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음식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지금에 와서야 가지도 먹을 줄 알고 피망도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는 일단 맛있는 것만 먹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주던 밥차는 말 그대로 끔찍했다. 맨날 남기거나, 간혹 바닥에 버리기도 했다. 설익은 깍두기가 나오는 날이면, 국에 떠 있는 건더기 밑에 숨기곤 했다. 그 어린이집에서는 음식을 아이들 스스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르게 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어린아이들의 무급 육체노동을 가장한 봉사를 자진하여 맛없는 음식(가지무침이나 고추멸치 볶음)을 일부로 계단에 쏟기도 했다. 세 번째 즘부터 선생님이 눈치를 채기 시작해서 다시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점심을 먹다가 토하기를 몇 번,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던 나는 두 번이나 국립 어린이집을 옮기고 사립으로 들어가서 비로소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 대한 묘사는 다 미뤄두고, 그곳 역시 점심에는 밥차가 왔었는데, 그곳의 점심시간이 기억에 딱히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그곳은 점심 외에 간식 시간도 있었는데, 간식은 집에서 싸오곤 했다, 당시 엄마는 파업하기 전의 상태로 `엄마의 일`을 넘어선 일들을 했는데, 그 예로 떡을 직접 짓거나 피자를 직접 구워 주는 등의 일이었다.다단계를 하는 친구가 있던 엄마는 종종 세탁기나 오븐 등의 가전제품을 집안에 들여놓곤 했는데, 음식 건조기와 찜기, 오븐은 내 간식 메뉴를 푸짐하게 해주는 멋진 친구들이었다.
고구마 파이
엄마가 오븐으로 만들어 주던 음식 중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뭉근하게 삶은 고구마를 잘게 으깨서 크림과 계란과 섞고 넓은 그릇에 파이지 없이 펴 바른 다음 위에 마쉬멜로우를 잔뜩 올려서 오븐에 구워 내줬었다. 마쉬멜로우가 노릇하게 익고 안쪽 고구마 필링이 너무 고소하고 달아서 온종일 먹어도 도무지 질리지 않았었다. 이 고구마 파이의 흠이라면 온기가 식었을 때 마쉬멜로우가 흐물거려져서 마치 아기 토 같은 모양이 되었었다. 그게 특히 흰 마시멜로가 아니라 색깔이 들어간 마시멜로라면 더 심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포틀락 파티가 있었을 때, 엄마는 이 파이를 만들어 갔었다. 당연히 마시멜로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고 이모와 아빠 나 외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나는 괜히 낮에 다퉜던 엄마가 미워져 엄마 음식 어둡다. 아무도 안 먹는다 라며 놀렸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 월요일이 올 때까지 화를 냈고 나와 삼 개월 정도 얘기하지 않았다.
호두파이
피칸파이의 피칸을 호두로 착각하고 만들어 줬던 음식이다. 안쪽 필링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호두에 발라져 있던 찐득한 시럽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달았다. 식으면 시럽이 사탕처럼 딱딱해지는 것이 좋았다. 우유와 먹으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맛이었다.
피망피자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았던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주방에서 꺄르륵거리던 마지막 기억인 것 같다. 아빠는 당시 아무것도 없던 인터넷에서 피자 반죽을 만드는 영상을 보고 본인 나름대로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묘기를 보여 줬었다. 그 반죽에 엄마는 토마토소스와 소시지 피망 치즈를 토핑해서 구워 줬었다. 엄마는 피자 반죽에 구멍이 났다면서 궁시렁대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피망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한두 조각 먹을 정도로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뒤에서 이야기할 피자와 바꾸어 먹었던 말도 안 되는 간식거리들이 기억나면서 아까워 죽겠다. 내가 다 먹어버릴걸!
무지개떡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찜기 음식이다. 다른 것들은 호박찜 단호박 찜 따위의 재료 그 자체를 찐 것이었으나 무지개떡은 엄마가 직접 반죽도 하고 가루도 섞어서 색깔도 내주었었다. 퍽퍽한 그 무지개떡을 건포도랑 먹으면서 자주 꺼내 잘라먹었던 기억이 난다.
위의 음식들은 엄마가 한번 꽂히면 한 번에 오조오억 개씩 만들어낸 결과로 어린이집 간식을 담당했었는데, 그중에서 무지개떡과 피망피자를 친구들은 무척 좋아했었다. 늘 삼각김밥을 싸오던 남자아이는 내 무지개떡과 피망피자를 좋아했었다. 나는 참치나 명란젓 따위가 들어 있던 삼각김밥을 좋아했었고. 우리는 곧잘 트레이드해서 먹었다. 대학 와서 삼각김밥을 이리도 자주 먹을 줄 알았으면 그때 안 바꿨을 텐데 말이다. 이젠 피망도 좋아하는데. 피망 피자 한 판도 혼자 먹을 수 있는데 이제 엄마와 아빠는 서로 이야기를 안 한 지 8년이 다 되어 가고(우리 가족이 얘기를 안 한다는 건 대화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리터럴리 쌩까는 일) 집은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오븐과 찜기를 다 버리고 왔다. 나는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음식들을 생각한다. 수영장에 가면서 먹었던 은박지로 덮인 뭉개진 고구마 파이, 락앤락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피망피자. 엄마는 잔소리하는 중에도 간식을 먹던 나를 보고 너는 먹는 거밖에 모른다고 그랬고, 아직도 그런다. 나는 어쩌면 그때 그 시절 간식들만 생각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