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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비 Jun 29. 2022

은행나무집 개 맘보

 우리 동네에는 꽤나 큰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 있다. 원래의 지붕은 플라스틱으로 된 흔한 파란 기왓장인데, 가을이면 은행잎이 떨어져 노란빛으로 물든다.


 은행나무 집에는 가을마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매달아 놓은 감을 닮은 쭈그랑 할머니와 반지르르한 털에 흙이 버무려진 백구 맘보가 산다. 은행나무집 앞에는 회색빛이 살짝 도는 파란색 나무 울타리가 있는데 그곳은 우리 집 치와와 코카의 전용 화장실이다. 코카는 밤색 치와와로 눈이 너무 커서 가끔은 얼굴 밖으로 쏟아질 거 같은 한없이 작은 강아지다. 


 “낙엽을 보면 쓸쓸해~”


 가을을 탄다는 엄마는 그 집 지붕이 노란색으로 변해 푸른색을 찾아볼 수 없을 때쯤 김장을 하신다. 배추 사이사이에 검붉은 김장 속을 꾹꾹 눌러 넣으면 쓸쓸한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고 한다. 빨간 대야에 잔뜩 쌓여 있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보면 마치 축 늘어진 엄마의 어깨처럼 퍽 쓸쓸해 보인다.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쭈그려 앉아 있는 엄마 옆에서 썰어둔 무의 자투리를 받아먹곤 했다. 무는 어떨 때는 달고 어떨 때는 매웠는데, 매운 것이 걸릴까 봐 무서워서 손이 잘 안 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간이 잘 되었는지 대신 확인을 해준다는 핑계를 대며 절인 배추 한 장을 뜯어 입에 넣고는 했다. 짭조름한 배추즙과 배춧잎의 간질간질한 식감이 재밌다.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치 엄마의 땀 맛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절인 배추를 많이 먹지 못하게 하셨었는데 일부러 많이 절여서 남은 배추로 배추전을 해주시곤 했다. 배추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김장 시기의 우리 집은 수육을 삶는 따뜻한 냄새보다는 배추전을 부치는 기름진 냄새와 시콩시콩한 간장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코카는 한 번, 나를 따라 절인 배추를 잔뜩 먹고 배가 불룩해진 채 앓아누운 적이 있다. 


“시골 개는 미련하다니까.”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는 코카를 안고 한참을 다독여줬다. 


 엄마 품에 설사를 한바탕하고 물을 잔뜩 마신 후 잠든 코카는 은행나무 집에서 키우는 백구 맘보의 왕왕 짖는 소리에 잠을 설친 듯했다. 뒷모습으로 보이는 팔락이는 귀가 짜증이 난 듯해 보였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실 때마다 은행나무집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셨다. 할머니의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배추를 못 나르고 김치속을 배추에 꾹꾹 문질러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또한 김장철 때마다 집에서 돼지를 삶아 수육을 만들고, 굴을 사와 우리에게 노나주셨다. 


“이거.. 이거 내가 좋아하는 보자기야. 알지? 여기 수놓은 거 봐봐 이쁘지? 꼭 돌려줘야 해!”

 할머니는 우리나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눠 주실 때마다 예쁘게 자수가 놓인 분홍색 보자기로 감싸서 주셨다. 엄마 말로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보자기를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전에는 분홍이 많이 진해서 좀 진상빛이라 생각했다는데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래져서 고와졌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동네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자기 집에 오게 하려고 보자기를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그 보자기로 싸 주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집에 멋진 개 맘보를 기르는 할머니가 왜 굳이 사람들을 집에 오게 해서 주전부리를 나눠주는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엄마가 말하는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이란 이해하기 힘든 무엇인가였다.


 백구 맘보는 이빨이 크고 뾰족한 것이 아주 무섭게 생기고 덩치가 고래만큼 큼에도 불구하고 코카를 무서워한다. 맘보는 할머니가 푹 고아 만든 소뼈도 아구 힘으로 와작와작 잘게 부숴 먹었다. 사실 맘보는 택배 아저씨와 두부 아줌마도 무서워한다. 도둑 들지 말라며 1,000원 주고 데려온 새끼 진돗개는 은행나무집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 조금 건방지고 겁이 많은 개로 자란 것이다. 그 덕에 은행나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경쟁에서 밀려난 맘보다.


