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Frances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혼자 걷고 있다.
이 길의 완성은 함께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Burgos - Castrojeriz
나 혼자 걸었던 미친 비바람의 로그로뇨에서 벨로라도까지의 길이 끝난 후 나는 벤, 호주 여자애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브루고스로 들어왔다. 어제 붕괴된 내 멘탈은 돌아올 것 같지 않았고, 이틀을 더 걸어야 부르고스에 도착하는데 배낭엔 먹을 것 하나 없고, 산길을 비바람을 맞고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뿅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며칠 내내 보고 싶었던 로그로뇨에서 헤어졌던 일행들을 다시 만났다. 짠!
그날은 앤디의 생일이었고, 우리는 앤디가 저녁을 산다기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급히 나가느라 준비한 게 없어 노트에 그림과 생일 축하 메시지를 적어 주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어두질 않았어. 흑흑.
숙소에서 새벽에 나와 근처 카페를 갔다. 사실 아침을 안 먹어도 괜찮았는데 가다가 바를 들르면 되니까 말이다. 앤디가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며 근처에 문이 열린 카페가 어딨는지 헤매느라 일찍 나왔지만 결국 알베르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로버트 아저씨는 성인군자일까. ㅎㅎ 가끔 앤디 아저씨의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막무가내 직진 행동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니까.
부르고스를 떠나는 새벽부터 가랑비가 계속 내린다. 바람도 꽤 불어서 옷을 두툼하게 입었더니 땀이 뻘뻘, 아차 생각한 것보다 날이 너무 따뜻하다. 처음 들린 바에서 옷을 좀 가볍게 다시 갈아입었다. 더워서 카페에서 콜라를 한잔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아 콜라! 이상하게 평상시에 콜라 사이다 등의 탄산음료를 잘 안 마시는데, 산을 가면 그렇게 도착하고 나면 콜라가 벌컥벌컥 잘 들어간다. 그때의 그 꿀맛 콜라는 캬하.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데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거 같다. 그래도 추운 거보다는 낫지 하면서 열심히 걸어가지만 로버트와 앤디는 이미 저 길 위의 작은 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중간 어디서즘 만나게 되겠지. 사진 찍고 풍경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승욱이는 저 큰 배낭을 짊어지고도 참 잘 걸어간다. 걷는 속도가 잘 맞고 서로 잠깐의 대화만 할 뿐 걷는 동안에는 서로 간의 거리를 잘 맞춰줘서 그게 고마웠던 친구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시험 준비를 한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되었으려나, 연락이나 한번 해봐야겠다.
비구름이 지나가고 말도 안 되는 풍경이 계속된다. 원래 길을 다 끝나야 아 그날이 제일로 좋았다, 생각할 텐데 웬일인지 이날은 그냥 알았다. 아 오늘이 이 길에서의 최고의 날이겠구나. 그래서 더 천천히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스치듯 이 풍경을 지나가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고, 구름 때문에 생긴 그림자를 구경하고, 다시 또 뒤를 돌아보고, 그렇게 천천히 걸어갔다.
온타나스를 앞둔 900미터 고지를 올라가자, 와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평지다. 구름이 지평선에 걸쳐서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다. 저기 비구름이 있는 작은 지역만 비가 오고 있다. 그게 눈에 보이고 있었다.
와. 좋다. 와. 멋지다. 와. 와. 이런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푸하하 웃었다.
빨리 가지 말고 여기 좀 앉아서 물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주위 풍경을 감상을 좀 하자라면서, 승욱이를 앉혔다. 그리고 신발도 벗고 멍하니 구름 구경을 한참을 했다. 저기 멀리서 알베르게에 있던 한국분이 오고 있네.
이 좋은 풍경을 두고도 한번 쉬다가 다시 걸으면 다리가 더 아프다면서 고개만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계신다. 아아아 아 내가 정말 아쉬웠다. 저렇게 열심히 걷기만 해서는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억이 날까. 하루 종일 빨리 걸었던 기억? 아니면 어떤 성취감이 생기는 건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그때도 이해가 되지 앟았으나 지금도 마찬가지로 모르겠다. 각자가 길을 걷는 이유도 방법도 다르니 다른 이들의 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로버트가 온타나스는 평지의 끝자락에서 짠하고 나타난다고 이야기해줬다. 평지가 끝이 안 나는 듯 쭈욱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내리막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로버트와 앤디가 없다. 나는 이미 신발을 벗고 아 도착했다! 라면서 쉼 모드에 돌입했는데, 승욱이가 아저씨들을 쫓아 바로 출발하려고 한다. 너 먼저 가. 하고서는 앉아서 고민을 했다. 여기서 멀어지면 왠지 산티아고 끝까지 못 만날 것 같다. 어쩌지 고민을 하다가 온타나스의 알베르게에 들어갔다가 아 여긴 아닌 거 같아, 너무 작고 추워 보여. 라면서 신발을 다시 신고 길을 떠났다. 오늘 이미 30킬로 넘게 걸었는데! 10킬로를 더 가야 한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컨디션도 좋고, 날이 너무 좋으니 그 정도는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거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룰루랄라 길을 걷는다. 길에 아무도 없다. 계속 뒤를 돌아본다. 길이 끝나는 게 아쉽고, 이런 날이 오늘뿐일 거라는 생각에 또 아쉽다.
산티아고 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후 늦은 시간에는 일몰의 해가 얼굴을 마주 본다.
따스한 일몰의 해가 나의 얼굴을 비추고 뒤를 돌아보니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있다. 동그랗게 달이 떠있다. 정말이지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캐스트로헤리스! 나 사실 산티아고 길에서 도시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헤맸는데, 돌아와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아아아 이게 그거였구나! 아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는구나! 아쉬워하며 진즉에 스페인어 공부를 좀 하고 갈걸 하고 후회했다.
마을 입구 오래된 성당이 있길래 뭐지 여긴? 하면서 잠깐 보고 있었는데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잠깐 와보란다. 스탬프 찍어주신다. 어마! 고마워요! 했더니 나무로 만드 자그마한 십자가 모양을 주신다. 그러면서 돈을 달란다. 아놔! 뭐 이미 찍었고 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라면서 50센트 동전을 드렸다.
숙소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려니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아저씨들이 나오다가 나를 발견했다. 어마! 꺅! 우아! 서로 소리 지르면서 반가워한다. 내가 5분만 기다려줘! 짐 풀고 나올게! 하고는 크레덴샬 스탬프 찍고 설명 듣고 어쩌다 보니 15분즘 기다려주셨다.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해가 빨갛게 지고 있다. 퍼펙트 데이!라고 소리치며 우리끼리 신나 했다. 나는 뉴 머신이라고 아저씨들이 치켜세워준다.
저녁을 먹고, 마트에 들러 간식, 빵, 매일 마시던 2-3유로 와인이 아니라 내가 40킬로 넘게 걸은 기념으로 8유로짜리 와인을 샀다. 와인맛 모르지만 왠지 더 맛있는 기분이다. 알베르게에서 소금 풀어 족욕하면서 한잔 마셨더니 확 취기가 올라와서 이내 잠자리로 들어갔다.
이 아름다운 빵이라니. 이 곳의 알베르게가 제일 좋았다. 시설은 특별할 게 없는데, 깨끗하고 아침식사도 너무 잘 나오고 아저씨가 너무 친절했다.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있었던 완벽한 날의 완벽한 알베르게
한참 지나서 castrojeriz 마을의 풍경 사진을 안찍은게 너무 아쉬워서 구글에서 검색한 마을의 전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