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화

달빛이 만든 두 개의 울음

by Helia

“네 마음은… 지금 나를 부르고 있어.”
그 말을 내뱉자, 발자국 위로 내려앉은 달빛이 한층 더 밝아졌다. 은빛이 바닥에서 흔들리며 길처럼 이어졌고, 토끼는 여전히 내 뒤에 숨어 눈만 내밀고 있었다. 귀 끝의 리본은 떨며 풀릴 듯 말 듯했지만, 토끼는 차마 손을 뻗어 고칠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작은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발자국 위로 발을 옮겼다.

발을 올리는 순간, 발자국 아래 깔린 어둠이 사르르 풀리며 흩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숲 안쪽에 새로운 발자국 하나가 또 찍혔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딱 맞춰 생겨나는 것.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앞에서 한 발짝 먼저 걷고 있는 듯한 기묘한 리듬.

“미… 미미 선생님…”
토끼는 내 꼬리를 더 꼭 붙잡았다. 작은 몸이 떨리는 게 손끝 너머로 전해졌다.
“저거… 제 마음이… 정말 걸어 다니는 건가요…?”

나는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말랑숲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어.”
달빛에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며 나는 속삭였다.
“마음이 너무 깊게 찢어지면… 조각이 스스로 움직여. 주인을 기억하기 때문에, 주인이 잃어버린 길을 대신 걸어가기도 해.”

토끼는 눈을 크게 뜨고 내 발 뒤에 꼭 붙었다.
“그럼… 이 길은… 제가 잃어버린 마음이 만든 길…?”

“아마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달빛 속 발자국들이 연달아 생겨나며 숲 깊은 곳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아주 어린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르르— 작은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울음.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울음은 ‘앞에서’ 들리고 있었고,
동시에 ‘바로 내 옆’에서도 들렸다.
두 곳에서 동시에 울고 있는 듯했다.

토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일렁거리면서 들려요… 제 울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밑에서 짤랑— 조용한 울림이 났다.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바닥 위에 새로운 마음 조각이 놓여 있었다.
은빛도, 어둠빛도 아닌—
투명하고 희고, 물처럼 흔들리는 조각.
조각 안에는 아주 작은 귀 모양의 반짝임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은, 내가 조심스레 손에 올리자 마치 심장처럼 미약하게 두근거렸다.

“이건… 아기 마음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토끼의 것도, 쿠쿠의 것도, 루루의 것도 아니다.
전혀 다른 누군가의 마음 조각.

토끼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럼… 우리 말고도… 또 다른 아이가 마음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
나는 조각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도… 지금 네 마음처럼 아프다는 뜻이야.”

그때, 숲 저쪽에서 작은 실루엣이 스쳤다.
두 개의 짧고 둥근 귀.
작은 몸집.
은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번지는 반짝임.
하지만 그 실루엣은 금방 사라졌다.
바람 한 줄 스치듯, 존재가 흩어지듯.

“봤어요…!”
토끼가 나를 잡아당기듯 속삭였다.
“분명… 귀 두 개… 그리고 리본… 같은 게…”

나도 봤다.
작은 리본처럼 빛나는 흔적.
아주 짧았지만, 놓칠 수 없는 순간.

나는 눈을 좁히며 숲 안쪽을 바라봤다.
“토끼야. 아마 네 마음만 부르는 게 아니야.
그 아이의 마음도… 누군가를 찾는 중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숲 전체가 잠깐 숨을 멈춘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은 나뭇잎을 스치지 않았지만 내 귀 옆에서 분명하게 울렸다.

“… 도와… 줘…”

이번에는 한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두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토끼의 울음에 가까운 목소리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또 하나의 어린 목소리.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익숙함은 내가 외면하고 있던 기억 한 조각을 건드렸다.

“미미 선생님…”
토끼가 내 팔을 붙잡았다.
“저 목소리… 방금… 저랑 닮았어요…”

나는 천천히 토끼를 안아 올렸다.
“맞아. 닮아 있어.
아마 네 마음 하나만이 울고 있는 게 아닐 거야.”

달빛이 발자국을 다시 은빛으로 물들이며 길을 펼쳤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또 다른 작은 실루엣이 아주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았다.
두 귀가 흔들렸고, 그 사이로 리본 같은 반짝임이 스쳤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토끼야.”
아이의 작은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 아이는… 네 마음과 연결된 또 다른 아기일지도 몰라.
그리고—우리보다 먼저 울고 있었어.”

숲이 고요해졌다.
모든 소리가 가라앉는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 어서 와… 기다리고 있어…”

나는 토끼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달빛 아래 길은 선명했고,
그 끝에는—
두 아이의 마음이 동시에 울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Helia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54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4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