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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Nov 23. 2021

예술가는 재미없어!

짧은 메모들

19년 날이 추워지기 전에 썼던 글들에서 발췌하였다.


7월 25일

 아기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 회갈색의 손바닥보다 작은 크록스 신발. 누구의 것일까 생각하면서 지나가는데, 횡단보도를 기다리던 여성에게 안겨 있던 아이 신발이 하나가 벗겨져 있었다. 뒤에는 더 어린아이가 업혀 있었다. 애인과 나는 양쪽에 아이가 있으면 무게중심을 맞추기 쉬워서 허리가 덜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튼 애 엄마에게 “저기요 저기 엠베서더 호텔 쪽에 아기 신발이 떨어져 있어요.”라고 말하니까 아이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언덕을 헉헉대며 올라가더라. 신발을 줍다가 아기도 애 엄마도 부서질까 봐 뛰어가서 주워다  주었다. 아기는 어리둥절해했다. 애엄마는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감사합니다를 연이어 말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을 보면 노진아 개인전시에서 보았던 “나는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곡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던 얼굴이 기억난다.



7월 26일

 한강진 사무실 공원에서 애인이랑 개인 작업하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호랑나비인지 화려한 무늬의 나비가 턱을 스치고 갔다. 나비는 무서워.


7월 27일

 성당을 가보니 원래 계시던 신부님은 여름 성경학교 때문에 학생들과 물놀이를 가셨는지 자리에 안 계시고, 옆동네 신부님이 와있었다. 급하게 하고 가시고 수녀님도 안 보였다. 플루트를 잘 불던 영우 씨도 없고 복사도 없고 여러모로 어리둥절하고 허둥지둥하고 허전한 미사였다. 복사가 쳐주던 종과 플루트 소리가 없는 게 가장 큰 허전함 같았다. 십자가에 축복받으려고 했는데 옆동네 신부님이 본당으로 도망가셨는지 안 계셔서 못 받았다.


7월 28일(1)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남은 친구 중 하나와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 데이트를 했다. 동역사에 있는 러시아 케이크집에 가고 이슬람 사원 옆에 있는 중동 음식 파는 곳에 갔다. 이태원 시리얼 바도 갔는데, 당뇨병 걸릴 정도로 단 후식을 먹었다. 우리는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각각 홍준표 김어준이 되기로 했고, 나는 8월부터 스페인어 수업을 애인에게 받기로 했다. 에콰도르에 있는 에이전시에 자소서를 넣으려면 좋은 시작인 거 같다. 아스딸라비스따-!


7월 28일(2)

 이슬람 사원 오르막길이 비가 와서 미끄러운지 오토바이 타던 사람 하나가 넘어졌다. 친구와 나는 놀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일으켜주더라. 운전하던 사람은 씩씩하게 털고 일어났지만 사실은 아주 아파 보였다.


7월 28일(3)

 친구에게 이름을 옥비로 바꾼다고 얘기하였다. 옛날 중국 설화에 나오는 여신이나 달에서 살던 항아의 이름 같다고 해주어서 고마웠다. 내가 쓰고 싶은 한자는 애인이 찾아준 한자로, 중국 시(뭔지 기억 안 남)에 나오는 옥옥에 비수 비로 옥으로 만든 수저로서, 신비한 약을 만드는 도구로 나온다. 뜻도 예쁘고 한자도 예쁘다. 다른 선택권 중에서는 두보시에서 나오는 옥옥에 팔비로 달빛에 옥처럼 빛나는 팔, 옥이 흐르는 모양 같은 이쁜 이름들이 많았다. 옥수저라는 뜻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길면 3년에서라도 옥비로 반드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일단 세례명을 올리바로 정했으니 한예지 올리바보다 한옥비 올리바가 더 예쁠 것이라는 걸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 스페인 이름으로는 맨도사로 정했는데, (오뉴블의 그 맨도사가 맞다,.) 맨도사 올리바 옥비 한이라는 이름이 겉멋이 잔뜩 든 작가 이름으로도 적합한 거 같다.


7월 29일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판화 교수님을 만났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교수님이 엄마가 민화 작가인걸 기억하고 계시더라. 판화수업을 들은 지 2년이 넘게 지났는데 기억하고 계셔서 놀라웠고, 월요일마다 판화실로 판화 배우러 오라고 하시는데 전에는 같이 점심 먹자고도 하셨었다. 솔직히 부담스러운데, 판화를 무료로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판화 교수님에게 나는 “구리”라고 불리우는데 단순히 구리에 살아서 구리라고 불리는 것이고, 이름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7월 30일

 일찍 퇴근하고 집 가는 골목에 웬 할아버지가 앉아서 나물을 먹고 있었다. 검은 비닐 봉지에 흰 스티로폼,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 반찬가게인가? 깨가 뿌려져 있는 걸 보니 세심한 곳인 거 같다. 왜 혼자 밥도 없이 나물만 먹는지, 왜 밖에서 보도블록에 쭈그려 앉아 먹는지.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궁금했다, 코가 진짜 컸다.


7월 31일

 강사법이 바뀌어서 교학팀이 비상이다. 조교들은 강사 평가표의 점수 계산을 겨드랑이로 한 거 같았다. 평소에 가장 꼼꼼한 믿었던 연극학부마저 계산이 틀려서 주임님과 나는 절망했다. 끝이 보여서 숨통이 트인다. 애인이 학교로 찾아와서 중간중간에 나가서 담배 브레이크를 가졌다. 퇴근을 한 후, 태극당에 가서 코스요리처럼 애피타이저로 버터 프레첼, 첫 번째 메인디쉬로 올리브 치즈 치아바타를 먹었고, 메인디쉬 2로 이상한 김치 소시지 토르티야, 디저트 1로 흰 몽블랑, 마지막 디저트 2로는 허니 시트론을 먹었다. 먹는 도중에 애인은 자꾸만 연기를 하면서 먹었는데, 즐거워 보였다. 동대입구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갈 때까지 하더라. 애인은 노할아버지를 위해 미사를 드리러 가고 나는 집에 와서 세희 카타리나 자매님이 빌려 주신 책을 읽었다. 한 장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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