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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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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Dec 30. 2019

식탐


    스물한 살의 겨울방학은 눈썹에 땀이 맺힐 정도로 바빴다. 사촌오빠가 매니저인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고, 지난 여름방학 때보다 자리가 잡혀 손님이 네 배는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스물한살 기억속 겨울은 여름보다 더웠다. 히터와 주방 열기, 사람들의 말 온기 속에서 열 시간 이상을 뛰어다녔다. 인생에서 가장 마른 상태였다. 몸이 마르고 짧은 단발머리라서 그런지 미술학원에 인체 모델 알바로 많이 불려 다녔다. 동기들과 선생들은 나에게 그리기 좋은 얼굴과 몸을 가지고 있다 했다. 학생들은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며 고마워했다. 20분 동안 자세를 유지하고 10분을 쉬면서 둘러본 수채화 속 나의 모습은 무릎뼈와 어깨뼈가 붉게 강조되어 있었다. 나는 곧잘 동기들의 뮤즈가 되어 주었다. 중에 하나는 졸업 작품에 까지도 나를 유화로 그려서 제출하였다. 볼품없는 마른 볼살은 내게 큰 콤플렉스였지만 거울에 비친 군살 없는 몸을 구경하는 것은 내 유희였다.


 셰프들은 마른 나를 안쓰러워했다. 영업 중에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었지만, 브레이크 타임이나 손님이 적게 있을 때는 돌변하여 나에게 무언가를 못 먹여서 안달이었다. 레스토랑에 있는 메뉴들은 당연히 만들어 줬었거니와 집에서부터 누텔라 잼을 가져와 튀긴 바나나빵을 만들어 주고, 온전히 나를 위한 거대한 스테이크도 구워 줬었다. 그때의 스테이크는 소스 없이 먹어도 맛있었다. 나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감자튀김이나 리조또를 입술에 묻혀 가며 주워 먹었다. 어쩌면 마른 것이 이유라기보다는 주워 먹는 것을 못하게 하려고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거대한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도 손님들이 남기고 간 샐러드 그릇 바닥에 고여 있는 소스에 병아리 콩을 굴려 먹었다. 레스토랑이 너무 더워서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곧잘 하고 다니던 여자 셰프님은 어느 날 퇴근 준비를 하는 나에게 브라우니 여섯 조각을 직접 구워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싸 주셨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브라우니를 패딩 안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과 버스로 한 시간 반 동안 집으로 돌아가며 입맛을 다셨다. 패딩 안에서부터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꾸덕한 초콜릿 냄새가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래도 목도리 안에 고개를 묻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딱 한입만 먹고 냉장고에 넣어 와야지. 아침에 또 한입 먹고  퇴근하고 한 조각 먹어야지. 엄마랑도 나눠 먹으면 좋아하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너무 피곤해서 브라우니를 바로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서 한 조각 챙길까 고민하며 랩을 뜯다가 칼을 꺼내 딱 한입 정도 크기만 잘라내 다시 냉장고에 넣고 출근했다. 일 하는 내내 브라우니 생각을 하며 일을 하면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브레이크 타임에 쪽잠을 잤다. 어쩌면 브라우니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나도 남지 않은 브라우니를 보았다. 엄마에게 브라우니를 다 먹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어떻게 하나도 남기지 않을 수가 있냐고 너무 하다고 하니, 맛있어서 그랬다고 하셨다, 당연히 맛있었겠지. 입맛 없는 아침에 먹어도 맛있었는데. 점심에 커피와 홍차랑 먹은 엄마는 더 맛있었게 먹었겠지. 괜히 서러워져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나에게 사과하는 법이 절대 없었다. 같이 장롱을 나르다가 엄마가 손이 미끄러져 내 엄지발가락을 찧었을 때도, 독서기록장을 잃어버렸다며 친구들 앞에서 내 뺨을 때렸는데 사실은 엄마 가방 안에 들어 있었을 때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사과는 어린이 철학 과외 모임을 하러 나가는 나에게 나가서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모임이 끝나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칭얼대는 나를 선생님이 질질 끌고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기다렸는지 9층 창밖에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집에 들어가니 나를 안아 주며 엄마가 나가라 해서 미안해하셨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하루만 재워 달라고 부탁할 때보다 브라우니가 하나도 없는 이 상황이 더 서러웠다.  언니는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너도 참 식탐이 많구나 엄마가 그렇게 말랐는데 브라우니 하나 다 먹었다고 그렇게 서러워하니 라며 나를 놀렸다. 나는 같이 깔깔대며 웃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걸 기억하면서 마카롱이나 브라우니를 사면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침대 밑에 숨겨 둔다. 나중에 눅눅해지고 딱딱해진 음식을 위에 꾹꾹 눌러 넣는다. 물도 없이 먹어서 목이 막혀도 먹어 치운다. 그런 음식은 가끔은 살짝 쿰쿰한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나는 그래도 먹었다. 가방에 눌려 다 뭉개진 초코파이도 그랬고 토마토와 계란이 다 빠져나와 버린 샌드위치도 혼자 숨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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