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논어(論語)에 있는 공자 말씀으로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하며 배우라는 의미로 마음에 새긴 글귀이다. 오늘의 스승이 되어준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영감을 받고 이렇게 글까지 남기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예전에 '칭찬으로 장점 찾기'라는 브런치 매거진을 발행했었다. 떠오르면 시작은 빠른 편인데 늘 꾸준함이 부족해 지속하지 못한다. 칭찬으로 장점 찾기 역시 마찬가지였고 매거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글은 발행 취소 글에 담겨있다.
칭찬으로 장점을 찾으려고 했던 그때의 나도,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오늘의 나도, 결국 나는 같은 자극에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기억하고 싶은 오늘을 기록하여 이 마음을 '잃지'않고 싶음인 것 같다. (기억을 '잊고' 싶지 않다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그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는 표현했을 뿐. 오타 아님 주의)
칭찬으로 장점 찾기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당신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물으면 쉬이 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MZ세대라고 묶이기에는 좀 많이 다른, 전기 밀레니얼 세대인 내게는 그 질문이 어렵고 창피하다. 세대의 이슈라기보다 겸손이 미덕이라 교육받은 뿌리 깊은 유교사상의 동양인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의 성향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겠다.
꽤 오래전에 퍼스널 브랜드 자격증을 따던 시절, 교육 중에 강사님께서
"자, 지금부터 한 10명의 지인에게 문자(당시엔 스마트폰도 깨톡도 없던 시절로 MMS도 아닌 80byte SMS 문자시대였다.)를 보내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달라하고 이유도 물어보세요."
라는 과제를 핑계 삼아 물었는데 꽤나 신선한 대답이 많았다. 별명을 이야기한 친구도 있었고, 문장으로 설명해준 친구도 있었고 참 다양한 표현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하나는 나를 '달걀'이라고 표현한 대학 선배의 회신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겉은 강하게 보이는데 속은 세상 말랑한 녀석이라며 용도가 다양해서 프라이도 찜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나 뭐라나. 그래도 그 단어가 기억에 남는 것 보면 그 이유가 썩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 시절 나는 선배에게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회상할 수 있어 좋다. (지금도 연락이 닿는 선배이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복기하다 보면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복기해보는 오늘의 칭찬 혹은 덕담.
"저는 그날 북토킹 때 느꼈는데, 가장 고수는 키묘님이란 걸..."
"대단한 사람이 대단하지 않다며 말을 하는 그 유머러스함? 듣는 내내 유쾌하고 빠져들었어요."
"그걸 들으면서 나는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닌가... 아직도 힘을 더 빼야겠네!라고 생각했어요."
오늘의 스승 JS님의 덕담은 황송했다. 좋게 봐줘 고마웠고 한 편으로는 이상하고 신기한 마음이었다. 생각이 많고 자기반성이 잦은 나는, 북토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너무 가벼이 말했던 것 아닌가 후회했었다. 다들 치열하게 고민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용기있게 독립출판물로 펴낸 멋진 분들이었는데, 난 단순히 책 만드는 과정을 배우겠다는 심플한 생각으로 참여했던지라 다른 분들 이야기에 많이 감탄하고 반성했었다. (독립출판을 하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심플했지만 최인아대표님, 서범상선생님, 그리고 멋진 동기, 동문들이 남았고, 함께 수업 들었던 친구와 서로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던 시간, 책으로 만들어 100여 명과 나눈 추억, 지인들에게 받은 다양한 축하 등 내 삶에 꽤나 재미난 이벤트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랬던 기억이 생생한데 가볍다 생각했던 나의 말들이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힘빼고 말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고 하니 재밌지 아니한가. 역시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묻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 일은 재미있다. 그리고 나 역시 힘빼고 말하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너무나 고마운 말이다.
지금도 가끔 친한 지인들에게 나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단점은? 질문을 종종 한다. 입에 발린 칭찬 말고 명확한 피드백이 좋다. 잘했다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순간 기쁨을 만끽한다. 금방 잊어버리는 붕어지만 그 때만큼은 내가 그랬냐며 히죽거린다. 물론 그런 물음을 하는 대상이 적다. 나는 낯을 가리니까. 그리고 좋지 않았다는 피드백은 고쳐보려 한다. 물론 말과 행동을 바로 고치는 건 쉽지 않지만 금방 인정하는 것도 나의 장점이다.
(간단하게 쓰려고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 번째 꼭지까지 왔다. 누구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나눠 쓰고 싶지 않다. 시간순이 아닌 내 의식의 흐름대로 뒤죽박죽 쓰고 있지만 수미쌍관으로 마무리를 시도해보면) 오늘의 스승 JS과 대화의 시작은 그녀가 내게 한 인터뷰 기사를 공유해주면서였다. 좋아하는 김지수기자님의 기사였고, 기회가 된다면 김난도교수님께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기자님의 질문을 보고 인터뷰이도 인터뷰이지만 인터뷰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고 피드백을 공유했을 뿐이다.
그리곤 대학시절 故정재윤대표님이 내게 해주셨던 피드백이 생각나 그 역시도 공유했다. 당시 진짜 스승님이셨던 정재윤대표님. 이제는 만나뵐 수도 없는 그 분께서 내게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셨드랬다. 기억을 상기에 보면
"경쟁PT에서 PT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문을 잘하는건 더 강력한 힘이 있다. 내 질문 하나에 상대가 준비한 전략과 전술을 통째로 흔들어버릴 수 있단다. 탄탄하게 준비한 논리를 흔들어버릴 수 있는 창이 바로 질문이다. 반대로 내가 PT를 할 때 그 질문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 일부러 그 질문이 나올 수 있게 유도를 하는 것. 그리고 기똥찬 답변을 미리 준비하는거야. 그 방패로 인해 경쟁 PT의 승기는 네가 가져올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 그러니 매주 있는 경쟁 PT에서 너희들이 나눈 질문들을 작성하고 서로 공유하도록."
당시엔 참 많은 질문을 했다. 내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아닌 질문인지도 모르고 그냥 막 했다. 그리고 졸업하던 때에 내가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좀 더 진지하게 조언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꽃다운 스물셋, 어리디 어린 그 시절 나는 좋은 스승님 덕분에 질문의 힘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마케팅으로 1n차 밥벌이 하고 있는 지금, 업무는 물론이고 내 삶에서 질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애증 관계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세요? 라고 물으면. 관찰하고 질문하며 의미를 발견하는 인사이터라고 나를 소개하니 말 다했지 뭐. 그리고 질문을 잘하는 건 아직도 어렵다. 그 시절 보다 더 아는 사실이 있다면, 질문 잘하는 사람은 이해력이 좋고(앞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있어야 질문 자체가 가능하다), 지식이 풍부하며(해준 이야기 외에도 풍부한 상식이 뒷받침 되어야 좋은 질문이 가능하다.), 사고력이 우수한(언급된 이야기 말고 다른 사고로 확장하고 적용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가 생겨야 관련한 질문이 가능하다.)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나는 질문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종종 잊기 않고, 잃지 않기 위해 다시 기록을 시작해본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을 한 스승님들의 말과 행동, 글귀나 그림, 영감이 되는 다양한 것들을 차곡 차곡 쌓다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사람인지 스스로 알게 되지 않을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