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언니가 개울에서 잡아온 송사리 아홉 마리를 기른 적이 있다. 너무 어렸을 때라 어느 개울에서 잡아 왔는지도, 송사리들이 살던 어항의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지만, 송사리들이 자꾸만 죽어 나갔던 것은 기억난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점프해서 죽는 일들이야 흔하지만, 깔아 놓은 모래에 코를 박고 죽는 다던가 서로 잡아먹는 모습은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엄마랑 언니와 화장실에 빨간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 빨간 대야에 물고기들을 풀어놓고 물을 갈아 주던 게 생각난다. 어항에서 물고기만을 건져 대야에 담고 다시 어항에 담는 일은 우리 세 명에게는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모래알과 안에 넣어주었던 장식물을 손으로 비벼 가며 빡빡 씻어 주었는데, 그때 그 모래알에는 아홉 마리의 송사리 똥과 불어 터진 사료 가루가 범벅되어서 묘한 물비린내가 났었다. 우리는 작은 가짜 수초도 심어 놓았었는데 엄마가 그 작은 수초의 결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 주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닦은 수초와 모래 사이에 코를 박고 죽은 물고기의 표정은 너무 섬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돗물의 독기를 빼주지도 않았었으며, 물의 온도나 산소농도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고, 물을 엄청 자주 갈아 주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고기들은 늘 아파 보였다. 산소를 위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튀어나온 송사리 시체를 본 언니가 무섭다고 울며 아빠에게 변기통으로 떠나보내는 것을 맡길 때에 유난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로 키우게 된 분홍 물고기 핑크가 똑같은 방법으로 죽기 전 까지는 말이다.
이마트 같은 곳에 가면 반려동물 코너에는 늘 물고기가 있다. 가끔은 비닐봉지에 담아 무료로 나눠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나눠 주는 일은 병아리를 락카로 색칠해 500원에 파는 짓과 똑같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나가다 연분홍색 금붕어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엄마도 마음에 드셨는지 선뜻 지갑을 열어 사주겠다고 하시며 한 마리면 외로우니까 옆에 있는 은청색 물고기는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렇게 물고기 두 마리와 밑에 깔 자갈을 들고 나는 이번 물고기는 꼭 오래오래 키워야지 다짐하며 흔들리는 차에서 물고기가 멀미 나지 않을까 살펴가며 집에 갔다. 집에 와서는 엄마가 어디서 찾았는지 넓적하게 네모난 투명 유리 화병을 들고 오시고는 이곳에서 물고기를 키우자고 하셨다. 이번에도 역시,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작은 크기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물고기를 키우기에 너무나도 완벽하다 생각했다. 오래 살아서 왕 커지라고 분홍 물고기는 왕분홍, 은청색 물고기는 왕빛나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언니는 이름이 구리다고 했지만, 키우는 동물의 이름이 촌스러우면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다. 같은 반 친구는 금붕어 한 마리를 3년간 키웠는데, 물도 안 갈아 주어서 누런 초록색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을 때 갈아 주고, 밥 주는 것을 종종 깜빡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저번보다는 물을 덜 갈아 주어야지 결심했다. 확실히 송사리들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빛나의 지느러미에 상처가 나서 옆구리가 빨간색으로 변해 버렸을 때부터 물고기들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싱크대에서 물을 갈아 주는데, 빛나가 탈출을 해 음식물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엄마가 손가락으로 낚아채면서 생긴 상처 같았다. 물고기들은 너무 연약하다. 전혀 힘주지 않아도 쉽게 찢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 엄마 말대로 핑크는 혼자서는 외로웠었나 보다. 현관문 근처에 놔두어 집 밖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마다 물고기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어느 날 아침, 어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살짝 패닉이 와서 신발 장 바닥을 확인하였다. 핑크는 반 정도가 짓이겨진 채로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채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내가 밟은 거 같았다. 나는 언니와 똑같이 부엌에 있던 엄마를 끌고 와 분홍이를 보여 주었다. 엄마는 휴지를 가져와 감싼 후 송사리 때와 똑같이 변기에 흘려보냈다. 한동안 분홍이의 마지막 모습은 나를 힘들게 했었다. 송사리 한 마리 한 마리를 변기로 흘러 보낸 아빠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송사리를 개울에 다시 풀어 주었을 때 와 겹쳐 보여 차라리 핑크를 빛나가 죽었을 때 바로 개울에 풀어 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잖아?
