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장|행동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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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어떤 사람의 진심은 말보다 행동에서 먼저 드러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비어 있는 마음 또한 말보다 행동에서 먼저 드러난다.
말이 크고 요란한 사람일수록 행동은 이상하게도 작고 가볍고,
반대로 조용한 사람일수록 행동이 묵직하게 앞으로 튀어나와
누군가의 마음을 깊숙이 건드린다.
나는 이 차이를 오래전부터 관찰해 왔다.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건 말이 아니라, 결국 행동이었다.

허세는 번쩍이는 껍데기만 요란하게 굴린다.
반짝거리고 잘 포장된 말투, 과장된 몸짓, 한껏 부풀린 자존감.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허세는 금방 벗겨지는 종이 포장지에 불과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찢어지고, 물 한 방울만 떨어져도 색이 번진다.
그렇게 허세는 겉만 시끄럽고 속은 텅 비어 있다.
속이 비어 있으니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이다.

반대로 진심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 튀어나온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솔직해서
말로는 설명하지 못한 마음을 그대로 밀어낸다.
그 사람의 진심은 손끝에서 먼저 나타나고,
작은 행동 하나에 숨겨진 온도만으로도
그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오래된지, 얼마나 조용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내면을 가장 먼저 배신한다.
머리로는 숨기려 해도, 마음은 결국 손과 발로 흘러나온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무심한 척하다가도
손끝이 먼저 반응해 컵을 더 다정하게 건네고,
정 떨어진 사람 앞에서는 아무리 웃어도
문을 닫는 손목에 차가운 힘이 남는다.
행동은 감정의 그림자이고,
감정은 행동의 뿌리다.

우리는 모두 행동 속에서 정체가 드러난다.
누군가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말만 부풀리고,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말조차 아낀 채 행동으로만 말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위험한 건,
본인 스스로조차 자신의 행동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말은 예쁘게 꾸미고, 말투는 감정 없이 정제되어 있지만,
정작 행동은 거칠고, 무심하고, 때로는 잔인하다.
그 불일치야말로 사람의 진짜 민낯이다.

행동은 도망칠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다.
간혹 사람들은 말로 자신을 포장하려 들지만
결국 행동 앞에서 모든 껍데기는 무너진다.
말은 잠시 속일 수 있지만, 행동은 끝내 속일 수 없다.
말은 기억에서 fade-out 되지만,
행동은 마음에 선명하게 흔적을 남긴다.

나는 살아오면서 이런 진실을 수없이 확인했다.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말없이 내 옆자리를 지켜준 사람이 진심을 보여줬다.
번지르르하게 “도와줄게”라며 떠들던 사람보다,
새벽에 아무 말 없이 달려와 문을 두드린 사람이 마음을 움직였다.
말은 약속이지만, 행동은 증거다.
말은 계획이지만, 행동은 실천이다.
말은 가능성이지만, 행동은 현실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결국 행동 하나로 많은 것이 결정된다.
말로 수천 번 다짐해도,
단 한 번의 행동이 그 모든 다짐을 무너뜨리거나 완성시킨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라고 말해도
손이 먼저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를 적어 내려가고,
“이젠 괜찮다”라고 말해도
길을 걷다 갑자기 가슴이 저릿해 발걸음이 멈춰질 때가 있다.
말보다 앞서가는 행동은,
우리의 마음이 머리보다 더 솔직하다는 증거다.

행동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신호가 된다.
생각만 하던 일에 손을 대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그 행동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행동은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며,
내가 나조차 속이던 마음을 드러내는 창이다.
그래서 행동 앞에서는 핑계가 사라지고,
진짜 감정만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말속에서도
행동은 여전히 무겁고 어렵고 두렵다.
왜냐하면 행동에는 책임이 붙기 때문이다.
말은 흩어져 사라질 수 있지만,
행동은 반드시 결과를 낳는다.
행동은 앞뒤를 잴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잘못된 행동 하나가 때로는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동을 두려워하고,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말만 길어진다.

하지만 행동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변화가 없으면 삶은 같은 자리에서 썩기 시작한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생각은 많았지만 행동은 없었다.
불만은 많았지만 선택은 없었고,
후회는 많았지만 결심은 없었다.
행동은 삶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다.
행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새로운 문을 연다.

행동은 용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용기는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
작은 결정도 행동이다.
발걸음 하나, 한 줄의 문자, 책 한 페이지를 여는 손끝,
“괜찮다”는 말 대신 “괜찮지 않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선택,
이 모든 것이 행동이다.
작은 행동들이 쌓여 큰 변화가 되고,
그 변화가 결국 인생을 바꾼다.

나는 이제 안다.
행동이란 결국 나 자신에게 내리는 대답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기록된다.

말은 흔들려도, 행동은 남는다.
말은 속일 수 있어도, 행동은 진실을 드러낸다.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지만, 행동은 마음에 새겨진다.

허세는 번쩍이는 껍데기만 요란하게 굴리고,
진심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 튀어나와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사람의 마음을 깊숙이 건드린다.
그리고 나는 그런 행동의 흔적들을 통해
사람을 알아보고, 마음을 이해하고, 관계를 결정한다.

행동은 우리를 만든다.
행동이 쌓여 인생이 되고,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도
가장 감사한 순간도 결국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