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의 가치를 찾아서.
주말에 별일이 없다면 런던에 간다. 지금은 아니지만 학생 때는 꼬박 2년 반을 런던에 살았기에 이제는 웬만한 곳은 구글 지도의 도움 없이 대충 설명 만으로도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게다가 혼자서 살기 시작한 곳이 런던이라 이 도시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정말 남다르다. 여전히 특별하고 멋진 장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 누군가는 전혀 내 말에 공감하지 않겠지만 -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살아온 기간만큼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이제는 그 감흥이 예전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라고 말했다지만 나는 이따금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의 삶은 또 얼마나 흥미로울지에 대해 종종 생각해본다. 어떤 장소에 익숙해질 때 찾아오는 편안함과 권태는 본래 두 얼굴을 가진 같은 감정일지도 모른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약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약 일주일 간은 꿈꾸는 것처럼 행복했다. 내가 다시 이 곳에 오다니.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그건 약 3달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구직활동의 시작 전 마지막으로 즐기는 최후의 만찬과 같았기 때문이다.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의 돈을 보면서 살짝, 아니 사실 많이, 나 자신을 원망했다. 왜 퇴사의 의지를 내비쳤을 때 별 볼일 없는 나를 3번씩이나 붙잡으며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던 회사를 박차고 뛰쳐나왔을까. 더 늦기전에 돌아가서 팀장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볼까. 정말 안해본 생각이 없을 정도로 그 당시의 나는 막막했고 외로웠다. 극적으로 한국행 편도 티켓 한 장을 겨우 살 수 있는 돈이 남았을 때 밑져야 본전으로 생각으로 지원한 현재 회사에 취직하여 다행히 그 돈으로 편도 티켓을 사는 대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을 지불했고 드라마 속에서나 봤던 방세를 못내 쫓겨나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권태감의 극복을 위해 여태까지 가보지 않은 장소를 최소 한 곳 이상을 방문하는 것으로 다시 타지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 중이다. 지난 주말엔 오랜만에 Tate Britain에 갔다. 가보고 싶은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한두 시간 정도 미술관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참이었다. 잠깐 큰 전시장을 위주로 둘러보다 배가 고파져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미술관 카페로 갔다. 메뉴를 살펴보다가 마땅히 먹고 싶은 메뉴가 없어서 오늘의 수프를 주문하려고 하얀 조리복을 입은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왜소한 체격의 그녀는 'Cream or mushroom? Oh sorry, clam or colliflower?'라고 답했다. 아마도 어제는 크림수프와 버섯 수프를 팔았는지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을 재빠르게 정정하고 민망한 듯 수줍게 웃었다. 조개 수프도 좋아하지만 오늘은 무난한 콜리플라워다. '콜리플라워 수프 주시겠어요?'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접시에 빵 한 조각과 작게 포장된 금색 버터를 올리고 그릇에 수프를 담으려다 '아, 그런데 일단 주문하고 오시겠어요?'라고 말했다. 주문하고 음식을 받는 시스템인가 싶어 별생각 없이 계산대로 돌아가 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내가 묻고 영수증을 보여주자 그녀는 또 수줍게 웃으며 '혹시나 수프가 식을까 봐 먼저 주문하라고 말씀드렸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빵과 버터가 올라간 접시 위에 그릇이 넘칠 듯 푸짐하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콜리플라워 수프를 담아 나에게 건네주었고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배려에 몇 초간 멍해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 'Thank you.'라고 말했다. 영국에 온 이후로 하루에도 수십 번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말이지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콜리플라워 수프는 조금 짭조름하였지만 맛이 괜찮은 편이었고 같이 나온 적당한 산미의 sourdough bread와도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오늘의 수프를 '그날의 수프'로 만든 건 그 미술관 카페에 들렀을 수백 명 중 그저 한 명일 뿐인 나에게 베푼 그녀의 따뜻한 마음씨였다.
