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어 놓은 가족 앨범을 보다 보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낙엽을 하늘로 던지며 찍힌 사진이 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립학교였고, 수요일마다 드리던 예배 대신 찬송가 부르기 대회였는지 뭔지 알 수 없는 대회를 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찍어 주신 사진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이상한 대회가 꾀나 많았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교회에서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단풍나무와 나팔꽃으로 가득 차 아름다웠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친구였던 아이중 하나는 떨어지는 낙엽에 어깨를 맞거나 손으로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그랬었다. 내가 그 당시 좋아하던 아이는 샤프심을 먹고 연필 뒤에 있는 나무 조각 장식을 씹어 삼키는 책을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그 아이를 따라서 도서관에 가서 방해하는 것보다야 떨어지는 낙엽을 잡는 편의 더 희망 차다고 생각했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약 2년간 가을만을 기다려 왔다. 떨어지는 낙엽을 잡은 적은 없다. 그때의 낙엽과 마찬가지로 남아있는 초등학교 친구들은 한 명도 없다. 국회의원을 준비하는 아빠를 둔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왕따 놀이”를 가장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왕따를 정해 따돌렸던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필요도 얽히고 싶지도 않다.
낙엽을 잡으러 뛰어다니던 아이는 커서 낙엽이 굴러가는 거만 보아도 낙엽이 불쌍해! 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낙엽이 굴러가는 거만 보아도 까르륵 웃어야 할 나이인데 내가 유별 나다고 생각했다. 근데 뭐 그 엄마에 그 딸이지 싶다. 엄마는 생리를 하는 나에게 생리대를 챙겼냐면서 내 가방을 뒤질 때 내 가방 좀 헤집어 놓지 말라고 말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도 땅을 치며 속상하다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연락을 끊었던 초등학교 친구들과 다시 연락이 된 것은 카카오톡이 처음 생겼을 때이다. 단톡방이라는 개념이 생겼을 때에 초대된 톡방에는 보기 싫은 애들이 있었고 나는 자꾸만 방을 나가도 초대하는 방장 아이에게 그만 좀 초대하라고 개인톡을 보냈다. 그 여자애는 다시 나를 초대해서 내가 보낸 톡을 캡처해서 조롱했다. 딱 한 명만 나에게 개인톡으로 그냥 카톡을 지우라고 말해준 애가 있었는데, 한동안 카톡 없이 살았던 거도 그때 일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단톡방을 확인하기를 싫어한다. 그래도 내가 모든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는데, 그 단톡방에는 없었던 친구가 어느 날 가야금 공연을 하는데 내가 꼭 와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공연장에서 다른 애들을 마주칠까 너무 무서워서 가겠다 하고 안 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모두 차단해버려서 그 친구와 연락할 방법이 사라 졌다는게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 애인과 길을 걷다가 낙엽이 떨어져 어깨에 맞았다, 나는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 “사랑이 이루어지려나 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잡으려고 노력하던 낙엽이 스스로 와 떨어졌다.
쌓아 놓은 낙엽 더미에 강아지가 뛰어들어 구멍을 만드는 계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