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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장|좋은 점

빛은 마음이 비출 때 보인다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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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ojuhani Rautavaara – “Cantus Arcticus, Op. 61: Concerto for Birds and Orchestra (The Bog)”


좋은 점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의 방향을 따라 드러나는 빛이다. 사람을 싫어하면 그 빛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포개어 쌓아 둔 미덕이 있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장점은 돌처럼 굳어 묻히고 단점만 비늘처럼 번뜩인다. 그래서 어떤 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좋은 점 하나 없다며 중얼거리고, 또 다른 이는 한 번 스쳐 보기만 해도 장점 열 가지, 아니 백 가지를 술술 적어낸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이렇게 상반된 시선이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 애정이 깔려 있느냐, 아니냐.

사람은 마음이 흐르는 대로 본다. 좋아하는 이에게서 좋은 점을 찾는 건 숨 쉬는 일만큼 쉽다. 말 한마디가 칭찬이 되고, 작은 배려가 눈부신 미덕이 된다. 심지어 결점조차 “그래도 그 사람이라 가능한 귀여운 실수”라고 감싸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기울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단점을 찾는 일이 너무도 간단하다. 작은 말실수는 흠결이 되고, 사소한 습관도 눈에 가시처럼 박힌다. 어쩌면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은 렌즈처럼 작동해 단점을 확대하고, 장점을 지워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의 좋은 점을 보지 못한다는 건 그 사람 안에 장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닫히면 눈도 함께 닫히고, 닫힌 눈에는 빛이 들어설 틈이 없다. 좋은 점은 어둠 속 어디선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미덕도 그림자처럼 희미해진다.

사람을 볼 때 가장 솔직한 기관은 마음이다. 눈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미소를 억지로 띠고, 칭찬을 가볍게 건네고, 겉으로는 예의를 지킬 수 있지만 마음은 단 하나의 방향만 가리킨다.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그 두 가지 중 어디에 기우는지는 숨길 수 없다. 애초에 관심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장점을 먼저 찾게 되고, 관심이 없으면 단점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좋은 점을 못 찾겠다”라고 말한다면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은 당신이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는 좋아하려 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좋아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사소한 긍정도 놓치지 않는다. 말투에 배어 있는 따뜻함, 무심하게 건넨 작은 배려, 혹은 함께한 순간들이 만들어낸 잔상들. 이런 것들을 애써서라도 붙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바라본다. 마음이 열려 있으니 빛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하지만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선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고, 단점만 채집해서 마음속 서랍에 모아둔다. 그들은 장점을 못 보는 게 아니라, 보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마음의 방향이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으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이런 원리를 알게 되면 사람 보는 일이 조금 쉬워진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거리를 두려 하는지. 장점을 발견하려 노력하는지, 아니면 단점을 핑계 삼아 마음을 닫는지. 이 둘은 말투나 표정이 아니라, ‘보려는 태도’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좋은 점을 찾는다는 건 사실 상대를 향한 최소한의 애정표시다.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마음을 건네려는 움직임이며, 벽을 허물고 다가가려는 작은 용기다. 뜯어보면 그 과정은 꽤 섬세하다. 단점 뒤에 가려진 진심을 읽어내고, 실수 속에서 의도를 분해하고, 표면적인 말투 뒤에 숨어 있는 기척을 듣는 일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마음의 온도가 따뜻하다. 타인의 상처에 민감하고, 사람의 불안에 예민하며, 가벼운 배려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남들이 못 보는 장점을 쉽게 발견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단점만 들여다보는 것도 일종의 마음의 방어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기에 단점을 먼저 찾고, 기대하지 않기 위해 장점을 외면한다. 애정을 쓰기 싫고 마음을 나누기 귀찮아 단점을 방패처럼 앞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점을 보여줘도 흡수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 좋은 점을 보여주는지 선택해야 한다.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 눈에 띄는 장점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나를 제대로 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나의 빛을 내주는 것이다. 마음의 창을 열고, 내 부족함의 그림자도 함께 보려 하며,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보려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굳이 나를 포장할 이유도, 애써 완벽한 모습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좋은 점은 보여주려 애쓴다고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은은하게 밝혀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장점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눈이 어두운 탓이다. 어둠 속에서는 별도 돌멩이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괜히 억울해할 일도, 스스로를 깎아내릴 일도 없다. 누군가 당신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높이와 방향 때문이지,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근거가 아니다. 그런 시선을 붙잡고 변명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분명 있다. 당신의 장점을 한 번에 알아보고, 당신의 부족함을 감싸 안아주며, 당신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애쓰는 사람. 단점 속에서도 진심을 찾아내고, 서툰 행동 뒤에 숨겨진 순도를 본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좋은 점들이 저절로 피어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 스스로도 자신의 좋은 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에 기대면 기분은 늘 흔들린다. 누군가가 내 장점을 봐주면 기쁘다가도, 다른 누군가가 못 보면 금세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필요한 건, 나를 향한 단단한 시선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빛을 내가 먼저 알아보고, 외면하지 않으며, 그 빛을 꺼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

좋은 점은, 결국 사랑이 비출 때만 모습을 갖는다.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할 때, 혹은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할 때. 그럴 때만 장점이 또렷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안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어둠 속 눈을 붙잡고 발버둥 칠 필요 없다. 빛을 볼 줄 아는 사람 앞에서만 당신을 펼치면 된다.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좋은 점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과 같다. 지워지고 번지고 결국 남지 않는다.

당신의 빛을 볼 줄 아는 이들에게만 당신을 건네라.
좋은 점은 결국, 사랑이 머무는 곳에서만 제대로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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