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는 순간의 소리
그는 지금,
해윤의 현재를 통째로 열고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 확신 같은 두려움이
해윤의 몸 안에서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심장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었고,
손끝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떨림이 올라왔다.
사무실의 소음은 그대로인데
모든 소리가 0.5초 늦게 따라오는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사람들 말소리, 프린터 기계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모든 게 현실이 아니라
‘녹화된 현실’처럼 뒤에서 메아리쳤다.
해윤은 의자 끝에 걸터앉으며 깊은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공기조차 어딘가 낯설었다.
밀도가 달라졌다.
마치 공간을 가르는 얇은 틈이 생긴 것처럼.
그때였다.
가방 속 AI 스피커가
켜지지도 않았는데 LED가 천천히 깜박였다.
지지… 직—
“경… 고…
감정… 파동… 한계치 접근…
시간 간섭… 레벨 3…”
기계음이었지만
중간중간 낯선 남자의 숨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명확한 속삭임.
… 윤아…
윤아.
또 그 이름이다.
누군지 모르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해윤의 가슴이 설명할 수 없이 저릿하고 뜨거워졌다.
“왜… 자꾸…”
해윤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심장이 조여 오는 통증이 밀려왔다.
바로 그때—
사무실 전체가 정지했다.
정확히는,
모든 소리가 멎고
모든 움직임이 1초 동안 고정되었다.
커피 잔의 액체가 흔들리던 그 상태로 멈춰 있었고,
옆자리 직원의 손이 공중에 떠 있는 채로 고정되었다.
단지 1초.
그러나 그 1초는 현실이 갈라지는 소리처럼 길었다.
다음 순간,
정지되었던 시간은 파도처럼 되돌아왔다.
찰칵.
해윤의 휴대폰에서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카메라 셔터음이 울렸다.
기절할 뻔한 심장을 붙잡고 사진첩을 열자,
한 장의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사무실 복도.
그리고 그 사진의 오른쪽 끝—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남자의 실루엣이 해윤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엔 훨씬 가까웠다.
숨결이 닿을 거리.
“거짓말…”
사진 속의 실루엣은
빛을 받아 길게 그림자를 떨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곳이었는데도
그림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해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마비된 것처럼 떨렸다.
그때,
사무실 유리벽에
흘러가듯 글씨가 스쳐 지나갔다.
HE-YUN
손가락으로 쓴 것처럼,
따뜻한 기류가 지나간 것처럼.
해윤은 숨을 들이켰다.
가슴속 깊은 곳이 말도 안 되게 뜨거웠다.
그 순간—
기억이 열렸다.
---
기억의 장면
축축한 밤.
등불 아래에서
한 남자가 해윤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입술도, 어깨도, 숨도 떨리고 있었다.
“해윤아…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야.”
해윤이 머리를 흔들자
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네가 잊어도…
나는 널 다시 찾을 거야.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아.”
그리고
그가 해윤의 이름을 부드럽게,
슬프게 불렀다.
“… 해윤.”
지금 들리는 목소리와 똑같았다.
---
기억이 꺼지듯 사라지자
해윤은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숨이 짧고 가빴다.
그때
바람도 없는데
해윤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누군가 스친 듯 흔들렸다.
그리고
바로 귀 옆에서—
공기가 울렸다.
“… 해윤.”
너무 가깝다.
정말로 누군가 옆에서 말한 것처럼.
이어진문장.
“열렸다.”
심장이 멎는 듯했지만
해윤은 바로 알아버렸다.
뭐가 열렸는지.
누가 열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삶이 이렇게 흔들리는지.
남자의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낮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그리고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세계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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