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이야기
아빠는 흰머리를 뽑으면 개당 백 원씩 쳐서 용돈을 주곤 했다. 안방 침대에 맞은편 벽에 걸린 벽걸이 티비에서 연예인들이 자기네들끼리 하하호호 하는 것을 보며 아빠 다리를 하고, 무릎에 그의 머리를 누이고 하나의 프로가 방영되는 동안 계속 솎아 줬었다. 열 개정도 뽑으면 천 원이 주어졌으니, 돈 쓸 일이 전혀 없던 유치원 시절의 아이로서는 거금이었다. 돈을 모아 다마고치를 사는 상상을 했지만, 실제로 산적은 없었다. 나는 참을성이 없는 아이였으므로 뽑기를 하여 싸구려 반지를 얻거나, 판박이가 들어 있는 불량 껌을 샀기 때문이다. 나는 친언니와 6살이 차이 나는 늦둥이였는데, 아빠의 나이치고는 흰머리의 양이 적다고 생각했다. 『브레인 서바이벌』이나 『쟁반노래방』 따위가 나오던 시절이었으니,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시절이었다.
누군가의 머리를 만져 주는 것은 현재까지 와서도 내가 퍽 좋아하는 행위다. 과실에서 동기의 머리를 염색해 주거나, 고등학교 때 친구와 같이 비닐 봉투를 뒤집어쓰고 서로 염색해 주기도 하고, 솜씨는 없지만, 상대방의 머리를 땋아 주거나, 그냥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건 짧게 자른 머리를 머리카락 결의 반대 방향으로 쓸어 주거나, 흰머리를 골라내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애인의 머리에서 흰머리를 골라 주는데, 애인은 늘 동물의 왕국의 내레이션 톤으로 “암컷 오랑우탄이 수컷 오랑우탄의 머리에서 이를 잡아 줍니다.”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 작은 머리통을 잡고 깔깔대며 웃는다. 흰머리를 뽑고 애인의 귀에 올려놓거나 손에 쥐여주면 나중에는 털갈이 시기의 고양이 털처럼 소복하게 모인다. 그럼 그걸 나는 허공에 후! 하고 날려 보내거나 지갑 동전 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한 올씩 나폴나폴 떨어지는 흰색 머리카락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미대에 들어가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넣던 시절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머리카락도 흰머리가 가득했다. 아니 가득하다 못해 새하얀 색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시절 여느 할머니처럼 힘차게 볶은 곱슬머리로 몽실몽실한 푸들같이 따뜻해 보였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볼 때마다 만지고 싶고 한 움큼 잡아서 입에 머금고 녹여 먹고 싶을 만큼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머리카락만큼은 금단의 장소였어서 평생 동안 만져 본 적이 없다. 돌아가시고 난 후의 사진들에도 검은색으로 염색한 사진이거나 한겨울에 찍은 사진이라 모자와 목도리를 친친 감아 흰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진 들 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양원에 봉사활동 오던 고등학생들과 찍은 사진을 달라 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