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든 Oct 12. 2016

왜 당신은 기록하는가

내가 기록하는 이유, 혹은 내가 기록하려고 노력하는 이유

그렇게 시작되었다.

 몇 년 전 어느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전시장 구석에 놓인 두꺼운 책자에는 작가가 일 년 동안 먹었던 모든 음식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형식 및 소재, 재료 등, 전통적 미학 기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현대미술이라지만 본인이 그간 먹은 음식을 고작 책으로 엮었다고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는 논외로 두기로 하자. 내가 한참 그곳에 서서 말없이 페이지를 넘겼던 이유는 그녀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목표를 가지고 '기록'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결코 그 실천이 생각만큼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내 메모 앱에는 '기록의 중요성'이라는 여섯 글자가 저장되었다. 


할 수 있으면서 하지 못했던 것.

 세상엔 하면 좋은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일 투성이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에 일어나 사과 하나 먹기라든지 잠자리에 들기 전 10분 정도의 스트레칭으로 종일 수고한 근육을 풀어주고 숙면을 유도하는 것 등등. 하지만 늘 그렇듯 행동은 멀고 변명은 가깝다. 나에게는 기록이 그러했다. 매일 짧게나마 일기를 쓰자고 다짐했지만 쓰다 보니 매번 쓰는 내용이 그 나물에 그 밥인지라 하루 이틀 거르다 보니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어 간다. 열심히 써보겠다고 유료로 다운로드하였던 일기 앱은 언제 열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사실 한 때 꽤 블로그에 빠져 있었던 기간이 있다. 나름 정성을 들여 사진을 편집하고 글을 썼던지라 나도 모르게 몇 백 단위의 방문자 수는 천의 단위 숫자로 늘어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블로그의 주인이라는 뿌듯함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즐거움 중 하나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꾸준히 댓글이 달리고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공감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글을 쓰고 수정하고 올렸다. 그러다가 대외활동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로 여행기와 나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던 내 블로그는 어느새 기업 홍보의 장이요, 그들이 파는 상품과 서비스를 입이 마르고 닳도록 찬양하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그렇게 여러 기업의 대학생 홍보대사, 마케터, 에디터 등 정신없이 활동하다 보니 블로그를 운영하는 나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포토샵으로 사진을 수정하는 것, 과정은 같은데 더 이상 블로그로 운영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 소소하고 즐거운 여가 활동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 졸업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외활동도 중단하게 되었고 블로그에 있던 대부분의 글은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 하는 이유.

 느지막이 학업의 잠정적 마침표를 찍고 사회인이 되었다. 집과 회사를 오고 가는 5일을 꼬박 보내면 회사를 안 가도 되는 이틀이 남는데 고작 이틀밖에 안되면서 재생 시간은 평일의 2배속 혹은 3배속이다. 평일에 아무리 방을 깨끗이 써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아줘야 나의 아늑한 침대의 깨끗함이 유지된다. 밀린 빨래가 있다면 주말에 부지런히 해놔야 다음 주에는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후줄근한 행색으로 출근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거기에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해야 하고 친구랑 만나서 누구의 미래가 더 불확실한지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므로 나에게 뭔가 끄적거릴만한 겨를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뭐 했지? 어제는? 지난주 그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 맛있었는데 이름이 뭐였지?

 

 나는 지극한 평범한 뇌를 가진 보통 사람이므로 기억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컴퓨터처럼 지우고 싶은 기억은 휴지통으로 보내고, 행복했던 순간만 꾹꾹 압축하여 필요할 때마다 풀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기에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기록되어야 한다. 그 순간의 여운이 바래거나 다른 무언가에 방해받기 전에.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간편하지만 찰나에 느낀 감정과 생각까지 상세하게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다. 기억의 저편으로 달아난 나의 아름다운 순간은 다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된 이름 모를 작가는 어떻게 1년 간 자신의 입으로 들어간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을까. 아마 프로젝트를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행동을 이끌어 내고 반복적 행동이 습관이 되지 않았을까. 어느 지점부터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먹을 것 앞에서는 항상 카메라를 더듬거리며 찾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그와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기록의 습관화. 내가 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대신하여 써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기록을 하며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분명 더 많은 것을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아쉬워할 미래의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기록하려 노력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