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랑 눈을 마주치면 눈알을 쪼아 먹을지도 몰라.”
유치원에 같이 다니던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아이가 해준 말이다. 너는 눈이 반짝이니까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까치와 눈을 마주치면, 혼자 간직하기 위해 내 눈알을 파먹어 버릴 것이라는 거다. 그 당시에는 ‘으, 너무 무서워! 하지만 눈이 반짝이다는 말은 좋아!’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새는 까마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여전히 눈이 반짝이다는 말은 좋아!’ 이다. 나는 최근의 기억보다도 어린 시절들이 기억이 유난히 더 진하게 남아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친할머니가 감나무 꼭대기에 있는 감을 가리키며 “저거 봐. 저건 까치밥이야.” 라고 속삭여 주었던 장면이다. 과연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꼭대기에 열려 있는 감들은 손도 대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급식실을 빌려서 계란 요리 대회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아빠가 한박스 들고 온 단감들을 처치하기 위해 네 개를 싸주시며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주셨었다. 칼은 위험하다고 담임 선생님이 감을 깎아 주셨는데, 접시에 올려놓기도 전에 본인의 입으로 들어가면서 “나 완전 단감 킬러야~!” 하면서 혼자 두 덩이를 드셨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 많은 아저씨가 애들 상대로 식탐 부리고 주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요즘도 단감만 보면 묘한 식탐이 돌아서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 뺏길까 봐 홀라당 먹어 버리곤 한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어 열몇번째의 가을을 맞이했다. 가장 높이 있던 감들까지 물러져서 바닥으로 퍽퍽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어지간히 게으른 사람이라더니, 게으르기보다는 맷집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저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데 코에 맞으면 어떡하지…?’ 마지막 감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길에 떨어진 은행을 주워가시던 아주머니들도, 누군가 아파트 화단에 심어 놓은 돌나물을 뜯어 가던 사람들도 감나무만은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 밟아 넓게 짓이겨진 홍시는 외로워 보였다. 까치도 안 먹고 참새도 비둘기도 안 먹어 주어서 이런 모습이 되다니. 감수성이 넘쳐흐르던 시절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륵거리던 소녀는 떨어진 감나무만 봐도 우울해졌다. 예고 입시라니! 다른 친구들이 국·영·수 학원을 다닐 때 나는 학교도 빠지고 미술학원에 갔다. 선생님이 새로 가져오신 단감이 그날의 정물 중 하나였다. 나는 주황색을 잘 쓰지 못하는 아이였다. 다른 건 다 잘하면서 이상하게 주황색 정물만 나오면 버벅이며 헤매고 물만 묻힌 붓을 종이에 발랐다. 모든 주황색을 못 쓰진 않았다. 비타오백이나 환타와 같이 공산품으로 나온 오렌지는 그렇게 기똥차게 베껴내면서 감이랑 귤과 같은 자연물만 나오면 종이에 구멍이 뚫리도록 비적 대기만 했다. 오전에 보았던 짓이겨진 감이 생각나며 꼭 내 꼴과 같다 생각하며 울었다. 흰색 꽃을 그릴 때도 투명한 유리잔에 비친 군화를 그릴 때도 울지 않았던 애가 꺽꺽대며 팔레트만 닦고 있으니 선생님이 당황해하시며 괜찮다고 연습하면 된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사실 해피엔딩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주홍색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까치밥의 변신! 홍시양갱” 이라는 포스팅을 보았다. 아무도 안 먹었던 마지막 남은 까치밥으로 만든 홍시 일지, 까치에게 남겨 주지않고 모조리 따왔는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까치밥이라는 이름이 이쁘니까 썼는지는 몰라도 ‘까치밥 홍시 양갱?’하면서 눌러보았다. 맛있을 거 같았지만 왜 굳이 까치밥으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홍시를 광고하는 글들에는 까치밥 홍시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까치밥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정말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결국엔 땅에 떨어져 밟힐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직 가을이 무르익지 않아서 길가에 가끔 심겨 있던 감나무들은 보기만 해도 떫어서 아무도 따가지 않고 있는데, 벌써부터 팔리고 있는 까치밥들이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박말례 할머니 영상에서 감으로 만든 잼이 너무 떫어서 결국 버리게 되는 영상이 있었다. 감 맛 스프레드. 상상하면 밤 스프레드 마냥 가을 맛이 물씬 느껴지며 맛있을 거 같지만, 아직 팔고 있지 않은 음식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들은 욕심이 너무 과해서 마지막 남은 까치밥까지 모조리 다 먹어 치워 야위어 가다가 종국에는 눈알을 다 파먹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