맘보는 코카가 파란 울타리에 시원하게 오줌을 발사할 때마다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하염없이 떨며 양철로 된 밥그릇을 짱그랑짱그랑하고 발로 건드렸다. 어떨 때는 사기로 된 물그릇을 건드렸지만, 양철 밥그릇이 더 소리가 컸기 때문에 코카의 귀에는 밥그릇을 건드리는 것이 더 거슬렸을 것 같다,


“왕왕! 웡웡! 아우아우왕왕!”

 맘보는 코카가 배추를 먹고 아팠던 날과 똑같이 매일 밤만 되면 왕왕 짖어 코카를 화나게 했다. 나의 추측으로는 은행나무집 할머니의 보살핌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잔뜩 기고만장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개구락지와 귀뚜라미가 많은 동네라 밤은 고요함 속에서도 시끄러웠지만 코카에게 맘보의 왕왕 소리는 개구락지의 가각가각 우는 소리보다 거슬렸던 것 같다. 코카는 보복하는 성격이기에 다음 날 아침 산책길이면 파란 울타리에 오줌을 발사했다. 파란색 울타리의 전용 화장실 부분은 눅눅해져 회색으로 색이 변해 있었다.


 일전에는 북 뜯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강아지 오줌 금지(코카)]라고 적혀 있는 경고문이 코카의 눈높이에 붙어 있었다. 코카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기에 경고문 위에 오줌을 쌌다. 불쌍한 은행나무집 할머니와 맘보는 종이 경고문이 계속 오줌으로 젖어서 삭아 없어지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나는 그 경고문을 보기 전에도 코카가 울타리에 오줌을 싸지 못하게 한 적도 많지만, 코카는 성격이 안 좋은 강아지라 온종일 삐쳐 있거나 울타리에 오줌을 못 누게 한 대가로 나의 침대나 엄마의 슬리퍼에 오줌을 눴다. 똑똑한 녀석이다. 엄마의 슬리퍼에 오줌을 눴을 때 나는 오줌으로 젖은 슬리퍼를 코카에게 보여주며 잘 타이르려 했으나 코카는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였다. 엄마와 나는 못 말리는 녀석이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코카는 어찌나 똑똑한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다르게 행동했다. 두부 아줌마가 올 때는 귀를 팔락팔락하고 뒷다리로만 쫑쫑 걸어나가 두부 아주머니의 예쁨을 담뿍 받았고, 통장 아저씨가 오면 자신의 꼬리를 잡으려는 듯이 제자리에서 두 바퀴를 뱅뱅 돌고 소파에 뛰어올라 경계했다. 소파에 올라가 큰 두 눈이 떨어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발발거렸다.


 코카의 가장 귀여운 반응 중 하나는 코카를 잘 괴롭히는 내 친구 영웅이가 집에 놀러 왔을 때인데 내 팔과 옆구리 사이에 얼굴을 파고들거나 다리 사이로 들어와 안아줌을 강요했다.


 엄마는 집에 영웅이가 놀러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영웅이가 코카를 많이 괴롭히기도 했고 방바닥을 청소해준다고 양말 신은 발로 뛰어다니며 슬라이딩을 하다가 티비를 부술 뻔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끼잉끼잉..”

코카는 작은 치와와였지만 부들거리는 떨림이 너무 커서 내 심장 속으로도 다 전해졌다. 영웅이가 올 때마다 코카는 내 품에 숨었지만, 기어코 영웅이는 데리고 갔다. 코카의 앞발을 잡아 올려 뒷발로만 서게 해 같이 춤을 추려 했다. 코카가 춤추는 거 같아서 조금 귀엽긴 하다. 가끔은 코카의 연두색 밥그릇을 숨겨서 코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코카가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게 엉덩이를 잡고 바닥에 눌러 놓는 등 코카를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코카가 절인 배추를 먹고 설사를 했을 때나 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내게 몇 번이나 코카가 괜찮으냐고 물어보며 자신의 간식으로 챙겨 온 천하장사 소시지를 코카에게 주라며 내 가방에 꽂아놓는 코카를 생각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코카는 천하장사 소시지처럼 사람이 먹는 음식은 먹으면 안 되어서 내가 몰래 먹었는데 영웅이에게는 코카가 먹고 기운을 차렸다고 거짓말했다. 코카와 영웅이에게는 비밀이다. 


