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함께

인형극단 앨리스 | 김지연 김덕수

by 이슬기

2019년 부산국제연극제에서 ‘인형극단 앨리스’의 <어린 왕자>를 봤다. 그때 우리도 마리오네트와 배우의 연기가 함께 진행되는 극을 하고 있어서, 더욱 <어린 왕자>에 관심이 갔다. 아기자기한 무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원작의 스케치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어린왕자와 여우 인형은 섬세하게 만들어진 마리오네트였다. 비행사로 분한 남자 배우와 어린 왕자 마리오네트는 직접 접촉하며 함께 연기했다. 그 아름다운 장면이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는 ‘앨리스 인형극단’이 부부 극단인지 몰랐다. 선배님들을 인터뷰 하며 다닐 때, 인터뷰의 취지를 이야기하자, 부부 인형극단 중 하나라며 ‘앨리스 인형극단’을 이야기해 주셔서 알았다. 인터뷰 요청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 현재 인형극단은 폐업 상태와 다름없으며, 두 분은 다른 일을 하고 계신다며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더 와닿았다. 인형극을 멈추고 다른 직종의 일을 시작하신 그 결심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앨리스 인형극단’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고, 꼭 들어보고 싶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요청을 드렸을 때, 현재 하고 계신 일 때문에 대면은 어렵지만 서면인터뷰는 해주겠다고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두 분에게서 온 편지는 더 깊은 성찰을 하게 했다.

이 편지를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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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단 앨리스’ 단체 내부 사정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였음.




인형극단을 통해 찾은 예술적 표현과 의미



Q. 먼저 인형극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 두 분의 만남이 궁금합니다.


김덕수 우리의 인연은 1993년 대학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연극배우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죠. ‘극단 예당소극장’, ‘극단 성좌’, ‘극단 배우극장’을 거쳐 ‘극단 예우’에 소속되어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태우던 배우였습니다. 특히 마이클 제이콥스의 <사기꾼들>이라는 연극에서 전도사 역할을 맡아 재미있는 연기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공연이 없는 날, 저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지금의 아내, 김지연 씨를 처음 보고는 첫눈에 반했습니다. 지연 씨는 당시 평범한 새내기 직장인이었죠. 저는 용기를 내어 <사기꾼들> 연극 초대권을 지연 씨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지연 씨는 친구와 함께 제 공연을 보러 와주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인근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연극에 대한 저의 열정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지연 씨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연극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던 저의 경험,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지연 씨의 마음이 합해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인형극’을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저의 무대 경험과 지연 씨의 섬세한 손재주는 생각보다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1994년, 우리는 ‘인형극단 앨리스’를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만남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엮어진 우리의 열정이 참으로 아름답게 피어났던 것이지요.



Q. ‘인형극단 앨리스’를 통해 어떤 예술적 표현의 과정과 의미를 찾으셨나요?


김덕수 ‘인형극단 앨리스’는 20년 가까이 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명작 동화를 각색해 인형극을 공연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인형극으로 제작하여 무대에 올렸을 때,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메시지를 전하며, 인형극이 단순한 아동극을 넘어선 깊이 있는 예술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죠.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형극의 예술적 지평을 더욱 넓히고자 하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 연극 무대에서 접했던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홉과 같은 대문호의 작품들을 인형극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이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였죠. 셰익스피어와 체홉의 작품을 인형극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은, 인형극이 자칫 ‘아이들의 것’이라는 편견에 갇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들도 감동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진지한 예술로서 인형극을 끌어올리고 싶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새로운 인형 제작 기법을 연구하고, 무대 연출에 현대적인 미디어 기술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인형극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 두 사람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매우 의미 있는 여정이었으며, 공연 하나하나가 우리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를 바로 실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작품을 연구하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인형 제작 기술이나 무대 연출 기법에 끊임없이 시도해 보고 고뇌도 해봤습니다. 예를 들어, 고전 작품의 핵심 주제를 인형극 특유의 따뜻하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미디어 아트를 접목하여 더욱 풍성한 무대 효과를 연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인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관객과 깊이 소통하며, 인형극의 예술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저와 아내 지연 씨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바로 평생을 두고 추구하고 싶었던 인형극의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Q. 부부가 전업으로 인형극단 운영하실 때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함께 작업하는 단원들도 있었나요?


김덕수 극단의 운영 방식은 초기부터 우리 두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랜 연극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극본 창작, 연출, 무대 디자인, 그리고 행정 업무 전반을 담당했습니다. 지연 씨는 뛰어난 손재주를 발휘하여 인형 제작, 그리고 의상 제작까지, 극의 시각적인 모든 요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 둘이 극단의 처음과 끝을 도맡아 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 외에도 단원들이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저의 연극계 동료들이나 예술을 전공하는 젊은 친구들이 재능 기부나 아르바이트 형태로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이따금 어떤 작품은 인형극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큰 극장 공연이었기에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나 음향 조명을 봐줄 인력등 손길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경우엔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인력과 함께 일하기도 했죠. 그러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 형태로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고, 재정적인 한계로 인해 정식 단원을 고용하는 것은 오랜 시간 극단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핵심적인 기획과 제작, 연출은 늘 저와 지연 씨, 우리 부부의 몫이었지요.


