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대만 여행기
현재시각 1시 35분
자정까지 걸은 거리 9.7킬로미터, 약 14,323보
수면시간 약 6.5시간
수영+사우나 1시간, 양명산 하이킹
어젠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잤다. 9시에 맞춰둔 알람을 전혀 듣지 못했다. 아홉시 반쯤 불현듯 눈이 떠졌는데, 창문이 없는 방이라 하도 컴컴해서 새벽에 깬 줄로만 알았다. 아마도 9시와 9시30분 사이에 꿈을 꾼 것 같은데, 내가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와 썸을 타는 상황이었다.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영장 청소 시간이랑 애매하게 맞물려서 느릿느릿 준비하고 나가기로 했다. 내가 하도 수영을 한다고 난리를 쳐서 아침에 나가면 호스텔 직원들도 다 안다, 내가 어딜 가는지. 한 직원은 내게 운동선수냐고 물어봐서 웃겼다. 내가 운동을?
오늘은 길거리 음식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게 진정한 대만식 아침이니까! 어제 아침을 먹었던 곳 앞에 간이 식탁을 놓고 무언가(..)를 파는 걸 봐두었다. 내가 먹고싶었던 건 전병 같은 거였는데, 안에 쪽파 같은 게 잔뜩 들어있었다. 사실 검정색 가루로 가득찬 게 뭔지 궁금했는데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아무튼, 맛이 상상이 안 가서 혹시 모르는 마음에 주사위 모양으로 생긴 만두도 시켰다. 세 가지 맛이 있었는데, 양배추, 고기, 그리고 나머지는 모르겠다. 야채 섭취량이 너무 적었기에 양배추로 고고~했고, 너무 맛있었다! 부드럽고 기름진 빵 안에 볶은 양배추와 당면이 들어있었다. 아침이라 배가 금방 불러져서 하나는 가방에 넣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제 너무 오랜만에 수영을 해서 근육이 놀랐는지 오늘 수영은 어제만큼 쉽지가 않았다.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근력도 달리고 숨도 너무 금방 차올라서 오늘은 사우나를 더 오래 즐겼다. 사우나와 수영장을 오가는 건 정말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엔 유아용 풀에 둥둥 떠서 아주 살짝 보이는 하늘을 봤다. 어제 읽은 책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를 보기 위해 애를 쓴다는 식의 구절이 나왔는데, 내가 딱 그 모습이었다.
씻고 나오니 허기가 져서 남은 빵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분도 좋겠다, 주위에 공원이 있으면 버블티 한 잔 테이크아웃 하여 먹으면 너무 좋겠다 싶었다. 찾아보니 바로 한 블럭 뒤에 공원이 있었다. 아쉽게도 음료를 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그 흔한 세븐일레븐조차!) 별 수 없이 물과 함께 먹었다. 이건 특이한 향이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오히려 파향이 너무 강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 허겁지겁 다 먹어치웠다. 정오가 다가오면서 날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어떻게 다시 돌아가나 막막해질 때 즈음, 오는 길에 유바이크를 본 게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되겠구나!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난 몰랐다. 이 아이디어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를.
너무 어이가 없고 힘들었어서 자세히 적고 싶진 않다. 유바이크를 타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홈페이지나 어플, 혹은 정류소에 설치된 기기를 통하면 된다. 어플과 모바일 웹에서는 '영어'를 선택하면 사이트가 먹통이 되어 버려서 안 되고, 내가 있던 곳에는 기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물어물어 기기가 설치된 정류장으로 갔지만 역시 다른 언어가 지원이 안 되어서 도움을 청하려고 걷고 또 걷다 보니 엄처 걸었다는 이야기. 뭔가 안 풀렸다. 아주 거대한 지하 연결통로를 통과하는데, 불행히도 내가 관심 없어하는 류의 가게들만 줄줄 이어져 있었다. 카페라도 들어가려 했더니 너무 조악하거나 메이드카페였음. 심지어 스타벅스 안에 사람이 잔뜩 있길래 다행이다 싶어서 들어가려 했더니 공사중이었다. 그 사람들은 대체 뭐지? 아무튼, 결국 돌아 돌아 지하철을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고, 유바이크는 호스텔 컴퓨터로 가입했다. 근데 내가 앞으로 자전거 탈 일이 있을까?허허. 아, 그래도 마지막에 지하철 타기 전에 발견한 카페에서 당충전을 제대로 한 데다가 그나마 아주머니랑 얘기가 좀 통해서 돌아오는 길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6시까지 친구 회사로 가야 해서 시간도 넉넉치가 않았는데 하필.... 공쳤다~싶어서 어제 못한 지출내역도쓰고 가이드북도 좀 보고 했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시먼역 근처에서 뭐 볼 게 없을까 싶어서 찾아보다가 역 바로 옆에 시먼홍러우가 있대서 가봤다. 그냥 정말 나 같은 느낌으로 지나가다 둘러보면 될 정도의 구색이었다. 건물 양식이 훌륭하다 하지만 지금은 공사중이라 읿부밖에 볼 수 없고,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도 편차가 심하며 가격대가 비쌌다. 미련 없이(라고 하기엔 사진을 찍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함)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친구 회사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해서 타이페이 기차역으로 갔다. 외관이 멋지다는 리뷰를 봤는데 급다는 내부가 훨씬 멋졌다. LA 기차역(이름이 뭐였더라)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멋졌다. 사람도 많고 표지판도 많고, 잘 못 찾아올까 친구가 하도 걱정을 해서 나도 조금 긴장이 되었다. 다행이 묻고 물어서 잘 찾아서 탔고, 그래도 기차 탈 땐 달걀이지!하면서 급히 편의점을 들른 게 무색해질 정도로 걍 통근기차였다.
