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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기록자 Sep 27. 2017

타이완, 생각의 조각들_2

실시간 대만 여행기


현재시각 12시 30분.

자정까지 걸은 거리 11.9킬로미터, 약 17,000보.

수면시간 약 4시간.

수영 30분, 코끼리산 등반.


너무너무 피곤하겠지요?

여행이 원래 다 그런거지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너무너무 피곤하다. 오른쪽 눈밑이 다래끼가 날 것처럼 뻐근하다. 오늘은 정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게 될 듯.


어제 글을 다 쓰고 난 뒤 바로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 왜 낯선 곳에서 자면 몸이곳저곳이 살근살근 가려워 오는 걸까. 첫 3박을 묵을 곳에 돈을 아끼다 보니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우선 창문이 없어서 빛이 들지 않고, 그나마도 조명이 어두워서 침침하다. 환기가 안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침대가 2층에 있는데, 올라가서 보니 에어컨 위에도 먼지가 적잖이 쌓여 있었다. 화장실에도 열심히 청소한 티는 나지만 역시 곳곳에 곰팡이 자국이 남아있다. 눈으로 보아서 더 그렇겠지만 괜히 숨이 턱턱 막힌다. 예전에 씨애틀에서 더 저렴한 호스텔 다인실에 묵었을 때가 생각난다. 다른 지역에서 감기 기운을 달고 왔는데, 이상하게 방에만 들어가면 자꾸 기침이 났다. 특히 누우면 기침이 멎질 않아 숨을 못 쉬겠을 정도? 그때 정색하며 나가 달라던 프랑스 여자애를 생각하면 아직도 서럽다.


아무튼! 잠자리도 불편하고 숨쉬기도 답답해서 왠일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수영을 가기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계획대로 되겠군! 신이 나서 준비를 하고, 역시 면세점에서 구입한 방수 이어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기로 했다. 사실 어젯밤에도 한참을 갖고 씨름하다가 포기.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도 안 돼서 금쪽 가튼 아침 시간 30분+을 홀랑 날려버렸다(소니는 각성하라!)


근처 수영장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가는 길에 아침을 먹기로 했다. 수영 하다 쓰러지면 안 되니까. 가는 길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봤는데 외국인들의 평이 좋은 가게가 있길래 찾아갔다. 따져보면 처음으로 타이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은 건데, 결과는? 맛있었다. 하지만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름기가 살짝 도는 육수에 칼국수보다 살짝 굵은 면이 가득 담겨 나왔다. 그리고 위에는 달걀후라이! 속이 따뜻해지고 든든해지는, 이런 게 바로 아침이지- 이런 느낌? 땀이 송송 맺히기 직전 일어났다.


수영장은 110달러로 이용할 수 있는데, 10시부터 30분 간 수영장 청소를 해야 해서 이용할 수 없단다. 난 9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 도착한 상황. 30분 바짝 헤엄치고 나오기로 했다. 생각보다 넓었고(레인이 7번인가 9번까지 있었음), 수압풀, 유아용풀, 사우나도 있었다. 웬 젊은 여자애가 어리바리 들어오니 시선이 꽂힌다. 이런 순간이 싫어서 내가 한국에선 수영장엘 안간다. 아무튼 그도 그럴 것이 화요일 아침에 수영을 하러 올 수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겠소. 아, 무엇보다 좋았던 건 수영장에서 진한 소독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괜히 물도 더 부드러운 느낌? 수온이 너무 낮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30분이 짧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왔다갔다 하고 나니 금새 지쳐버렸다. 그래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몸이 점점 풀리고, 움직일 때마다 차갑고 부드러운 물이 감기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수영장만 30분에 땡!이고 사우나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데스크 직원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 몸 좀 지져보려(?) 할라치니 와서 문을 열어버린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걸로 끝!


씻고 나오니 시원하고 달달한 게 땡겼지만 아무거나 먹기는 싫고. 맛있는 버블티를 먹고 싶었지만 마땅한 곳이 안 보이고, 찾아 가기엔 햇살이 너어무 뜨거워서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외출준비!


여기까지 쓰는데 30분이 걸렸네.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구성할 힘이 없다.


너무 더워서 오늘은 실내활동 위주로 다니기로 했다. 호스텔 주변에 성품서점이 있어서 들렀고, 당대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찾아가는데, 이때 힘을 너무 많이 뺀 것 같다. 시먼역에 연어초밥 맛집(!)이 있다고 하여 갈까 말까 하다가 진행방향이 달라서 말았는데, 이미 내 몸과 마음은 연어를 원하고 있셔요...! 그래서 선택한 식당이 바로 사케동을 먹을 수 있는 일식집. 찾아보니 한국인 평이 많아서 반신반의 했지만 딱히 다른 옵션도 없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어떤 분이 근처 쇼핑하고 한끼 먹기에는 괜찮다고 쓰셨던데 딱 그정도?


