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오르막
목적지에 가는 가파른 오르막길에는 세 개의 식당과 하나의 미용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가정집이 있다. 수는 많지 않으나 헤아랴 보지 않았으므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가정집이다.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시작하는 첫 번째 건물에는 반찬집이거나 백반집으로 추정되는 식당이 있다. 위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 건물의 입구는 해당 식당의 주방 쪽에 입구가 나있는데, 초록색 대나무 발 사이로 체구가 왜소하고 부스스한 단발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빨간 낚시 의자 위에 앉아 보라색 양말을 신은 발을 포개 놓고 무릎에 손을 올리고 있다. 손톱 끝에 지우기를 미룬 지 세 달은 된듯한 연분홍빛 매니큐어가 보인다. 비닐장갑은 끼지 않고 있다. 코 끝에 나 있는 점이 발치에서 끓고 있는 장조림을 바라보고 있다. 바닥에는 투명한 분홍색 젤리 신발이 가지런히 벗어져 있다. 발톱에도 연분홍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을지 궁금하다. 연분홍 젤리 슈즈는 오르막길이 시작하기 전 골목의 복권집 옆에 있는 동네 슈퍼에서 사지 않았을까 한다. 단발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장조림 냄새의 바람을 맞고 있을까. 장조림 열기에 지나가는 길에도 후덥 하다 느꼈는데 부채질도 않고 있다.
앞에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걷고 있는 노인이 있다. 유모차를 지팡이 삼는 노인은 할머니들 뿐이다. 할아버지들은 테니스공이 박힌 삼발이 지팡이를 쥐고 다니거나 산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들고 다닌다. 고장 난 유모차 할머니는 브레이크를 봐달라 요청했다. 주저앉지 않고 허리를 숙여 브레이크를 봐주다가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 평지에 샀던 도넛을 와르르 떨어드렸다. 고장 난 유모차 할머니가 아이구머니나 작게 놀라고 도넛들은 계속 굴러갔다. 단발여자가 대나무발을 들춰 무슨 일인가 확인하고는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고장 난 유모차 할머니가 아가씨 미안해요 했다. 며칠 전 고장 난 유모차 할머니는 본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의 현관 앞에서 낡고 큰 빨간색 밥통을 망치로 부쉈다.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있었지만 빨간색이고 밥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알 수 있었다.
망치로 밥통을 부술 때에는 한 중년 남성이 건너편 집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비가 살짝 오는 중이었다. 그는 담배가 젖는 것을 개의치 않아 했던 것으로 보아 할머니에게 우산을 씌워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배 아저씨는 종종 자전거를 타며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가곤 했는데 내려서 끌고 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그러다가 파란색 트럭에 치일 뻔한 적이 있다. 그는 도넛이 굴러갈 때에 그곳에 없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미용실이 있었는데 초록색과 파란색 LED조명으로 가위 모양과 '예술가위 예술컷트'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 미용실은 통 열려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간판은 늘 불이 들어와 있었다. 미용실 옆의 연한 쑥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건물에서 보라색 털실 스웨터를 입은 아줌마가 나와 미용실 문을 열려고 한 적이 있다. 문이 열리지 않자 한 번도 열려 있지를 않아! 고 썽내고 나왔던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보라색 스웨터 아줌마는 짱구로 추정되는 봉지 과자를 와그작 대며 쑥색 건물 앞에 의자를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가끔은 유모차 할머니와 둘이 할머니 집 앞에 쭈그려 앉아 있기도 했다. 항상 열려 있지 않는 미용실과 비슷한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편의점도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냐면 편의점 점장이 문을 잠그고 물류 창고를 정리하다가 급사한 줄 알았던 적이 있다. 편의점인데 며칠을 내리 열리지를 않으니 다들 처음에는 화장실 갔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미용실 창문에 먼지가 쌓이면 담배 아저씨가 먼지를 손가락으로 닦으며 ‘죽었나 앙?’이라고 남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