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 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 않았다
추천 클래식
Nikolai Medtner – “Forgotten Melodies, Op. 38: No. 2 Danza Festiva”
저녁의 빛이 길 위에 낮게 깔릴 때면, 나는 유난히 마음이 흔들리던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고,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도 모른 채 서성이던 시기. 그때의 나는, 내 이름을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아이 같았다. 말하자면, 나라는 존재가 너무 흐릿해서 손으로 만지면 부서질 것만 같고, 한숨만 불어도 흩어져 버릴 것 같던 그런 날들이었다.
이 글은 그때의 나처럼, 지금도 어둠 속에서 제 얼굴을 더듬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불씨다. 이름표를 잃어버린 채 세상을 걷는 것만 같은 삶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글의 어느 귀퉁이쯤에서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자신에게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을 맞는다. 나조차 나를 모르는 시간. 물음표가 피부처럼 들러붙고,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정작 가장 기대고 싶은 사람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허망함. 그럴 때 사람은 길을 잃는다. 스스로를 잃고, 삶을 잃고, 때로는 미래마저 잃어버린 듯해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늘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만 이렇겠지.”
세상 모두가 제 갈 길을 찾아가며 당당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나만 멈춰 선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누구든 한 번쯤은 검은 골목에서 자기 그림자마저 외면하는 밤을 겪는다. 누구나 마음이 무너지고, 귀퉁이가 깨지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몸 안에 숨긴 채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상처가 평생의 낙인이 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흰 상처도 있고, 투명한 상처도 있다. 오래 닦이면 반짝이는 흉터도 있다. 결국 우리는 그 모든 흔적을 지닌 채 살아갈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기까지,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당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 결코 비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두운 밤을 지나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건 오래전, 나 스스로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던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스스로의 삶을 헐값에 넘기지 말아라.
삶은 가끔 잔인할 만큼 무심하다.
마음이 부서진 날이면 시간을 세우기도 어려울 만큼 고단해진다.
그러나 삶은 동시에,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우리를 놓아버리는 존재다.
그래서 포기란 선택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우리를 갉아먹는다.
하루, 또 하루.
‘이번만’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다 보면 어느새 길은 더 깊은 어둠으로 꺼져 버린다.
포기는 달콤한 독 같다.
당장은 괴로움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반대로 버티는 것은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견딘 시간만큼 우리는 성장하고, 견딘 흔적만큼 우리는 강해진다.
나는 당신이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당신은 이미 수없이 버텨왔고, 그러니 앞으로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쉽게 깎아내린다.
남들이 보는 나보다, 내가 보는 내가 훨씬 초라하고 왜소해 보인다.
하지만 가치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내는 하루하루의 무게에서 스스로 증명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먼 길을 걸어왔고, 더 많은 것을 견뎠으며, 앞으로도 더 큰 빛을 만들 사람이 될 것이다.
힘들어 주저앉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움츠러든 어깨를 세울 힘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
눈물로 베개가 젖어도 괜찮고,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상처가 욱신거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단 하나다.
그 자리에서 영영 멈춰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비틀거리더라도 걷고,
천천히라도 일어서고,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
그 작은 움직임이 인생을 바꾸고, 결국 당신을 구한다.
이 글을 읽는 지금도, 아마 당신의 마음속엔 말할 수 없는 그림자가 들러붙어 있을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기지개를 켜며 마음을 뒤흔들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
길을 잃는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멈춰 버리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때로는 그 방황조차 당신이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일 수 있다.
바람이 길을 흔드는 건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함일 때도 있다.
지금의 방황이 당신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당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말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한다.
당신은 아직, 당신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지 않았다.
삶은 종종 뒤늦게 선물을 건넨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은 날들의 끝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따뜻한 순간을 슬며시 놓아준다.
그러니 제발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지 말고,
지금의 어둠이 영원의 밤이라고 단정하지 말아라.
끝나지 않은 계절이 있고,
피지 않은 꽃이 있으며,
도착하지 않은 미래가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당신이 오늘 단 한 번 더 숨을 고른 덕분에 온다.
나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여,
제발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세상은 때로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한
당신을 기다리는 빛은 반드시 있다.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제발, 그 한 걸음을 포기하지 말고
당신의 내일을 향해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라도 나아가라.
그것만이 어둠을 밀어내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