밥 먹고 당대미술관 가서 보는데, 내가 아침에 검색했던 전시가 아니라 다른 전시를 하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본 건 뭐지? 아무튼 의도치 않게 Spectrosynthesis-Asian LGBT Issues and Art Now라는 전시를 보게 되었는데, 되게 재미있었다!


아래는 인상깊었던 것 중에 공개적으로 올릴 수 있을 만한 것. hotam이라는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이 특별호로 자신을 주제로 일대기를 정리했다. 근데 자세히 보면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시절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건 마치... 타이완 독립출판계의 할아버지를 만난느낌?!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이 매거진의 콘텐츠가 꽤 재미있었다.



두시간 정도 여유 있게 보고 나왔는데, 오래된 학교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건물은 바닥이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외관이 참 예뻤다.


그리고 카페를 찾아 헤맸는데, 지나가다 눈여겨 둔 곳에 가보니 거긴 카페가 아니라 디자이너들을 위한 작업공간이었다. 근데 넘 예뻤음. 사진은 나중에!


그래서 밖으로 나와서 카페를 찾다 찾다가 결국 못 찾아서 여기저기 구경은 엄청 했고, 아, 도중에 타이페이 필름 어쩌고에 갔는데 거긴 또 너무 바빠서 나 같은 말 안 통하는 외국인 따위 받아줄 여력이 없어 보여서 그냥 나왔다. 정원이 예쁘긴 예쁘더라. 결국 찾다 찾다 벼로 원하지 않는 느낌의 카페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차가 메인인 일본식 디저트 카페였음. 뭐가 뭔지 모르겠는 건 일본어 메뉴판도 마찬가지. 상담하듯 세세하게 물어보고 주문!했는데 눈꽃빙수가 넘 크쟈냐.. 나 넘 춥잖앙.. 그래도 열심히 떠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이번에 책을 네 권 가져왔는데, 두 권은 타이완에 관련된 책, 한 권은 에세이, 한 권은 소설이다. 오늘 읽은 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데, 읽다 보니 공감이 많이 가면서도 어쩐지 자꾸 슬퍼지려 했다. 워이워이..


저녁엔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해서 좀 급히 일어났다. 숙소 와서 옷 갈아입고 5분 앉아 있다가 다시 나옴. 오늘의 메뉴는 훠궈. 타이완식 훠궈는 뭐가 다를까. 친구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밥은 맛있었고, 영어로 대화하는 건 힘들었고, 고스펙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어 에너지 소진이 심했다. 알고보니 지난주에 친구가 졸업한 프로그램을 같이 들었던 학우들이라고 한다. 한 친구(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깐?)는 영어권에서 17년을 살았다고 하니, 말 한마디 하기가 조심스러워져버렸다. 타이완어로 얘기할 때는 하나라도 알아들어보겠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꾸만 초라해질랑 말랑 하는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친구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라 너무 잘 대해주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되게 세심하게 친절한 것 같다. 매너도 좋고.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나라 사람이 오면 다 잘해주니까.


아무튼 그 다음 일정이 타이페이101에 가는 걸..로 알고 있었으나 알고보니 101(워너원?)이 보이는 산에 오르는 거였다. 난 친구들 만난대서 나름 갖춰 입었는데 갑자기 등산이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지만 훠궈로 매운기가 가득한 위장의 운동을 느끼며 열심히 올라갔다.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어서 여기서부턴 쓰기가 싫으네. 확실한 건 난 야경을 좋아하긴 하지만 야경파는 아닌 걸로. 이게 무슨 소리지...


그리고 더는 쓸 말이 없을 것 같았는데, 호스텔 땜에 화가 났던 일만 마저 적고 자야겠다.

여기는 상호가 **호스텔&호텔이라고 되어 있는데 겪어 본 바로는 호스텔도 호텔도 아닌 것 같다. 사진에서는 공용공간이 되게 예쁘고 넓어 보여서, 방은 답다해도 공용공간에서 책도 읽고 사람들도 만나는 걸 기대했다. 하지만 오늘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 씻고 키보드를 비롯한 짐을 챙겨서 공용공간이라는 4층에 올라갔는데.. 일단 실외고, 주변 건물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너무 덥고 시끄러웠다.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긴 했으나 여기서 뭘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뭘 사다놓고 먹는다는 생각을 안 했기에 망정이지. 그래서 난 지금 좁고 어두운 내 방에서 이걸 쓰고 있다. 사람들이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거 때문이겠지? 뭐가 더 저렴한지 알아보는 시간과 노력을 쓰는 대신 값을 조금 더 내더라도 편안하게 구매하고, 이런 저런 불평할 게 아니라 원하는 곳으로 그냥 결정하면 되니까. 휴. 돈 많이 벌어야겠다.


아직까지는 대만이 너무 좋은데 이렇게 써제낀 것들을 빨리 다시 읽고 고치고 싶어서 한국에 빨리 가고 싶어진다. 이젠 목이 칼칼해지기 시작해서 얼른 자야겠다. 그래도 내일 수영은 또 가고 말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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