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11시 46분에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눈 소식이었다. 동태탕을 먹으며 겨울이 오는 맛이라고 대화를 나눈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첫눈이 와버렸다. 칼바람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포근하게 눈이 나린단다. 창밖을 보니 집 앞은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말 그대로 소설(小雪) 이었는지, 애인이 있던 장소에도 드문드문 눈송이가 내렸다 한다. 얼굴과 허벅지가 빨갛게 익은 채로 핫팩 두 개를 흔들어 이불속에 들어갔다.
집에서 혼자 외따로이 우풍을 맞는 내 방은 냉궁이다.
날씨가 추워질 때면 서러워서 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 집이 좁은 관계로 엄마의 겨울 옷과 이불이 들어 있는 장롱은 내 방에 있다. 책상을 넣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에 옷장만 네 개이다. 하나는 심지어 화장대에 옷을 넣어 쓴다. 이불을 넣은 옷장은 침대 옆에 있는 책 더미 때문에 열 수가 없다. 두꺼운 이불을 꺼내려면 두 명의 힘이 필요 한데, 엄마는 내방이 정신병자의 방 같다며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빨래 더미도 문 앞에 던져 놓고 간다. 때문에 내 방 이불은 아직 초겨울용 이불이다.
구질구질해서 남들에게 말하지 않지만, 나의 잘 준비는 길다. 우선 저녁에 샤워를 할지 오전에 샤워를 할지의 고민부터 시작한다. 자기 전에 감으면, 밤새 머리가 시려워서 잠을 설친다. 하지만 15분을 더 잘 수 있다. 오전 시간 출근 준비할 때 감으면, 잘 수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잠을 푹 잘 수 있다. 대신 버스 타러 가는 길 5분 잠깐이 엄동설한이다. 나는 질 좋은 잠과 추의의 상관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 고민이 어떤 결과로 끝나던, 다음 단계는 옷 껴입기다. 모자가 달린 후리스를 수면 잠옷 위에 입고, 그 위에 또 다른 후리스를 덮고 두꺼운 코트를 덮는다. 마지막 단계가 이불을 반으로 접어 덮는 것이다. 초겨울은 이것 만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요즘 같은 추위에는 핫팩을 두 개 흔들어 하나는 등 뒤 혹은 머리 뒤에, 하나는 배 위에 올려놓아야 다음 날 아침 몸이 움추러들어 굳은 채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작은 주머니 두 개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으슬으슬 추운 이불속을 따뜻하게 유지해준다.
핫 팩은 편의점에서 4개에 4000원, 1+1으로 파는 것으로 16시간 동안 70도를 유지해주는 제품이다. 핫팩을 두 개 뜯음으로 인해 내 잠은 천 원어치 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