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30

재떨이로 되돌아 가는 이유

by 옥비


담배가 빨리 닳는 엄청 추운 겨울이었다. 같이 강의를 듣던 친구는 그걸 천사의 몫이라 그랬다. 항상 사랑에 관한 작업만 하는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의 작업을 굉장히 무시했었는데, 매번 연인이 바뀌고 바뀔 때마다 전 애인으로 작업을 하고, 그 전 애인을 전시실에 불렀다. 나는 사랑에 관한 작업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진부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늘 “너는 홍상수 영화 같은 사람이야.” 했었는데 나는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작품을 좋아했으니 칭찬인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다. 불현듯 그녀가 생각 난 이유는 같이 듣던 강의에서 쓴 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재떨이


우리의 것이 아닌
담배냄새 가득한 모텔 침대에서
잠에 빠져 드는 너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돌아오지 않으면 영영 안 돌아오는 거야

너의 숨소리가 싫어 붉은 의자에 잠을 청했다
나를 급하게 찾는 너의 소리
모른 척 뒤척일 거야
아니 어쩌면 여기 있다고 알아주길 바랬는지도

불편한 것은 몸이 아닌 너와의 시간

그곳은 강의실이었고
우리는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지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무심코 바라본 너의 어깨가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고
그 너머 시계의 바늘과 교수님의 작은 머리가 보였다

(안아 달라는 나의 말도 너는 이해하지 못했다)

담배냄새는 여전히 가득하다
왜 이런 곳에 불편하게 자냐고 묻는다

네게 몇 날은 해로워야겠다



소문은 비워진 반찬통처럼 채워진다느니 노량진 수산시장의 물고기처럼 쓸쓸하다느니 어떻게든 남들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발버둥 치던 시간이었다. 그 친구 또한 그런 흔적이 보였었는데, 그 또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창작욕구는 누군가 뮤즈가 되어 줄 때에만 나온다고 그랬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뮤즈를 찾는 것이라고 그랬다. 나는 이 모든 게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동시대 예술에 집착하거나 오직 자신 안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작업하는 작가들보다 헛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패션잡지사의 인턴으로 들어가서 매일 야근하는 모습이 그녀가 핑크빛 작업을 할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녀가 이 글을 본다면, 콧웃음을 치며 나도 네 작품이 마음에 든 적이 없다며 말할 태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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