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저씨와 고령의 할머니가 병원에 들어왔다
마스크를 쓴 두 사람은 시종일관 대화를 나누었고 어머니로 보이는 고령의 할머니는 중년 아들을 마치 초등아들 대하듯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환자들의 이름이 뜨는 전광판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아들의 차례가 다가오자
"이제 곧 네 차례네. 얼른 일어나자. "
“어머니. 제 차례가 되면 이름이 불릴테니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너. 오늘 밥은 뭘 먹을래? 미역국 끓여줄까?"
"아,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
"아니, 아침도 조금밖에 안 먹었잖아.
점심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오늘 독감검사는 어땠어? 의사가 직접 하더냐?"
"네 당연히 의사가 직접 하죠~ 일단 어머니는 저랑 조금 떨어져 앉으세요 "
"괜찮다. 나는 "
고령의 할머니가 된 어머니와 나이 60이 가까워보이는 중년의 아들을 보며 . 나는 순간 내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초등 아들과 아이의 학부모는 아닌지 헛갈렸다. 다 늙은 중년 아들을 아이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집착이라 생각되었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어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앞에 오신 고령의 할머니는 ... 다 큰 아들을 마치 아이처럼 대하시네요~
“아, 그분은 나이가 여든이 훌쩍 넘으셔서 귀가 잘 안들리는데도... 병원에 올 때마다 꼭 아들과 함께 오세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지극하다고 봅니다.. "
마음이 이상했다. 정작 사춘기 초등 아들을 둔 나는 아들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고령의 할머니는 다 늙은 아들 옆에서 자신의 눈에 아들을 꼭꼭 담고싶어 바짝 붙어있는 모습이 내겐 무척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갈 날보다 이별할 날이 더 가까워진다면, 나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한 시라도 가까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까. 작은 모습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에 꼭꼭 담고 싶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애처로운 눈으로 중년의 자식을 바라보던 그 어머니의 심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오래도록 변치않는 어머니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가난한 시골살림에
대가족의 삼시세끼를 차려내야 하는 어머니는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맵도록 딴 고추를 가루에 묻혀 찌고 말려
한해를 책임질 밑반찬 거리를 만드셨는데
어머니만의 빨간 소스로 볶아낸 고추부각은 지금까지도 우리 남매의 최애음식이다
..
모든 것이 추억의 재연이다 .
그 곁에 제비새끼처럼 옹기종이 앉아있는
동생들의 입으로 뜨거운 배추전을
쭉쭉 찢어 넣어주는 언니의 손에서
엄마냄새가 났다.
...
백혈병으로 투병하실 때
날 것을 전혀 드실 수 없었던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셨던 수박이 생각나
어머니의 제삿날, 수박으로 그릇을 만들고
색색의 고명을 올렸다.
우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국수 한 그릇
시원하게 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데
늘 양보하고 희생하던 어머니 입에
우리가 마련한 음식이 들어갈 수 있다면 ...
ㅡ<사랑이 사랑을 부른다> 에세이 중에서
p.s '에리히프롬'이 말한 <소유냐 존재냐 >하는 문제처럼 자녀를 소유 양식으로 보는 부모는 자녀를 지배하고 자유를 집착하고 통제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자녀를 존재양식으로 바라보는 부모는 생명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존경을 담아 자녀를 온전히 존재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