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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Aug 14. 2020

93번의 참치


“교복을 입고 있으면 모든 걸 면제받을 수 있어.”

 362번 버스 맨 뒷자리에서 앉아 한솥 참치마요의 뚜껑을 뜯으며 친구가 한 말이다. 샐러드 참치 마요 위에 김가루를 부셔 넣으며 흰색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비볐다. 종이 그릇 벽에 묻은 작은 참치 조각하나 까지 모두 긁어 모아 마지막 한입을 먹고, 모서리의 데리야끼 소스까지 손가락으로 슬슬 문질러 닦아 먹었다. 앞자리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여자가 타고 있었는데, 엄지 손가락만 한 깨진 거울 조각을 통해 자신의 머리를 단장하다가 우리를 비추어 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나는 어쩐지 “내 앞에서 음식을 먹다니 괘씸한 것들, 이 깨진 거울로 자네들의 입 안을 헤집어 주겠어.”라는 위협을 받은 기분이 들어 내리기 일곱 정거장 전에 친구의 손을 잡아들고 내렸다.
 때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미대 수시 실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마자 버스를 타던 때였다. 미술학원은 내가 야자를 건너뛸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되어 주었고, 야자를 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학교 석식은 미술학원을 가는 날에는 먹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미술을 하지도 않았던 친구 유정이는 어쩐지 나와 함께 석식을 건너뛰고 함께 한솥을 포장해 나온 것이다. 나는 미술학원에 도착해 10년 동안 축적된 물건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책상 위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유정이는 자신은 시간이 없다며 버스에서 먹는 것을 택했고, 민폐라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밀폐된 버스 안에서 비리다고 하면 비릴 수 있는 참치마요의 냄새를 풍긴 것이다.
 버스에 내려서 우리는 다른 버스에 환승하기 위해 정류장에 앉아 기다렸다. 유정이에게 네가 부끄러 원서 잡아들고 내렸어라는 느낌을 주기 싫어 물티슈로 유정이 손가락을 닦아주고 봉투에 종이 그릇을 담아 정류장 옆이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노숙자 아주머니가 냄새가 너무 나서 멀미가 났다고 핑계를 대었다. 유정이는 자신은 못 봤다며 먹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고 그랬다.

 시간은 흐르고 내가 구리에서 중구로 통학을 하게 되었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오전 수업을 우습게 보고 모든 수업을 오전 시간에 몰아 신청을 했다. 덕분에 나는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아침을 절대로 거르지 못하는 나는, 새벽 알바가 있는 편의점에 들려 아침을 사 들고 버스에 탔다. 93번 버스였다. 집 앞 정류장이 앉아서 갈 수 있는 마지막 정류장이었다. 검은 비닐봉지에는 주로 참치 샐러드나 참치마요의 김밥이 들어 있었다. 버스 안에서의 나는 다른 누구들보다 빨랐다. 사람들에게 냄새 테러를 하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 넣었다. 그러고 검은 봉투를 가방 안에 숨겨 넣었다. 손가락 끝에는 참치 냄새가 베여 입고 있는. 청바지에 슥슥 닦고 가방 안에서 복숭아향 핸드크림을 꺼내 발랐다. 완전 범죄라 생각했다.

참치 캔이 아닌 진짜 참치를 먹은 지 십오 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여기서는 진짜 참치는 무한리필 참치집이나 참치초밥을 제외한 것이다. 아빠의 사업이 승승장구할 무렵, 아빠는 친가 가족과 외가 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러 참치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의 조용한 룸에서는 영화 속 특유의 스시장인 모자를 쓴 남성이 거대한 크기의 참치를 두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헤제를 하며 설명을 해 주었다. 참치 지느러미부터 볼 살 대뱃살까지 다양한 방식의 요리법으로 조금씩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참치의 거대하고 공허한 눈을 파내어 레몬즙기에 넣어 희뿌옇고 진득한 액체를 짜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생선의 눈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 없었다. 스시장인 모자의 남성은 소주잔에 참치 눈 액을 따라 주었다. 나는 한입 맛을 보았고 정말 느끼하다 생각했다. 아빠는 그 액을 소주에 타서 집으로 가져가겠다 했다. 엄마는 당연히 질색을 했고, 참치 눈 소주는 몇 주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냉장고 음료수 칸에 점점 색이 어두워지며 자리를 지켰다.

 다시 93번 버스로 돌아오자. 참치 냄새와 복숭아 향이 섞인 손가락으로 핸드폰으로 노인과 바다를 검색했다. 어렸을 때 읽은 노인과 바다에는 노인의 배에 묶여 있는 참다랑어가 상어 들을게 먹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삽화가 있었다. 참치를 배 터지게 먹은 상어들이 부러웠다. 샌드위치 속 부실한 참치 살은 진짜 참치가 아니다. 편의점에서 700원짜리 김밥과 900원 김밥 사이에서 고민하던 난 진짜 참치를 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스무 살의 나는 실존하지 않는 상어를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어 93번 버스에서 자격지심에 몸을 부르르 떨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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