네 마리의 구피는 미술학원 밑 꽃집 언니에게서 화분을 샀을 때 받았다.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산 카네이션 화분과, 산소가 저절로 생성된다고 하는 비어있는 미니 화분이었다. 미니 화분을 사는 나에게 언니는 어항에 둘 것이냐 물어보면서 손톱보다 작은 아기 구피를 주었다. 꽃집 언니의 수많은 어항들은 숲 같은 꽃집 군데군데 화분들 사이에 있었다. 그곳 구피들은 많이 먹어 살이 올라 통통하고 손가락만큼 커서 화려한 꼬리를 자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언니는 이렇게 작은 구피를 오래 키우면 화려해진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종이컵에 구피 네 마리를 받아 아빠 차에 쏟지 않으려 손바닥으로 종이컵 입구를 막았다. 집에 와서 분홍이와 빛나가 쓰던 어항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모래나 자갈을 깔지 않았다. 고등학생 머리로는 물고기가 바닥에 코를 박고 죽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산소를 자동으로 생성해준다는 미니 화분을 맨 유리 바닥에 눞여 놓으며 여긴 구피들의 놀이터가 되겠고만~ 하고 생각했다. 스포이드로 어항에 산소도 넣어 주고. 수돗물의 독소도 빼주고, 원래 살던 물에 더해주는 식으로 관리해보았다. 똥이 많이 쌓였다 싶을 때만 물고기들을 양치하는 컵에 담아 물 전체를 갈아 주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어디서 고운 자갈과 고급 사료를 얻어와 이번엔 잘 길러 보자 하셨다. 아무래도 어항 바닥에는 자갈이 있는 편이 이뻤다. 구피들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그래서 더 잽싸게 헤엄쳤다. 어항의 입구도 좁아서 수면에 먹이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먹으러 올라온 구피들을 물병 뚜껑으로 건져야만 했다. 그렇게 뚜껑으로 뭉개버린 물고기가 두 마리였다. 건져 올리는 물살에 벽면에 붙어 헤엄치는 애를 조심스럽게 떠내려다 난 사고였다. 그때 구피들 중 한 마리는 새끼손톱에서 엄지손톱 정도로 자란 상태여서 조금 자만한 거 같다. 물을 더해 줄 때도 맨 유리 바닥이었을 때에는 콸콸 넣어도 괜찮았지만. 자갈을 밑에 깔고 나서는 조심스럽게 벽면을 타고 흘려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압력에 자갈이 요동을 쳐 구피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갈에 맞아 한쪽 구석에서 헤엄치던 애가 어느 날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구피가 한쪽 모서리에서만 떠다니며 멍하니 있는 것이 너무 이상해서 어항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보았지만 다시 헤엄쳐가서 한 곳에만 머물렀다. 그러다 생을 다하고 만 것이다. 마지막 구피도 점프해서 사라졌다. 구피들은 머리가 조금 컸다고 내 스스로 변기통에 내려 보냈었는데, 이게 기분이 상당히 멜랑꼴리 했다. 아무리 작은 존재여도 죽음은 죽음이었고, 심지어 그 죽음은 나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변기통이라니 이게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인가? 그때에는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물고기 정도로 작은 아이들은 아파트 화단에 묻는 정성 정도는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이후로는 무언가를 키워 본 적이 없다. 오래 데리고 살 자신도 없을뿐더러 물고기들의 얼굴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키웠던 동물들 모두 하나하나가 당연히 다 생각난다. 거북이도 개구리도 심지어는 무슨 화분을 키웠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또 무언가를 떠나보낸 다면 견딜 수 없이 슬플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능력이 되어서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책임지려 한다. 떠나보낸 열다섯 마리의 물고기들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