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8

고양이 목숨은 아홉개

by 옥비

아빠가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한 번씩 얘기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그의 딸아이에 관한 이야기인데, 어려서부터 사건사고를 많이 겪었던 나는 당연히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아빠는 그때의 기억이 본인의 인생에서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였는지, 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아빠는 중국 황산에 갔던 날을 떠올린다. 비가 추적추적 적지 않은 양으로 오던 날, 우산 없이 우비를 입고 있던 내가 가이드와 발맞춰서 빠른 걸음으로 종종 걷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다 지켜보고 계셨다. 아빠는 내가 죽거나 최소 불구가 되었을 줄 알았다고 나를 향해 달려와 상태를 확인할 때 세상이 깜깜해질 정도로 무서웠다고 말한다, 정작 나는 산 밑에서 중국인들이 팔던 연노란색 싸구려 우비와 가이드의 초록색 가디건 만을 기억한다.

미취학 아동일 때 자동차 사고가 난 적이 두 번 있다. 그중 한 번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달려오던 자동차와 살짝 부딪힌 적이 있다. 킥보드였는지 자전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뒤에서 아빠가 브레이크!!! 브레이크!!! 외치던 것이 기억난다. 비행기를 모는 파일럿들이 사고 나기 직전에 “Pull up!” 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할까? 나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처음으로 닥친 순간이었다. 부자동네였어서 다행인지 칠이 벗겨진 자동차 주인은 내가 다치지 않았나 만 확인 하였다.

어린이 집에서 하원 버스에 내려서 아파트 쪽문으로 달려들어갈 때에는 자동차가 내 작은 발을 깔아뭉갰었다. 그래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뛰었다면 깔린 것은 내 발이 아니라 몸이 었을 것이다. 차주도 당황했는지 나의 발 위에서 오도 가도 못했었고, 차 문을 열어 나를 확인해야 했지만 차 문을 여는 순간 주저앉아 있는 내 머리통을 때릴까 봐 반대편 문을 열려고 애썼다고 한다. 나는 처음 느끼는 통증에 살려달라고 발을 빼내려 애쓰며 소리쳤지만 정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슈퍼 아주머니도 피아노 학원 선생님도 문방구 아저씨도 나와서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행히 어린이집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하여 엄마가 한달음에 내려왔다. 다리를 못쓸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는 인간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내가 타고 있던 자동차가 어린이집 자동차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다고 한다, 하긴 그때 당시 널리고 널렸던 황색 봉고 차였고, 어디 어디 어린이집이라고 적혀 있지도 않았으니, 조그만 애가 뛰어 나가는 것을 당연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병원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원하며 아저씨는 매일매일 붕어싸만코를 하나씩 사 와 병문안을 해 주었다. 붕어싸만코만 보면 병원에 있었던 때가 생각난다. 병원 냉장고와 맛이 없어 깨작였던 병원밥.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쩔쩔 메던 엄마와 새벽에 와서 주사를 갈아 끼워 주던 간호사 선생님들, 병문안을 왔던 친척들이 장면 장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얼굴은 희미 하지만 입고 있던 검은 재킷과 넥타이 없던 셔츠가 생각난다. 나는 특정 신발을 신게 되면 발등이 아파 못 신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면서 총 몇 번의 자동차 사고가 날까? 중학교 3학년이었는지,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차사고가 난 적이 또 한 번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집 앞 공원길을 따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 자동차와 부딪혔다. 내가 타고 있던 자전거는 그때는 유행이 살짝 지난 바퀴가 아주 작은 하얀색 접이식 자전거였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자전거의 접는 부분을 경계로 자전거가 박살이 나는 것을 보았다, 차의 주인은 아파트 바로 밑층 8층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자전거를 고쳐 주고 가끔 내려와 과일 샌드위치를 사다 주었다, 몇 달 안 가서 이사를 가버렸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 나 때문에 이사 간 것인지 아니면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인지 궁금하다, 아무튼 일요일 아침마다 밑층에서 올라오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매일 같은 부분에서 틀렸었는데 나는 그게 듣기 좋은 소음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그일 이후로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맞는 거 같다, 나는 그때 이후로 제대로 자전거를 탄 적이 없다, 시도해보아도 이내 내려서 끌고 가게 된다, 어쩐지 자전거를 타면 자꾸 골반이 시리고 멀리 있는 자동차도 코앞에 있는 거 같아 멈춰 서게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지나 다니는 행인과 같은 장애물이 없는 평지에서 마음껏 자전거 타는 날이 오리라 바란다.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개라는 말이 있다. 내가 고양이였다면 지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갈아서 즙이 되도록 몸을 막 굴렸겠지만, 난 사람이니 죽을 고비를 이미 몇 번이나 넘겼으니 이미 평생의 운을 끌어다 쓴 꼴이다. 이제 그만 몸을 사려야 한다. 몇 개가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도박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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