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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 단편집

생긴 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적당함의 법칙

by Helia

밤의 깊이를 가르는 듯한 꿈이었다.
낯설지 않게 흘러가면서도 무언가 뼛 속을 찌르는 기운이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가슴 확대 수술을 막 마친 상태였고, 거울 앞에 선 내 몸은 현실의 나와는 조금 다른,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손끝으로 스칠 때마다 달라진 나 자신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든든했다. 어깨는 절로 펴졌고, 평소라면 고개를 숙였을 상황에서도 나는 마치 환한 조명을 등에 업은 사람처럼 당당한 보폭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야 나 같은 모습이다.’
그 자그마한 문장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작게 탄성처럼 터졌다.

하지만 거리로 나서는 순간 꿈의 공기는 갑작스럽게 어두워졌다.
해가 뜬 대낮임에도 뭔가 흐릿한 그림자들이 골목과 도심 사이를 떠돌았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은 내 주위를 맴도는 시선이 되었다. 남자들이 나를 훑어보는 방식은 마치 누군가 낡은 창문 너머로 방안을 훔쳐보듯 교묘했고, 또 어느 시선은 노골적이었다.
피부 위에 내려앉는 눈빛이 바늘처럼 따갑고, 뼛 속까지 스며드는 듯했으며, 무심한 바람조차 그런 시선을 함께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순간에 속옷만 걸친 채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몸을 웅크렸다.
‘내가 이러려고 수술했나.’
그 말이 나를 향한 질책처럼 가슴 아래쪽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꿈속의 나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겪었다.
자존감이 올라가서 가벼워진 발걸음과, 타인의 눈빛 때문에 무거워진 마음이 반대로 움직이며 서로 잡아당겼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는데, 오히려 어떤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변화를 향한 욕망과 그 욕망이 불러올 새로운 시선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에도 편히 기대지 못한 채 어딘가에 매달린 듯 흔들거렸다.

결국 나는 꿈속에서 축소수술을 결심했다.
다시 나답게, 아니 예전의 편안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밀물처럼 몰아쳤다. 나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곳은 눈부신 흰색으로 가득했는데, 그 흰색이 위생적이라기보다는 차갑고 엄격한 재판장 같았다.
의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차트를 넘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 있어요.”
그 말은 선언이자 판결이었다.
그 순간 꿈속의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나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사라졌고, 오롯이 이 낯선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만 남았다.
마치 ‘너는 이미 어떤 문을 지나쳐버린 사람’이라는 듯한 묵직한 시선이 병원 벽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때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낡은 속담이 떠올랐다.
생긴 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꿈 속인데도 그 말은 내가 끊임없이 나를 달래기 위해 부르는 주문처럼 들렸다.
작게 속삭여도 꿈속에서는 울림처럼 퍼졌고, 어느 순간엔 그 말이 나를 감싸는 이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꿈은 그 말만 남기지 않았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탈 난다.
마치 오래된 할머니의 단단한 목소리처럼, 그 말들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욕심이 지나치면 몸도 마음도 금방 균열이 일어난다.
조금 더 예뻐지고 싶다는 마음도 욕심이 되고, 조금 더 당당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어쩌면 욕심이 된다.
또한 그 욕심은 언제든 나를 위험한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꿈속에서조차 의사는 생명의 위험을 말했다.
그 말은 단지 ‘수술’이라는 소재를 빌려, 내가 무리하게 바꾸려 하는 어떤 것들을 경고하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눈을 뜨는 순간, 나는 꿈의 세계를 벗어났지만 그 말 하나만큼은 오래 잔향처럼 남았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완고한 문장.
그리고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스스로를 잃는다는 사실.
꿈은 종종 현실에서 무시하고 지나친 흔들림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어떤 날에는 기억 속 얇은 균열을 부각하고, 어떤 날에는 마음속 깊은 욕망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번 꿈은 아마도 ‘나 자신에 대한 욕망’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바라보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빛나는 몸을 갖고 싶었을까.
꿈속의 나는 그것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곧 나를 전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묻는 얼굴이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금의 내가 정말 괜찮은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꾸면 나아질까?’
그 끝없는 수정과 보완의 욕구는 결국 자기 부정과 닿아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부정을 가릴수록, 우리는 더 많은 욕심을 품게 되고, 그 욕심은 다시 불안의 그림자를 키운다.

그러나 ‘욕심부리지 말라’는 말은 너무 흔한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그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마음도, 관계도, 몸도 지나치게 조이고 넓히다 보면 결국 상처 나는 지점이 생긴다.
꿈에서처럼 되돌릴 수 없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눈을 뜨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있는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
그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조금 슬펐지만, 꿈이 나에게 그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과정이었는지도 몰랐다.

거리를 걸을 때 느꼈던 음흉한 시선들 역시 상징처럼 다가왔다.
내가 원하는 변화는 결국 다른 누군가의 시선 속에 나를 가두는 일일 수도 있다.
새롭게 태어난 모습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선의 올가미로 이어지는 상황.
당당함과 수치심, 용기와 위축됨이 동시에 스치는 모순된 감정들.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정들이 꿈에서는 하나의 장면으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나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선이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시선에 흔들리는 내 마음이 불안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꿈은 스스로와의 화해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수술을 통해 더 나은 나를 꿈꿨지만, 그 과정은 결국 나를 더 낯선 길로 데려갔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 앞에서 나는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오래된 문장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생긴 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그 말은 체념이 아니라 이해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 마음이 덜 흔들린다는 뜻이었고,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나를 잃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꿈은 그 진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듯, 극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아침 햇빛이 커튼 사이로 조금씩 번지던 순간, 나는 어제의 나와 동일한 몸을 가진 채 새로 깨어났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꿈의 잔상이 작은 물결처럼 퍼지고 있었다.
더 크고 화려한 모습이 꼭 ‘더 나은 나’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세상이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줄 사람은 결국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그 문장을 조금 더 오래 품어보려 한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탈 난다.
평범하고 단순한 말이지만, 꿈속에서는 그것이 삶의 법칙처럼 울렸다.
어쩌면 그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처럼, 내가 무리하게 흔들릴 때마다 살짝 잡아주는 끈일지도 모른다.

그 끈을 손바닥에서 놓지 않기 위해,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답게’ 서 있는 중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꿈속에서 깨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나를 붙들던 그 문장을 천천히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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