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가 쓰는 엄마의 일생 이야기.

(5) 엄마, 딸의 인생에서 꽃으로 나타나길

by 캐시캣

인생은 힘겨운 걸음을 한 보씩, 또 한 보씩 내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아주는 똑같은 꿈을 2번이나 꾼 적이 있었다. 힘들게 살아가는 내가 애처로웠던 걸까, 엄마가 하늘에서 슬퍼하는 것 같아 내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수시로, 바쁜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돌아가신 친정엄마에 대한 슬픔의 농도를 옅게 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여유가 있을수록, 말로 내뱉지 않은 슬픔은 가슴속 한편에 장난감 블록처럼 하나, 둘 차곡차곡 쌓이기 마련이다.


그보단 차라리, 힘겹게 걸음을 내딛어서라도, 일상적인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슬픔을 가슴에 쌓는 속도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새벽에 눈이 절로 떠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얼마 전 엄마가 울면서 나를 안고 있는 꿈을 껐을 때였다. 새벽에 잠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가슴이 무거운 돌로 짓이기는 듯이,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다.


너무도 멀어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가슴으로 외쳐도, 마음으로 외쳐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엄마.

친정엄마의 죽음 뒤로, 나는 영과 사후 세계에 대한 영상을 무수히 검색해 보며, 엄마가 천국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싶어, 열정적으로 탐색하고 공부했던 때가 있었다.


사후 세계를 믿는 것도 있겠지만, 하지만, 왜 눈으로라도 차마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다른 차원 같은 곳에 있을 친정엄마의 영혼이, 더 이상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살갗조차 없음을 알기에, 가슴이 울고, 목이 매인다.

이렇게, 이따금 올라오는 엄마에 대한 애도의 감정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엄마의 존재가 내게 있어서 헛되지 않기 위해, 아니, 있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내가 더 노력하는 인생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이따금, 둘째 아이가, 그 어릴 적 함께 놀아주었던 외할머니와의 소꿉놀이, 기차 만들기 놀이가 그리웠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말을 안 했을 뿐, 외할머니의 모든 걸 기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두유를 가져와 장난감으로 만든 탑 아래에 고이 놓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또, 영적 세상이 정말 있는지, 신기하게도 내가 친정엄마의 꿈을 꾼 날이면, 첫째 아이가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천국에 할머니 보고 싶어! 할머니 어디 있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혹시 정말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방문했던 걸까. 가슴으로 엄마가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고 강하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친정엄마의 존재 의미가 꽃이 될 것같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값지고,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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