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
@뮌헨, 독일 ▶ 헬싱키, 핀란드 LH2466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 비행기가 마침내 나를 핀란드로 데려다줄 것이다. 묘한 감정이 든다. 두근두근,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마음이 설렌다.
인천에서 뮌헨까지 오는 동안에는 영화를 세 편이나 보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지만, 도저히 무언가를 끄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어쩌면 왼편에 앉은 한국인, 그러니까 원한다면 충분히 내 속마음을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그랬는지도.
집에서 멀어질수록 동양인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왠지 쫄린다. 뮌헨 공항에서 한국인 배낭여행자와 마주친 일이 떠오른다. 나는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가서 말을 걸기보다는 가급적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는 반가웠다. 이곳에서 헤매고 있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에 얼마간 긴장이 풀렸다.
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내게 여기서 어떻게 와이파이를 사용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3G를 쓰고 있으며 (나중에야 독일에서만 작동하는 불량품이라는 걸 알게 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유심을 미리 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곳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이놈의 오지랖. 조금만 덜 피곤했더라면 편의점에 같이 가보자고 할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하고 움직일 거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언가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누구나 사람책(human book)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회사에 다녔다. 나름의 이야기와 지혜를 가진 한 권의 책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강한 믿음의 뿌리에서는 비온 뒤 죽순 자라듯 죄책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정말 '누구나'일까?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본다면 난 대체 어떤 책인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타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이 여행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다.
설렘과 불안, 기대와 걱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실컷 하고 나니 어느덧 착륙할 시기가 왔다. '비행'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행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내 경우에는 부드럽고 조용한 착륙보다는 땅에 닿는 순간 몸이 요동치고 확 쏠리는 불친절한 착륙을 좋아한다. 그제야 '내가 정말 떠나왔구나'하는 느낌이 든달까. 거칠게 흔들릴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나저나 공항을 벗어나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3주짜리 짐을 이고 지고 800m를 걸어야 한다. 솔직히 좀 무섭단 말이지. 나, 잘 도착할 수 있겠지?
핀란드에서 살며, 일하며, 여행했던 한 여자의 방황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