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에서 배운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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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0점. 20점.
그 두 숫자가 마치 내 청소년기를 조롱하듯 웃고 있었다.
성적표 맨 구석, 아무도 안 보길 바라면서도 이상하게 가장 눈에 띄던 그 숫자들.
나는 늘 그 앞에서 작아졌다.
왜 그런지 모르게, 수학만 보면 심장이 조여 오고 손끝이 얼어붙었다.
마치 누군가 내게 차가운 문고리를 억지로 쥐여주는 느낌.
잡으면 아플 것 같고, 놓으면 도망치는 것 같아서 계속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태생적 수포자가 아니라,
‘수학’이라는 이름의 문 앞에서 늘 주춤거렸던 아이였다.
교실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교과서를 펼쳤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싸늘한 패배를 맛보고 있었다.
분필이 칠판에 긁히는 소리만 들어도 속이 내려앉았고,
문제집의 기호들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 문자처럼 느껴졌다.
같은 종이를 받아 든 친구들은 웃고 있는데,
왜 나만 그 종이가 숨 막히는 벽처럼 느껴졌을까?
가끔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왜 수학은 나만 미워하는 걸까?”
“다른 애들은 어떻게 이런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나는 머리가 나쁜 걸까? 아니면 정말 태생부터 안 맞는 걸까?”
내 안의 질문은 늘 한 가지였다.
‘수학은 왜 있는 걸까?’
공식은 왜 이렇게 자꾸만 만들어지는 걸까?
누군가는 이걸 연구해 내고 발견해 내고 축적해 왔다는데,
나는 왜 그 세계에 발끝조차 들이지 못하는 걸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수학 시간은 전쟁이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백전백패가 예정된,
퍼즐판을 놓자마자 답이 틀렸다고 뜨는 그런 전쟁.
하나 틀리면 기세가 꺾이고,
두 개 틀리면 머릿속이 텅 비고,
세 개를 넘기면 시험지는 이미 포기한 종잇조각이 되었다.
그런데도 어쩌겠는가.
나는 늘 그 전쟁터로 돌아가야 했다.
성적표만이 나의 생존을 증명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시험지 위의 숫자를 보며 이상한 기시감이 밀려왔다.
문제가 아니라… 내 삶 같았다.
답이 한 가지뿐이라는 오만함,
절대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는 만회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나는 문제를 무서워한 게 아니라,
‘틀리는 나’를 더 무서워한 것이었다.
왜 그 사실을 그때는 몰랐을까.
수학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도망친 거였다는 것을.
문 앞에서 내가 먼저 등을 돌린 것이었다는 것을.
어떤 때는 문제집을 펼쳐놓고 한 시간 동안 단 한 줄도 못 적었다.
손은 가만히 있는데 머릿속에서만 숫자들이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그 속에서 나는 또 스스로를 탓했다.
“왜 나는 안 될까? 왜 나는 이렇게 뒤처질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단순히 ‘수학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잔인했기 때문이었다.
수학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지만,
정답에 가는 길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그땐 정말 몰랐다.
누구는 3번 공식을 쓰고,
누구는 그래프를 그려보고,
누구는 시간을 두 배로 들여 결국 해낸다.
그 모든 방식이 ‘정답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한 채
늘 첫 번째 길에서 미끄러지고 바로 주저앉았다.
어쩌면 수학은 내게 인생을 가장 먼저 알려준 과목이었다.
말하자면 인생의 예행연습 같은 것.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문제들,
풀었다 싶은데 다음 순간 또 막히는 벽,
결국엔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
인생도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수학은 동시에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 풀어도 된다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도 된다고.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고.
그때는 몰랐다.
수학은 나를 괴롭히려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존재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의 나는 정말 작은 실패에도 심장이 무너져 내렸고,
틀린 문제 하나에도 온 세계가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수학 점수는 그저 종이에 적힌 숫자였을 뿐인데
나는 그 숫자들에 내 존재를 너무 쉽게 맡겨버렸다.
내 가능성을 숫자로 환산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 누구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를 그렇게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수학이란 건 사실 감정이 없다.
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나를 밀어내지도 않는다.
0점을 받든 100점을 받든
수학은 그냥 숫자로 서 있을 뿐이다.
그 감정은 언제나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내 안에서 묶였던 무언가가 풀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수학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문제를 풀지 못해도 괜찮아졌고,
실수해도 다시 해보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틀린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길을 찾으라는 신호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문제집을 펼쳐도 예전처럼 숨이 막히지 않았고,
틀렸다는 표시가 있어도 나를 자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라는 단어가 미묘하게 따뜻했다.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허락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허락한 첫 번째 기회였다.
수학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
뜻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
그래도 이어지는 시간들.
삶은 언제나 정의되지 않은 x와 같다.
하지만 x는 모르는 값일 뿐
존재하지 않는 값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노력하면,
때로는 우연과 행운이 섞이면
그 답은 결국 모습을 드러낸다.
0점도 답이었고,
20점도 좌표였다.
그 숫자들은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내가 버텨낸 시간의 흔적이었음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수학이 나를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내가 먼저 등을 돌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돌아서 다시 마주 본 순간,
수학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망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마치 늘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 나는 더 이상 수학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워할 이유도 없어졌다.
때로는 수학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틀려도 괜찮다.
다시 해보면 된다.
그게 너의 답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그리고 그 말은,
수학이 아니라
삶이 내게 들려주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