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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 Dec 20. 2017

눈 내리는 철의 십자가, 낯선이 와의 만남

Camino Frances


까미노 길에서 가장 높은 1500미터의 지점에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가 있다. 순례자들이 길을 걸으면 주워온 돌멩이를 올려놓고 안전을 빌던 곳이었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부터, 길에서 돌멩이를 주워서 이곳까지 가지고 와 돌을 올려놓는다. 참회의 기도를 하거나 누군가가 평안하길 이곳에서 바라고 간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날의 숙소에서는 두 친구가 노트에 글을 쓰고 있었다. 뭘 적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자신이 후회하는 것 바라는것들을 적어두었다가 집에서 가져온 돌멩이와 함께 철의 십자가에 두려고 한다고 했다.



폰세바돈(Foncebadon)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눈발을 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을 피해서 이곳으로 하나둘 들어온다. 자전거를 타고 온듯한 얇은 옷차림의 계란처럼 동그랗게 생긴 통통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어우 이렇게 비 오는 날 자전거는 괜찮을까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눈 내리는 음침한 날씨에 으슬으슬해져서 따뜻한 옷을 걸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자전거 아저씨는 즐거워보이는 동그란 눈으로 알베르게 주인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방 나간다.


먼저 와 있던 한국인 귀염둥이 커플도 출발하고, 캐나다 애들 둘이 들어온다. 아 이 캐나다애들이 집에서부터 돌멩이를 들고 왔던 친구들이다. 스무 살 즈음의 조용하고 귀여운 애들이었다. (사람들한테 피해가 될까 봐 거실에 앉아 둘이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근데 우리 왜 속삭이고 있는 거지?라고는 둘이서 낄낄대면서 웃던 친구들)



나도 슬슬 출발해 볼까 하면서 다시 길을 떠난다. 이게 눈인가? 아니 비가 내리는 건가? 판초를 입고 계속 산길을 걸었더니 금방 더워진다. 잠깐 쉬고 싶은데 쉴 곳이 마땅치 않다.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 철의 십자가를 만났다.



사람이 아무도 없네라고 중얼거리면서 십자가를 둘러보고 돌과 노트를 올려두고 옆으로 돌아왔더니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 아까 그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쉬고 계신다. 그쪽으로 발길을 돌려서 배낭을 내려놓고 답답했던 판초도 벗어버린다. 갑자기 허기가 져서 배낭에서 시리얼바를 하나 꺼낸다. 그 참에 보온재킷도 꺼내서 입는다.

그 적막함 속에 혼자 부스럭거리면서 시리얼바를 먹으려고 하니 왠지 좀 부끄러워서 아저씨한테 권하려고 쳐다보니 허공을 바라보며 사색 중이시길래 조용히 혼자 먹었다.


갑자기 아저씨가 말을 거신다. 자기가 울어서 미안하단다. 네? 나는 몰랐는데 어쨌든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는 7년 전에 아버지랑 이곳을 지나갔다고 했다. 어라 또 다른 유럽 아저씨의 무용담 같은 건가? 생각하면서 아 그랬냐 라고 답했다. 근데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지금은 혼자 왔고, 그때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눈이 온다라면서 멋쩍게 웃으신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아저씨가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셔서일까. 내가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더니 와이프랑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신호가 안 잡힌다. 그래서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신다. 아저씨 흑흑 이렇게 갑자기 슬픈 이야기를 훅 하시다니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우신 게 쑥스러우셨던 건지, 충분히 쉬고 계셨던 건지 자기는 이만 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아 멀치감치 떨어져 앉아있었는데 먼저 다가가서 꼭 안아드렸다. 그리고 아버지 좋은 곳에 계실 거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your father 하고는 울컥해서 말을 못 끝냈다.



아마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서 감정이 북받쳤던 거 같다. 다시는 이 곳에 같이 오지 못할 아버지를 떠올리며 울고 있었을 아저씨를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저씨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이름도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과 짧은 순간 이렇게 진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구나. 참 신기한 일이다.



눈이 내리고 안개가 가득한 으슬으슬한 날이었지만 낯선이를 만나 마음 한켠이 포근해진 그런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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