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윈저로 회식을 갔는데 어디를 갈지 정하고 간 것이 아니어서 음식이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싸고 푸짐하게 먹기 좋아서 종종 갔던 한 프랜차이즈 펍에 갔다. 어쩌다 보니 그 시간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펍의 모든 직원이랑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직원들이 불친절했다. 바에서 첫 주문을 받았던 여자 직원도 그랬고, 음식이 주문한 대로 안 나와서 내가 주문에 대해 물어보자 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여자 매니저도 그랬으며, 와인 잔이 깨끗하지 않아서 바꾸러 갔을 때 뭐 이런 거 가지고 귀찮게 하느냐는 눈치로 말없이 다른 잔을 건네주던 남자 직원도 그랬다. 'Sorry.'라는 말은 그 펍의 직원 교육 매뉴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같이 그런 태도였다. 맥주와 튀긴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집에 오니 과일이 좀 먹고 싶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R이 거실에서 쉬고 있길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윈저에 있는 펍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바로 그 펍 이름을 바로 대는 걸로 보아 가끔 갔던 모양이었다. 구구절절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는 않고 '그 펍 직원들이 친절하지는 않은 것 같네.'라고 했더니 대뜸 '근데 그 사람들은 최저 시급 받고 일하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아마도 내가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과민반응이라도 보인다고 생각을 했을까. 스코틀랜드 출신인 R은 그간 영국인 특유의 sarcastic 한 면을 매번 보였기에 평소의 나라면 '뭐, 그렇긴 하지.' 정도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동감이나 이해를 기대해던 나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최저 시급을 받는 직원은 모든 고객에게 무례해도 된다는 논리가 순간 불편해질세라 대답했다. 'Well, I didn't expect them to be serving me as if I were a customer at the Savoy, but a little customer service would been nicer.'라고 맞받아 쳤다. (그때 왜 Savoy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봐온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나는 Savoy가 영국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며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렇게 나오자 R도 멋쩍게 웃다가 수긍과 귀찮음의 중간 정도 되는 말투로 '그러게.'라고 말했고 금요일 밤 우리의 짧은 토론은 결론 없이 마무리되었다.
사소한 배려의 순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고 긴 여운을 남긴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경험은 도쿄의 한 미술관 기념품 상점에서 엽서를 구매할 때였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기념품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엽서 한두 장을 꼭 사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도 전시를 보고 엽서를 골라 계산을 했다. 계산대에 있던 일본인 직원은 엽서를 하얀 종이봉투에 넣고는 봉투의 입구를 접어주었다. 여기까지가 나처럼 일반적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평범한 엽서 구매 과정일 것이다. 이제 나는 봉투를 받아서 그 상점을 나가면 된다. 그런데 그 직원은 바로 봉투를 건네지 않고 접힌 부분에 미술관 도장을 찍고 마르지 않은 인주 위에 헝겊을 올린 후 그 부분을 살짝 눌러 마르지 않은 인주가 헝겊에 스며들게 했다. 인주가 완전히 마른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봉투를 나에게 건넸고 그때의 나도 그녀의 예상치 못했던 서비스에 잠시 봉투를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그 미술관 직원이 도장이 마르치 않은 채로 내게 건넸다고 해도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Tate Britain의 직원이 미리 덜어놓아 덜 뜨거운 수프를 주었다고 해도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먹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러한 사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직원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그저 그랬던 순간들이 그랬듯 언젠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잊혔을 것이고 아마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 특별한 순간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 어쩌면 나에게 의미 있는 사건이었을지도 모른 채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동경하고 왜 그들의 것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는가에 생각하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순간에 나는 뮤지컬 마틸다의 'Naughty'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사실 마냥 평범해 보이는 나의 인생도 그들의 화려한 인생만큼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빛이 바랜 9할의 사소한 순간들의 의미를 찾아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고. 반짝이는 수많은 순간들이 바로 내 옆에 있었다는 것을.
In the slip of a bolt, there's a tiny revolt.
The seeds of a war in the creak of a floorboard.
A storm can begin, with the flap of a wing.
The tiniest mite packs the mightiest sting!
Every day starts with the tick of a clock.
All escapes start with the click of a lock!
If you're stuck in your story and want to get out
You don't have to cry, you don't have to shout!
'Cause if you're little you can do a lot, you
Mustn't let a little thing like, 'little' stop you
If you sit around and let them get on top, you
Won't change a thing!
Just because you find that life's not fair it
Doesn't mean that you just have to grin and bear it!
If you always take it on the chin and wear it
You might as well be saying
You think that it's okay
And that's not right!
And if it's not right!
You have to put it right!
But nobody else is gonna put it right for me
nobody but me is gonna change my story
sometimes you have to be a little bit naughty.
Musical 'Matilda' - Naugh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