“깡깡! 깽깽!”

 영웅이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우리 집을 나설 때쯤이면 코카는 한밤중 맘보의 목소리보다 날카롭게 깡깡 짖은 다음 밥그릇으로 뛰어가 밥을 와구와구 먹었다. 허겁지겁 물도 안 마시고 입안 가득 사료를 채운 후 후두둑후두둑 하고 작은 사료 알들을 이빨 사이로 흘리며 집안을 뛰어다녔다. 나는 온 사방팔방에 콧물을 튀기며 흥분해 있는 코카가 흘린 사료를 주우러 다니며 엄마의 눈치를 보곤 했다. 주섬주섬 사료들을 주워서 코카의 밥그릇에 다시 넣어줄 때까지 슬쩍슬쩍 곁눈질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코카에게 화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나는 이럴 때면 늘 엄마의 눈치를 보곤 했다. 코카를 데려오게 된 건 내가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이틀을 굶었기 때문이다. 사실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영웅이네 집에서 영웅이가 주는 크림빵과 베지밀을 먹었지만 이건 엄마에게 비밀이다. 살다 보면 비밀이 많아지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쌩으로 이틀을 굶은 줄 알고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내가 져야 할 책임들에 대해서 한참이나 설명했다. 집에 마당이 있지만, 강아지를 밖에서 묶어 기르지 않는 이유와 저녁에 먹다 남은 된장국에 흰 쌀밥과 멸치볶음을 비벼 주지 않는 이유도 그 이유에서였다.


 영웅이를 제외한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마당에 개를 묶어 기르지 않는 이유를 의아해했으나 우리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코카는 작은 강아지이기 때문이에요”라고만 대답했다.


 아무튼 때문에 바닥에 사료가 떨어져 있으면 엄마는 간혹 울상을 짓기도 했는데 그게 마치 나에게 ‘코카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만 같아서 내가 제 발 저려 눈치를 보는 것이다. 코카는 내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뚱땅뚱땅 뿌듯하게 걸으며 나를 따라다니기도 했고 집 방바닥에 드러누워 한참 동안 비비적대며 기분 좋은 자신을 표현했다.


 은행나무집 맘보와 코카의 삶은 정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코카는 산책할 때 외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영웅이가 준 천하장사 소시지 같은 음식은 먹지 않고 강아지 전용 간식 등을 먹는다. 반대로 맘보는 짧지는 않지만 길지도 않은 줄에 묶여 비가 와도 마당에서 와들와들 떨며 빗물이 떨어진 비빔밥을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가 맘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맘보는 매 밤마다 기나긴 시간 동안 힘찬 빗질을 당하고 밤마다 할머니가 줄을 풀어 무릎에 얼굴을 놓이고 밤새 쓰다듬는다. 할머니가 맘보에게 매일매일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집 창문에서 그들의 모습만 보이지 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맘보는 할머니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왕왕 짖는 것인지 할머니의 말은 무시하고 하늘의 별을 세는 것인지 궁금하다. 


 은행나무집의 노란 지붕에서 은행잎이 다 떨어지고 바람에 날리는 겨울이면 은행나무집의 청색 기왓장은 보는 눈도 시리게 할 만큼 추워 보인다. 할머니는 그때쯤이면 어디서 구해왔을지 모를 두꺼운 진녹색 담요를 맘보의 집 위에 덮어 둘러주고 집 안에는 자신의 머플러를 넣어두곤 했다. 너무 추운 날이면 맘보의 밥이나 물이 꽝꽝 얼기도 했는데 그래서 할머니는 겨울이면 뜨거운 물을 밥과 물에 부어주었다. 맘보는 가끔 방금 뜨거운 물을 부은 밥이나 물을 허겁지겁 먹으려다가 코끝을 데여서 밥그릇을 발로 차 마당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마당을 청소하시고 새 밥과 물을 꺼내오셨다.

