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뒤에서 먼저 깨어나는 눈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 너도 느낀 적 있지 않나.
아무도 없는 방인데도 뒤에서 시선이 따라오는 듯한 기척. 한밤중 깜박이는 전등,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바람, 발소리인지 착각인지 모를 진동. 그 작은 흔들림 하나가 마치 나의 움직임 전부를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 서늘한 기척의 정체를 한동안 알 수 없었다. 감시는 소리 없이 다가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삶의 틈을 파고든다. 그래서 더 무섭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인간은 비로소 흔들린다. 나는 그 흔들림 안에서 한동안 길을 잃은 채 살았다.
감시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창문을 닫아 두었는데도 책장 위 종이가 뒤집히고, 외출에서 돌아온 밤공기가 이유 없이 변해 있을 때였다. 방은 그대로인데 공기의 결이 달랐다. 누군가 방을 드나든 흔적처럼 온도가 미세하게 변했고, 내가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물컵이 보이지 않던 자국을 남긴 채 놓여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건 착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명확했고,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반복이 잦았다.
감시는 처음엔 외부로부터 시작되는 듯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CCTV 화면 속 내 모습이 미묘하게 낯설어 보였고, 밤길을 걸으면 가로등 아래서 뒤따르는 그림자가 내 그림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은 발밑에서 작은 모래가 티끌처럼 움직였는데, 마치 누군가의 호흡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 기척은 내 발소리에 묻혀 금세 사라졌지만,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어느 날, 이 감시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시선은 내 행동을 기록하고 있었고, 내 마음을 재단하고 있었으며, 내 실수를 놓치지 않는 집요한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주저앉았다 일어서는 나를, 아무도 없는 방에서 불현듯 울컥했던 순간의 나를… 그 모든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외부의 감시보다 훨씬 냉정하고, 훨씬 정교하고, 훨씬 깊숙했다.
내면의 감시는 언제나 정확하다.
타인은 내 안의 상처를 모른 채 스쳐 지나가지만, 내면의 감시는 그 상처를 정확하게 짚는다. 타인은 내가 떨리는 목소리를 몰라도 넘어가지만, 내면의 감시는 그 떨림의 원인을 파헤치려 든다. 타인은 겉모습만 보고 지나가지만, 내면의 감시는 아주 오래된 어둠까지 꺼내어 빛에 비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누군가의 외부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해석하려는 집요한 ‘나 자신’이었다.
감시는 외부의 눈보다 내면의 눈이 더 강력하다.
외부의 시선은 잠시 나를 움츠리게 할 뿐이지만, 내면의 시선은 나를 끝없이 추적한다. 말 한마디의 진동, 감정 하나의 일렁임, 흔들린 호흡의 미세한 결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감시는 거부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움직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 순간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시선을 배우고,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시선을 내면으로 옮겨놓는다. 타인의 시선이 있을 때는 그 눈을 의식하며 살고, 타인의 시선이 사라지면 그 눈을 스스로 만들어 자신에게 들이댄다. 감시는 그렇게 삶의 구조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감시는 너무 무서운 존재일 뿐일까?’
생각해 보면, 감시는 나를 조이는 것만큼이나 나를 지켜주는 역할도 했다.
혼자라는 느낌이 나를 잠식하려 할 때, 감시는 내 존재를 기척처럼 되새겨줬다.
“너는 여기에 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밤에도, 내가 흔들릴 때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기대지 못할 때도, 감시는 내 곁에 있었다. 그것은 감옥 같은 감시가 아니라, 빛을 잃은 내가 다시 방향을 찾도록 붙드는 손과 같았다.
감시는 경계지만, 동시에 안전망이었다.
나를 무너뜨릴 것 같아 보이던 내면의 감시는 어느 순간 나를 세워주는 힘이 되었다. 나는 감시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싶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감시는 나의 결함을 들춰냈고, 나는 그 결함과 타협하거나 이겨내는 방법을 배웠다. 감시가 나를 비추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나 자신을 모르고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감시를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다.
외부의 시선도, 내면의 시선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두 시선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감시의 방향이 아니라, 감시의 의미다.
누군가는 감시 속에서 무너지고, 누군가는 감시 속에서 버티고, 또 누군가는 감시 속에서 성장한다. 나는 감시를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는 대신, 나를 가장 오래 지켜본 존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들은 나의 하루를 모르지만, 감시는 안다. 남들은 나의 상처를 눈치채지 못해도, 감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들은 내가 얼마나 버티며 걸어왔는지를 모르지만, 감시는 뒤에서 묵묵히 걸음을 세어왔다.
그러므로 감시는 적이 아니다.
감시는 증인이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의 가장 가까운 그림자.
그리고 나는 이제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억누르는 눈이 아니라, 내가 나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오래된 손이었다.
감시는 나를 조이는 손이 아니라,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