Q. 오랫동안 인형극단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시기도 참 많으셨을 것 같아요. 굴곡의 시절을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김지연 공연 예술계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죠. 우리 부부에게도 IMF 외환위기, SARS, 그리고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공연이 취소되거나 관객 수가 급감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매 순간 찾아왔고, 우리 둘 다 전업 예술인이었으니 그 무게는 더욱 더 컸습니다.

그렇지만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굳건히 버텨냈던 것 같아요. “우리에겐 인형극밖에 없다.”는 강한 믿음과 열정이 원동력이 되었죠. IMF 때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운영하던 소극장을 정리하고 지방의 작은 마을이나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찾아가는 인형극’을 기획하여 생계를 이어갔죠. SARS가 유행했을 때는 대면 공연이 어려워지자 온라인으로 인형극 시연 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고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2년 가까이 수입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 이르렀지만, 이때는 잠시 극단 활동을 중단하고 각자 다른 아르바이트을 하면서도, 온라인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인형극 콘텐츠를 구상하는 시간을 가지며 미래를 준비했어요.

가장 힘들 때에도 우리는 ‘다음에 찾아올 기회를 위해 지금은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격렬하게 다투기도 했지만, 결국 ‘인형극단 앨리스’라는 소중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두 사람의 강한 의지가 숱한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시간들이었어요.


Q. 지금은 극단이 폐업 상태에 가깝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하고요.


김덕수 네, 말씀드린 대로 ‘인형극단 앨리스’는 현재 사실상 폐업 상태에 가깝습니다. 인형극만으로는 더 이상 극단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모든 것을 바쳐온 극단을 내려놓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결심이었습니다. 우리 둘 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번아웃과 함께 극심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현재는 가끔 있는 출장 공연을 하고 있으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초청 공연이라도 활성화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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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꿈을 꾸고 나아간다는 것


Q. 부부가 함께 인형극단을 운영하시는 데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으셨나요?


김덕수 부부가 함께 극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자, 양날의 검과 같았습니다. 먼저 장점으로는 서로의 업무와 예술적 열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는 점이죠. 밤샘 작업도 함께 견디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가장 먼저 공감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였죠. 그리고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기에, 어떤 아이디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든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단단한 팀워크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순간에도 서로를 지지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에, 극단을 이끌어가는 데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심전심으로 움직일 수 있었기에 효율성 또한 높았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어떤 아이디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었지만, 단점으로는 아무래도 일과 삶의 경계 모호했다는 것이겠지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불분명해지면서, 일 이야기가 곧 부부 싸움으로 번지거나 휴식 시간에도 업무의 연장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개인적인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또 극심한 책임감과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극단의 흥망성쇠가 우리의 생계와 직결되었기에, 일반적인 동업 관계보다 훨씬 큰 책임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한쪽이 힘들어하면 다른 쪽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되므로 부담감이 더욱 컸습니다. 의견 충돌 시의 어려움도 역시 있었는데요, 배우자와의 의견 충돌은 단순히 업무적인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사적인 감정까지 섞일 수 있기에,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더욱 복잡하고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Q. 그런 갈등 상황이 되었을 때 해결하시는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김지연 부부가 함께 예술 활동을 하며 수많은 난관과 스트레스에 부딪혔으니, 갈등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냉각기’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둘 중 한 명이라도 감정이 격해졌다고 느끼면,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 각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뒤든, 다음 날이든,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 다시 만나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다른 노하우는 ‘인형극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날’과 ‘부부로서의 대화만 하는 날’을 정해서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날에는 오로지 극단과 관련된 안건만 논의하고, 다른 집안일이나 사적인 불만은 일절 꺼내지 않았습니다. 마치 직장 동료처럼 말이죠.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부부로서의 대화만 하는 날’로 정해서, 극단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서로의 안부나 감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무리 갈등이 깊어져도 “극단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극단의 목표와 가치를 먼저 생각하려는 노력이, 갈등을 더욱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저희 같은 후배 부부 인형극단에게 해주시고 싶은 조언이 있으실까요.


김덕수 요즘 같은 시대에 부부가 전업으로 인형극을 한다는 것, 지금 분명 많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계실 것이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서로가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꿈을 꾸고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큰 힘과 용기를 가진 분들이십니다. 때로는 인형극의 무대가 너무 작게 느껴지거나,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인형들이 생명 없는 천 조각으로만 보일 때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부부가 만드는 인형 하나하나, 무대 위 작은 인형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눈에는 환상적인 마법이 되고, 그들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꿈으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소중한 꿈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다시 돌아와 새로운 열정과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김지연 부부가 함께 하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우고 지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결국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포기하지 마시고, 서로 사랑하며 부부만의 소중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세요. 그리고 가끔은 인형극이라는 열정의 무대에서 잠시 내려와 서로를 위한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인형극단 앨리스]


1994년에 창단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창단한 인형극 전문단체이다.

새롭게 어린이의 눈높이로 다가가

우리 어린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단체다.

홈페이지 alice.or.kr


대표작

어린왕자

재크와 콩나무

햇님과 달님

토끼와 자라

아기돼지 삼형제

오즈의 마법사

알라딘과 요술램프

빨간모자와 늑대

헨젤과 그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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