“아유아유 맘보야 미안하이~ 너무나 뜨거웠고만”

맘보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한동안 뜨거운 물을 부어줄 때면 뜨거운 물이 얼은 밥과 물을 녹이며 식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도 했다.


 동네에 팥죽 냄새가 가득 나는 동짓날에는 전날 새벽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색이 되었다. 코카를 밖에 내놓자 너무 작아서 눈에 파묻혔다. 코카는 차가운 눈 속에서도 신이 나서 마구 헤집고 다녔다. 코카가 달린 길에는 코카 키에 꼭 맞는 길이 긴 동굴처럼 파내어져 있었다. 코카는 눈이 쌓인 마당을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지친 숨을 헐떡거리며 내 품으로 들어왔다. 나는 코카 덕에 눈을 치우는 수고를 덜은 것 같아서 조금 기뻤다. 


“통장 댁이 새벽에 눈 치우려고 일어났다가 고드름에 맞아 죽을 뻔했댜”

 엄마와 빗자루로 마당의 눈을 쓸고 있는데 두부 아줌마가 오셔서 말했다. 아주머니네 집은 두부 아저씨가 눈을 치우고 있는 듯했다.

“어머.. 끔찍해라 다치지는 않으셨대요?”

두부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통장 아저씨가 얼마나 놀랐는지 설명해주셨다.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는 열기에 밤새 내린 녹아 사람 만한 고드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사람 만한 고드름에 맞아 죽는다니 아주머니는 과장이 너무 심하다. 


마당을 치우고 코카를 산책시키려는데 아까 눈에서 노느라 지쳤는지 노란 방석 위에서 잠을 퍼질러 자고 있었다. 나는 코카를 안아 들고 혼자 산책을 하러 나갔다. 코카는 집에서 오줌을 잘 싸지 않았기 때문에 꼭 산책을 해줘야 했다. 은행나무집을 지나갈 때쯤에 코카는 어찌 알았는지 파들짝 깨고 내 팔을 작은 두 발로 있는 힘껏 밀어냈다. 코카는 당연히도 파란 울타리로 돌진했다. 코카가 오줌을 또 발사했다. 나는 이어지는 맘보의 짱그랑 소리를 기대했으나 들려오지 않았다. 울타리 너머를 들여다보니 맘보의 집 위와 집 앞에 눈이 가득 쌓여 맘보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집 안에서 할머니의 머플러를 두르고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집은 아직 눈이 치워져 있지 않았는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 우리 집 눈이 치우기 쉬웠던 대신 할머니네 집 눈을 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네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는지 김이 폴폴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네 집 지붕에도 사람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떨어져 맞으면 아플 것 같은 큰 고드름이 달려있었다.


나는 할머니네 집 눈을 치워주며 맘보 집 위의 눈도 털어 주었다. 맘보는 쭈뼛쭈뼛 나와 눈이 쌓여 있는 밥그릇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할머니는 그릇에 쌓인 눈을 탈탈 털어내시더니 새알을 몇 알 띄운 팥죽을 부으셨다. 


“맘보야 좀 식으면 먹으려무나”

할머니는 나에게 고맙다며 대추 한 봉지를 쥐여주셨다. 나는 대추 세 알을 맘보 그릇에 놓아주며 맘보가 춥지 않을까 걱정했다.


 새해가 밝아 올 때마다 할머니는 장에서 사온 가래떡을 잔뜩 사서 썰어둔 뒤 동네 사람들에게 가져가라고 집 마당 앞에 놔둔다. 엄마는 내가 혼자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고 들고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할머니의 새해 떡을 가지고 오게 시켰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 집에 떡을 들고 오다가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엄마는 모래가 붙은 떡을 물로 씻어 떡국을 끓여 줬었다. 떡국의 맛은 훌륭했지만 나는 그 이후로 겨울의 회색 흙바닥에 가래떡을 떨어뜨리면 그 한 해는 ‘모래가 낀 까끌까끌한 해’라고 나 혼자만의 내기로 정했다.


