺼비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두려움이 발끝을 덮어도, 그는 그 두려움을 끌고서 앞으로 움직였다. 살아 있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떨리지만 멈추지 않는 것.

숲은 조금씩 넓어졌다. 가지 사이로 스며든 빛이 물방울처럼 떨어졌고, 그 빛에 닿을 때마다 그의 몸은 더 이상 겨울의 잔해가 아니었다. 작은 생명들이 잎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갖는 희미한 떨림과, 이 봄을 놓치지 않겠다는 조용한 의지. 말이 없어도 서로의 계절을 알아보는 순간이었다.

함께 걷기 시작하자 길은 조금 덜 무서웠다. 바람은 그들의 어깨 위로 꽃향기와 물비린내를 번갈아 실어 나르며 새로운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숲 저편에서 금빛이 번졌다. 아이들은 멈춰 섰다.

그 빛은 길을 열어주는 신호 같았다. 잎사귀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함이 두꺼비의 등을 밀었다. 용기를 대신해 주는 손길처럼. 그는 숨을 고르고 한 걸음 내디뎠다.

눈앞에는 넓고 부드러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 동안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모래 위에 발을 올리자 서걱대는 소리가 났다. 낯선 세계의 첫 목소리였다.

그는 모래를 살짝 파보았다. 금빛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걷는다는 것을.

아기 두꺼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빛이 높게 걸려 있었고, 얇은 구름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 맑은 하늘에 자신이 남긴 작은 발자국들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기서 다시 자랄 거야.”

바람이 그 말을 들어 올렸다. 숲의 끝까지, 연못의 자리까지 닿을 듯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자국 옆으로 또 하나의 작은 발자국이 놓였다.
그렇게 새로운 봄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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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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