멋진 노을을 바라보며 친구를 기다렸다. 오늘의 코스는 네이후?지구에서 저녁을 먹고 양밍산 야경을 보는 것! 차를 타고 슝슝 달려 식당으로 향했는데, 친구가 메뉴를 말을 안 해줘서 겁이 났다. 자기가 자가면서 뭔지 모르겟다고 하면 나는 오또케?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너무너무너무 맛있게 먹었고, 주위 사람들이 대만 간다고 하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이렇게 현지인이 많은 식당에서는 혼자 뭘 주문해서 먹기가 참 힘든데 친구와 함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를 달려 양밍산에 도착했다. 구불구불 끝도 없이 올라갔는데, 역시나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오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맙다 친구야! 양밍산 야경 포인트가 여러곳이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아마도?) 따툰산 봉우리였다. 여긴 진짜 강력 추천하고싶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한데 저 아래 도시의 불빛과 하늘의 달과 별만이 반짝인다. 진짜 너무 좋았던 곳!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걸까,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기분이 되게 묘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오고 갔다.
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걸까
친구가 장노출로 사진을 찍는 동안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연인이나 썸타는 사람들이 함께 오면 여러모로 좋겠구나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연인들이 부둥켜 안고 스쿠터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었고, 전망대에서는 한쪽이 한쪽의 무릎 위에 앉는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조용조용히 진지한 대화를 끊임 없이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무슨 내용인지 아직도 너무 궁금하다), 어두운 곳에서 걷다 보면 손을 건네기도 하고 잡아주기도 하고. 사실 누구랑 가도 너무 좋을듯. 오늘이 대만에서의 최고의 날이 아니었나 싶다!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친구도 신이 났는지 별을 보러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여기서도 이렇게 잘 보이는 별을 또 보러가나 싶었지만, 내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더 좋은 데가 있나보지! 다시 굽이굽이 돌아돌아 국립공원스러운 데에 도착했다(찾아보니 칭티엔캉이라고 한다). 입장료를 받더라. 여기서 생각지 않게 또 등산스러운 걸 하게 되어 당황했고 힘들었지만, 역시 너무 좋은 곳이었다. 다만, 야생동물이 출몰할 수 있다는 안내문에 겁을 좀 먹었고, 실제로 내려오는 길에 소들을 만나서 잠시나마 질겁했다. 아니 얘네가 평화롭게 풀 뜯어먹는 애들인지 공격성이 있는 애들인지(있다면 이렇게 개방되어있지 않았겠지만) 알 게 뭐야! 살금살금 비켜가야 할지 냅다 뛰어야할지 몰라 벌벌 떠는데, 친구가 주위에 다른 소들이 오고 있는 것다며(!!!) 재촉하여 길 밖으로 살짝 우회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가 미끄러져서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소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갔다. 너도 우리가 무섭구나, 놀래켜서 미안했어!
여기서 또 한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별을 찍는 사람들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모여 있었다. 확실히 별 보기 좋은 포인트였다! 내려오는 길엔 세븐일레븐에 들러서 김맛 나는 감자칩도 사먹고. 산 중턱에 대학교가 하나 있어서 어린 친구들이 참 많았다. 한국 대학가에 풍기는 약간 미친듯한 분위기가 여기에서도 감돌고 있었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소리치고 웃고 뛰댕기는 애들을 보니 좋~을 때다 ~싶었는데, 이거 너무 나이든 느낌이잖아:(
그리고 달려 달려 자정이 넘어서야 친구가 호스텔 앞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난 옷만 갈아입고 나와서 근처에서 발마사지 받고 옴. 발마사지 덕분에 내가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일기를 쓸 수 있습니다. 5분 어깨, 35분 발(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무릎까지), 이렇게 받으니 피로가 싹-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이 가셨다. 아주머니가 너무 여기저기 다른 데에 신경을 쓰느라 나에게 소홀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아주 능숙하고 압이 세서 괜찮앗다. 내일이나 모레 또 받아야겠어!
그리고 내일은 드디어 우라이에 온천하러 가는 날인데, 언제 갈지 그리고 가기 전엔 뭘 할지(체크아웃 전에 수영하러 갈 수 있을까^_ㅠ) 아직(도) 모르겠다. 우선 얼른 씻고 또 죽은듯이 잘테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피로한 하루였다!
p.s. 전능하신 브런치가 업로드 실패 글을 서랍에 넣어두셔서 날아간 부분을 되찾았다!!! 뿔났던 거 취소!:)