“캐행.. 캐행..! 크흥크흥..!”

엄마의 심부름으로 가래떡을 가져오려 할머니네 마당에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맘보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흰 떡을 들면서 맘보를 쳐다보니 맘보가 담요에 얼굴을 묻고 갈비뼈가 보이게 기침을 하고 있었다. 흙먼지가 코에 들어간 것일까? 할머니도 그 소리를 들으시더니 현관문을 여시고 빼꼼하고 맘보를 내다보았다. 맘보의 기침 소리는 이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잠시 현관문을 잡아 달라 하셨다. 집에서 더운물과 귤을 들고 나오시는 할머니의 얼굴 주름살 사이에서 걱정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맘보의 물그릇에 따라주며


“맘보야 맘보야 감기걸릴랑 말라. 여기 귤을 놔줄 테니 어서 먹으렴”이라고 말씀하셨다.

맘보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올려다보고는 콧물을 스프레이마냥 핑 튀기고 꼬리로 바닥을 탁탁 두 번 쳤다. 맘보의 알아들었다는 표현이다. 귤을 나에게 주실 줄 알았는데 맘보에게 줘서 조금 섭섭했지만, 귤을 들 만한 손도 없었고 집에는 귤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는 떡을 든 손 반대 손으로 맘보의 이마를 긁어주고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갈 때까지 맘보의 마른기침 소리는 조금씩 커지는 듯했다.


 신발을 신어도 발바닥까지 시린 겨울 흙바닥에서 7년을 버틴 맘보는 그렇게 얼어 죽었다. 할머니가 잠시 시내에 가 며칠 자리를 비운 마지막 날 맘보는 강아지별로 간 것이다. 맘보가 죽은 것은 옆집 아주머니가 맘보네 집에 따뜻한 물주머니를 넣어주러 갔다가 발견했다. 


“매일 밤마다 안아주던 할머니 안 계시다고 고새 팍 죽어부렀네,,”

“그려그려. 그럴 만두 하지”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할머니는 얼어버린 흙바닥을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팠다. 김장독이 묻어져 있는 옆집 아주머니네보다 깊게 팠다. 맘보를 묻고 수가 놓아진 분홍색 보자기를 위에 덮어주었다. 할머니가 반찬을 나눠주시러 올 때마다 보여주시던, 아끼던 보자기였다. 빌려주실 때마다 아끼는 거라고 꼭 돌려줘야 한다고 하셨던 그 보자기였다.

할머니는 맘보가 하늘나라로 간 며칠 후 맘보가 쓰던 물건이라며 자그마한 보따리를 가져다주었다.

“아아니 이거 혹시 코코가 쓸 만한게 있을까 해서”

할머니는 코카를 늘 코코라고 잘못 불렀다. 코카는 늘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할머니에게도 친절한 강아지였다. 할머니에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가 할머니 다리에 코를 톡 부딪쳐 코 모양의 촉촉한 콧물을 묻혔다.


“애기가 하두 덩치가 작아서 맞을랑가 모르겄네”

할머니는 코카가 쓰던 양철 밥그릇과 사기로 된 물그릇, 목줄을 가져다주었다. 맘보가 쓰던 집은 무거워서 못 들고 오셨다고 하셨다. 코카는 보따리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맘보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엄마는 몇 번 거절하시다가 물건들을 받으셨다,

“아이구 할매가 얼마나 물건 버리기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라고 하시며 코카에게 밥그릇 냄새를 맡게 하셨다.


맘보의 우렁찬 짖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새벽 동네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왔다가 코카가 늘 자던 자리인 노란색 방석 위에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안의 불을 켜고 코카를 찾아보니


코카는 맘보가 쓰던 양철 밥그릇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얼굴로 잠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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