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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장|몽상화가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꿈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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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자꾸만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다고 믿었던 장면이 계속해서 되감기 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하나가 밤마다 나를 찾아온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꿈은 늘 나보다 솔직했고, 내가 모른 척한 것을 기어코 끌어올렸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꿈이 하나의 예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다시 들러붙는 그림자처럼, 매일 밤 되풀이되는 장면들이 나를 무언가의 기점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그 기점은 설명하기 어렵고, 닿으려 하면 어둠 속으로 파묻히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 대신 오래된 친밀함이 함께 따라왔다.

나는 가끔 확신한다. 이번 생에서 처음 겪는 장면이 아닌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느껴지거나, 발 디딘 적 없는 길인데도 익숙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처럼. 그것은 데자뷔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따뜻한 감각이었고,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또렷한 신호였다. 마치 전생에서 남겨진 인연의 조각이 이 생에서도 나를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기억해야 할 때가 되었다며, 잊지 말아 달라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기척. 꿈은 그 문을 열어젖히는 손 같았다.

꿈속에서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시간, 해 질 녘과 새벽 사이의 흐릿한 틈. 꿈은 매번 같은 장면을 보여주었다. 안개가 옅게 깔린 골목, 이름 모를 누군가의 뒷모습, 바람 사이로 스친 낯선 목소리.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그 장면이 무섭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안심이 될 만큼 친근했다. 마치 내가 기억했던 것보다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풍경처럼. 처음 보는 장면이 이렇게 익숙할 수 있을까 싶어 정신이 들 무렵이면, 나는 그 익숙함의 정체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깨어났다.

어쩌면 나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묘하게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퍼즐처럼 맞아 들어갔다. 어떤 날은 길을 걷다 마주친 눈빛 하나가 전생의 잔향처럼 흔들렸고, 어떤 순간은 누군가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오래 묵혀둔 기억이 몸속 깊은 곳에서 튀어 올랐다. 나는 그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번 생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분명한데도, 마치 ‘다시’ 만나 반가운 듯한 느낌이 번졌다. 전생의 인연이 지금 이 생에서도 부드럽게 깨어나는 듯한 기묘한 떨림. 그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반복되는 꿈은 과거의 상처가 남긴 흔적이라고. 하지만 나의 꿈은 상처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 정확하게는, 상처보다 오래된 감정 같았다. 마치 누군가를 향한 미련, 끝내 이루지 못한 이야기, 혹은 이번 생에서 다시 마주해야 할 숙제가 꿈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마음은 기억을 잊었어도 영혼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몸은 바뀌고 얼굴도 바뀌지만, 마음이 지닌 결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결이 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나는 이러한 반복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꿈은 나에게 어떤 풍경을 그리도록 요구하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속에서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색깔들. 몽상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었고, 나는 그 몽상이 끌어오는 장면들로 매일의 삶을 다시 칠했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을 먼저 보라고 말하지만, 나는 현실보다 내면의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몽상가라고 불렀고, 나는 그 말이 내겐 몽상화가라는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몽상화가로 산다는 건 단순히 상상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다. 닿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붙잡고, 보이지 않는 색을 마음의 팔레트에 올려두는 일이다. 그 색들은 대부분 꿈에게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꿈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선들을 남겼고, 그 선들을 따라 실제의 풍경을 다시 이해하는 일이 삶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걷고 있어도, 다른 시간대의 바람을 느끼곤 했다. 그 바람은 때로는 오래 전의 나를 불러왔고, 때로는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예고하듯 스쳐갔다.

어쩌면 나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에만 발 딛고 살지 못하는 사람. 현실이 나를 끌어당기면 꿈이 다시 손목을 잡고, 꿈에 빠져들면 현실이 견인하듯 끌어올렸다. 그 흔들림의 리듬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깨달았다. 나는 현실보다 ‘사이’를 더 잘 살아낸다는 것을. 경계라는 곳은 애매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많은 색이 존재했다. 나는 그 색들을 그 누구보다 또렷하게 보았다.

전생을 기억하는 자로 살아간다는 건, 기억하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 모순 속에서 나는 나만의 확신을 얻었다. 영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마음이 한 번도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난 인연이 있다면, 그것이 우연으로 포장되어 나타날 뿐이라는 것. 우연이라는 옷을 벗기면, 마음이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던 이름이 드러나는 것뿐이다.

나는 이제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꿈은 나를 데려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길을 되찾는 지도에 가깝다는 걸 안다. 반복되는 장면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그 질문이 결국 내가 나를 이해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어왔다. 꿈은 나에게 전생의 숨결을 건네는 방식으로 성장했고, 나는 그 숨결을 글로 옮기며 살아왔다. 글은 나의 그림이고, 문장은 나의 붓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몽상화가다.
현실의 빛이 너무 강하면 눈을 감고, 꿈이 너무 번지면 눈을 뜨며, 두 세계 사이의 틈을 천천히 건너는 사람.
반복되는 꿈을 해석하며, 이번 생에서 이어지는 인연의 흔적을 한 줄 한 줄 기록하는 사람.
마음속 오래된 계절을 다시 불러내어 글이라는 캔버스에 조용히 펼쳐가는 사람.

그리고 나는 안다.
몽상은 도피가 아니라 생존이다.
반복되는 꿈은 예언이 아니라 신호다.
전생의 인연은 환상이 아니라 기척이다.

그 기척이 느껴지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나를 이끌어온 보이지 않는 실을 따라, 이번 생의 남은 페이지를 조심스레 채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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