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빛을 찾아가는 밤
추천 클래식
요아힘 라프 (Joachim Raff) –
“Abendmusik: ‘Der Einsiedler’ für Bariton, Chor und Orchester, Op. 20”**
도시에서 별을 찾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서울 하늘 아래에선 별 하나 보기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다. 밤이 깊어져도 간판의 불빛은 좀처럼 지지 않고, 아파트의 창들은 하나둘씩 꺼지는 것 같다가도 금세 다시 켜지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쉼 없이 도로를 휘젓는다. 그렇게 온통 불빛뿐인 밤인데도, 어느 날엔 유난히 미세한 한 점의 빛이 하늘에 걸려 있는 순간이 있다. 마치 오래 숨어 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살짝, 은근히, 하지만 또렷하게. 그 작은 점 하나를 보는 일만으로도 마음속 오래된 무언가가 흔들린다. 내가 잃어버린 마음의 조각들이 잠시나마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감각.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건 결국 하늘보다, 내 마음이 먼저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라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어릴 때의 나는 별을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믿었다. 현대식 교실창들이 반짝이던 너른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 숨이 차오르면, 나는 늘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땀에 젖어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밤바람이 스치면, 별들이 손가락 끝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웠다. 그 시절의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넓고 투명했다. 별빛이 운동장까지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젠가 저곳까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자라기만 하면 오를 수 있는 길이 거기 있는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지금의 내가 돌아보면 터무니없고, 또 너무 예쁜 믿음이다. 닿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닿을 수 있다고 믿던 그때의 내가 더 빛났던 시절.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별은 바라보는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손으로 잡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라고 존재하는 신호처럼. 닿지 않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고,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다. 별은 그런 존재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쥐려고 애쓰지만 정작 깊이 남는 건 손끝에서 미끄러져버린 것들, 다 닿지 못한 감정들이다. 그리움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오래 살고, 소망은 닿지 않아서 계속 빛난다. 그래서일까, 별빛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서늘하고도 따뜻해진다. 오래된 슬픔과 희미한 기쁨이 동시에 깨어나는 듯한 기묘하고 조용한 떨림.
별이 빛나는 밤에는 낮 동안 묻어두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든다. 사람들의 말, 휴대폰 알림, 버스의 소음 속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들이, 깊은 밤이 되면 하나둘씩 살아난다. 어떤 날은 다정해서 마음을 쓸어내리고, 또 어떤 날은 예리한 질문을 품고 내 앞에 선다. “요즘 너 괜찮아?”라는 질문이든, “너 정말 원하는 게 뭐야?”라는 물음이든, 별빛 아래에서 듣는 마음의 목소리는 묘하게도 피할 수 없다. 잔잔하게 번지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와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은 언제나 조금 솔직한 밤이다. 낮에는 애써 외면했던 마음의 균열과 틈들이 조용히 드러나고, 그 틈 사이로 별빛이 스며든다.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 별빛은 나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넨다. “너는 지금 여기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 잘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흔들리고 있는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별은 말 없는 방식으로 알려준다. 누군가의 말처럼 반짝이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마음이고, 늘 흔들리는 것도 하늘이 아니라 나다. 그러나 그 흔들림마저도 별빛 아래에서는 조금은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서서히 모양을 갖춘다. 별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고, 그저 빛난다. 그 꾸준함이 때로는 말보다 더 큰 위로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사랑도 잠에서 깨어난다. 오래전에 지나간 감정들, 이미 흩어져 사라졌다고 믿었던 순간들, 어쩌면 더는 부르지 않으려 했던 이름들까지도 다시 마음속에서 스르르 움직인다. 스타카토처럼 날카롭게 박혀 있던 이별의 기억도 별빛 아래에서는 어느새 잔잔하게 변한다. 그때는 아팠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아픔마저 살아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단단하게 한다.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어떤 장면은 별빛을 얹어 다시 꺼내보면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다. 오히려 ‘그때의 나도 살아내고 있었구나’라는 다정한 깨달음이 더 크다. 별빛은 과거의 상처를 지우진 않지만, 그 위에 얇고 은은한 커튼을 드리워 덜 시리고 덜 매섭게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별빛이란 건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은 이미 죽어 사라진 별의 흔적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꺼진 별이 마지막으로 남긴 빛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사라졌어도 빛을 남길 수 있다니. 끝났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밝힐 수 있다니.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도, 지나간 관계도, 끝났다고 생각했던 삶의 여러 조각들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작은 빛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곧 별빛 같은 흔적이고, 삶이 켜켜이 만들어놓은 작은 증거들이다. 살아낸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별이 말없이 알려준다.
나는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을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그 밤은 나를 천천히 걷게 한다. 서둘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게 만든다. 대단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극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지금의 내가 그대로 괜찮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준다. 별빛은 스스로를 잘 보지 못하는 날에도 나를 놓치지 않는다. 이 어둠 속에도 길이 있다고, 아주 작지만 확실한 빛이 너를 데리고 나갈 거라고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밤하늘을 찾는다. 무언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별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잠시 쉬어갈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도 하늘 어딘가에는 작은 빛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흐렸던 하루였어도, 마음이 무거웠어도, 구름 뒤에 숨어 있을지라도 별은 있다. 때로는 단 한 점만 보여도 충분하다. 그 한 점이 나를 붙잡아 두고, 흔들리던 생각을 고요하게 만들고, 다시 살아갈 힘을 조금씩 되돌려 준다. 손에 닿지 않아도 괜찮다.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별이 빛나는 밤은 그렇게 나에게 천천히 다시 살아갈 이유를 건네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또 한 번 조용히, 아주 조심스레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