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보다 따뜻한 4등의 행운
로또는 당연히 낙첨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니 웬걸, 5등 두 개가 나란히 당첨되어 있었다. 1등의 거창함은 아니어도, 오늘 내가 부산에서 마주한 행운들이 결코 허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아주 귀여운 '물적 증거'였다.
사실 이번 부산행의 본래 목적은 모교인 부산대학교 분자생물학과 40주년 기념행사였다. 일요일 오전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 불참하려 했으나, 친한 선배들의 성화에 이틀 전 급하게 참가를 결정했다. 그저 졸업생들이 모여 옛날이야기나 나누는 편한 자리인 줄로만 알았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무려 3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단순한 친목 도모를 넘어 재학생 후배들의 진로 상담까지 겸하는 꽤 무게감 있는 자리였다. 급하게 합류하느라 행사 성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참가비만 내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문득 민망해졌다.
그런데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300명 중 첫 번째 경품 당첨자로 내 번호인 6번이 불린 것이다. 4등 상품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단상에 올랐다. 준비 없이 온 객 식구 같은 마음이었기에 상품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에게 양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 순간, 교수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이 친구는 우리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변리사를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훌륭한 선배입니다.”
졸지에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준비되지 않은 스피치 시간이 주어졌지만, 술 한잔의 기운과 후배들을 향한 진심을 담아 입을 뗐다. 전공인 분자생물학이 법학이라는 낯선 필드에서 어떻게 강력한 무기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여러분, 생체 메커니즘과 법학의 로직은 사실 대동소이합니다.”
유기체 내에서 일어나는 정교한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것과, 법적 논리에 따라 사실관계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같다.
13개월 만에 변리사 시험을 통과하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분자생물학도로서 훈련된 그 정밀한 사고방식은 내 커리어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당황해하던 후배들의 눈빛이 조금씩 반짝이는 것을 보며, 나 역시 15년 전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다시 만난 듯한 묘한 전율을 느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이어진 술자리. 선후배들이 뒤섞여 나누는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4등 경품 당첨이라는 작은 불씨가 300명 선후배의 마음을 잇는 따뜻한 대화의 장으로 번져나갔다.
여기에 확인 사살처럼 따라온 로또 10,000원의 당첨금까지. 비록 억만장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늘 나는 300분의 1이라는 경품 확률과 로또의 행운,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후배들과의 연결’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이 정도면 정말 완벽하게 럭키한 하루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