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운전자, 남겨진 나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은 마치 숨을 삼킨 것처럼 고요했다. 가로등 하나가 희미하게 깜빡이며 벽면을 물들일 뿐, 어떤 기척도, 어떤 발걸음도 없었다. 그런 밤에 회색 승합차가 천천히, 그러나 술 취한 사람의 걸음처럼 비틀거리는 속도로 골목을 향해 다가왔다. 차체는 덜컹거리며 벽과 거리를 계산하지 못했고, 헤드라이트는 길을 비추기보다 어둠을 더 어지럽히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운전자는 분명 맨 정신이 아니었다. 핸들은 그의 손끝에서 일정한 호흡을 잃고 흔들렸고, 차는 휘청거리며 골목 모퉁이에 거의 들이박을 듯 기우뚱했다.
모퉁이를 돌기 직전, 차는 잠깐 쉼표처럼 멈췄다가 다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퍽.
어떤 둔탁한 소리가 어둠의 한가운데를 찢었다. 금속이 무언가를 밀어내는 감각, 몸을 가진 대상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 차체를 통해 전해졌다. 운전자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놀라움보다 두려움이 먼저 그의 눈을 가른 듯했다. 그는 급히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골목에는 바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 너머로 훑은 시선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엔진 소리가 멀어지며 골목은 다시, 조금 전보다 더 깊게 잠겼다.
정적이 내려앉은 자리엔 핏물이 번지고 있었다. 끈적한 검붉음이 바닥의 틈새를 타고 스며들며, 이곳이 방금 전까지 평온하던 골목이 맞는지 의심하게 했다. 그 위에 한 사람이 엎어져 있었다. 바람이 그 사람의 옷자락을 가볍게 건드렸지만, 몸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밀어붙였다. 발끝이 조심스럽게 바닥을 스쳤고, 떨리는 손이 천천히 얼굴 쪽으로 향했다.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에서조차 공포가 음영처럼 번졌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쓰러진 사람은—
나였다.
나는 마치 두 겹으로 갈라져 있었다. 골목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내가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몸은 바닥에 누워 피에 젖어 있었지만, 의식은 어딘가 위쪽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어둠이 나를 둘로 나누고, 골목이 나를 복사해 놓은 것만 같았다. 나를 보고 있는 나,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는 나. 그 순간의 감각은 뜨거움도 차가움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산산이 부서진 것 같은 느낌. 내가 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동안, 피에 젖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붙어 있었다.
도망친 승합차 운전자는 내가 아니었다. 본 적 없는 얼굴, 기억에도 없는 존재.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나였고, 피에 흥건히 젖어 누워 있던 사람도 나였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혼란과 공포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운전자는 타인이었는데, 왜 쓰러진 사람은 나지?” “왜 내가 나를 보고 있지?” 질문이 동시에 솟구쳤지만, 어떤 것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현실이 틀어진 건지, 내가 틀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내게 다가갔다. 마치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쓰러진 나의 얼굴은 창백했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 듯했고, 입술은 바람을 맞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약해 보였다. 손등에 묻은 피는 내가 알고 있는 온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잔해처럼 느껴졌다. 나는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했다. 손끝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골목이 살짝 흔들렸다. 바람이 방향을 잃은 듯 빙글 돌았다.
그때 문득, 쓰러진 내가 아주 미세하게 숨을 내쉬었다. 들릴 듯 말 듯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호흡. 그 소리에 나는 직감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마치 내 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큰 공포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내가 살아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서 있다.’ 두 개의 진실이 서로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충돌했다. 골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두 개의 나 모두 말할 수 없었다.
갑자기 멀리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평범한 소음이었지만, 그 소리가 이 비현실적인 장면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골목 출구를 바라봤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이 기이한 장면만 시간에 고립된 듯 멈춰 있었다.
나는 다시 바닥에 쓰러진 나를 바라보았다. 누워 있는 그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평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피에 젖은 모습이 그 얼굴을 어떤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이 상황이 점점 더 나를 짓눌렀다. 나는 문득, 이 장면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무엇을 버리고 살아왔느냐.” “너는 무엇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숨겨왔느냐.”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어둠이 내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나는 마침내 쓰러진 내 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끝이 아주 약하게, 정말 손가락 끝으로만 닿을 만큼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싸늘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며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왜 나야…?”
그때 쓰러진 내가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나와 똑같은 눈.
나와 똑같은 표정.
나와 똑같은 공포.
나는 숨조차 삼키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도망친 승합차 운전자는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장면의 목격자도 나였고, 쓰러진 사람도 나였다.
나는 두 개의 진실 사이에서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나와 죽어가는 나, 도망간 타인과 마주한 나.
그 모든 모순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끝내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밤은 끝까지 침묵했다.
내가 두 개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
이 골목은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